건축 철학


건축 철학은 예술 철학의 한 분야로, 건축의 미적 가치, 그것의 의미론, 문화 발전과의 관계를 다룬다.


역사

초기 역사

건축에 대한 영향이 폭넓게 기록되어 있는 – ‘이상주의’, ‘신-플라톤주의’ 건축 등 – 플라톤은 피타고라스와 같은 초기 사상가들의 영향을 받은 고전적인 기하학적 우주론 모델의 일부로 간주될 수 있다. 초기 역사에서, 철학자들은 아키텍처(‘테크니온’)와 빌딩(‘데미오르고스’)을 구분하여, 전자는 정신적 특성, 그리고 후자는 신성한 것 또는 자연적인 것에 기인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의 형식주의의 존재는 한 건축 양식을 다른 건축 양식과 구별하고, 따라서 양식의 철학을 구별하는 데 중요한 특성이 되고 있다.

비평의 특성상, 건축 철학은 예술 철학에서 뻗어 나온 것으로, 20세기 후반에 건축과 건축사에 관한 책에서 표현되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건축이 주로 기술과 공학에 의존했기 때문에, 건축은 임마누엘 칸트(1724-1804)나 알렉산데르 고트리프 바움가르텐(1714-1762)과 같은 이들이 “순수 예술”이라는 이상에 따라 구분한 고전 미학의 적절한 주제 영역과 양립할 수 없거나 그보다 아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근대기

파놉티콘, 제러미 벤담의 1791년 드로잉. via Wikimedia Commons

포스트모던 철학자 미셸 푸코(1926-1984)가 지적했듯이, 건축은 사회의 삶을 설정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의 가치관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 특히 중요하다. 『감시와 처벌』에서, 푸코는 파놉티콘과의 비교를 통해 현대 문화를 분석했다. 제러미 벤담(1748-1832)에 의해 디자인된 파놉티콘은 수감자들을 위한 특수한 투명 환경으로, 모든 이가 끊임없이 감시를 받는 곳이다. 비록 이 프로젝트는 실현되지 않았지만, 벤담의 사상은 감옥의 이데올로기에 깊은 영향을 미쳐, 형벌에 대한 사회적 관행을 변화시켰다. 푸코는 주요 결론과 함께 또 다른 목표에 도달했는데, 그것은 건축을 문화 연구에서 도구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이 철학적 주제가 지닌 잠재력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지만, 예술 철학의 본격적인 부분으로서의 건축 철학은 아방가르드의 미학적 패러다임 전환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미지의 기계적 복제 조건에서 설정된 예술은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 비슷한 시기에 구성주의와 기능주의 건축 양식은 완전히 공학적인 새로운 미학을 정당화하는 방법을 찾았다. 건축이 (인간과 사회의 실용적인 요구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부끄러운 것으로 여겼던 측면은 새로운 미적 가치 체계의 중심 부분이 되는 주요 장점이 되었다. 입체파와 미래파는 기계화되고 파괴적이며 거친 형태로 가득한 미학을 설정했는데, 이는 동일한 공학적 이상에 매우 가까웠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예술 체계에서 건축의 지위를 변화시키는 데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을 뿐만 아니라 예술 자체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 변화시켰다.

포스트모더니즘

마틴 R.에 따르면 포스트모더니즘의 첫 번째 표현 중 하나가 될 수 있는 건축 작업인 “스타이브슨 타운 – 피터 쿠퍼 빌리지”. via Wikimedia Commons

포스트모더니즘의 현상이 확립된 후 건축은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R. 마틴에 따르면 “문화적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많은 영향력 있는 논의들이 건축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은 여전히 놀랍다.” 일부 학자들은 포스트모더니즘 전체가 건축 실무 그리고 건축 양식으로서의 “모던 스타일”에 대한 거부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하며, 이에 따라 건축가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을 용어적으로 공식화했다. 따라서, 프레데릭 제임슨은 “그렇지만 미적 생산에서의 수정이 가장 극적으로 가시화되는 영역은 건축이며, 이론적 문제가 가장 중심적으로 제기되고 명확히 표현된 곳도 건축이다 (…) 사실 나의 포스트-모더니즘 개념은 건축학적 논쟁을 통해 (…) 처음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라고 썼다. 연구자들이 지적했듯, “바르트와 에코는, 러시아 형식주의로부터 단서를 얻어, 규범 파괴를 미학의 표식(즉, 미적 코드)으로 보았다. 예술은 기호가 관습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또는 그 여백에서 잠재적으로 끊없이 놀이하면서 더 많은 의미의 기표로 역할을 할 수 있는 능력에 있어 특징적으로 창의적이다.” 그래서 롤랑 바르트와 움베르토 에코 같은 포스트모던 작가들은 건축을 예술에 있어서의 혁명적 혁신의 원천으로 보았다.

라스베이거스의 룩소르 카지노는 로버트 벤투리의 포스트모더니즘 선언의 기초가 되었으며, 프레데릭 제임슨에 따르면 포스트모더니즘의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via Wikimedia Commons

프레데릭 제임슨은 포스트모더니즘과 미국 건축 사이에 특별한 관계가 있다고 믿는데, 그의 의견으로는, 국가적 건축의 탄생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용어 또는 심지어 그 실체의 출현과 동시에 일어났다고 본다. 그렇지만, 모든 연구자들이 포스트-모던의 “건축적 기원”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며, 그래서 안드레아스 후이센(1942-)은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적 틀이 특정 문학 사조 내에서 정의되었다고 제안한다.그러나 이 연구자는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발전에서 건축이 맡은 특별한 역할에 주목한다. 마틴은 “후이센은 건축이 1970년대에 문학에서 유래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를 확장된 미학 영역으로 전파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한다”고 설명한다. 리오타르(1924-1998)는 포스트모던 건축가들이 진정한 포스트모더니즘과 공통점이 없다고 주장하며, 「질문에 답하기: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름 아래, 건축가들은 바우하우스 프로젝트를 없애고, 기능주의의 목욕물과 함께 실험이라는 아기를 던져버리고 있다.”

건축 철학에서 특별한 인물로 건축가 로버트 벤투리를 꼽을 수 있는데, 그의 책들은 건축에서의 양식적 실험만큼이나 포스트모더니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벤투리는 건축가들의 관심을 팝-아트로 이끌었다. 건축적 모더니즘을 거부하면서, 벤투리는 새로운 문화적 환경을 조성했다. 이를 통해 벤투리는 문명과 건축 양식 사이의 깊은 연관성을 보여주었다.


비트겐슈타인과 건축 철학

비트겐슈타인 하우스는 철학과 건축의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사례 중 하나로 간주된다. 저명한 오스트리아 철학자인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지은 이 집은 양식적 특징, 비트겐슈타인의 성격, 그의 철학 사이의 관계에 관한 광범위한 연구의 대상이 되어왔다.

비트겐슈타인 하우스. via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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