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마누엘린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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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에 있는 호시우 기차역. via Wikimedia Commons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왕립 포르투갈 도서관. via Wikimedia Commons
마푸투 국립 자연사 박물관. via Wikimedia Commons

네오-마누엘린 양식은 포르투갈의 16세기 마누엘린 후기 고딕 건축 양식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건축의 리바이벌 양식이다. 네오-마누엘린 양식 건축물은 포르투갈, 브라질, 그리고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세계(구 포르투갈 제국) 전역에 지어졌다.


역사

‘마누엘리노’라는 용어는 1842년 브라질 미술사가인 프란시스코 아돌포 드 바르하겐(1816-1878)이 포르투갈의 마누엘 1세 통치 기간(1495~1521) 동안 발전한 생동감 넘치는 예술 양식을 지칭하기 위해 도입했다. 마누엘린 양식은 대항해 시대와 포르투갈 제해권의 전성기와 맞물려 발전했다. 18세기 중반 이래 유럽 전역에 퍼진 고딕 리바이벌 양식 건축 유행의 흐름속서, 마누엘린 양식은 가장 정통적인 포르투갈 건축 양식으로 간주되었다.

네오-마누엘린 양식은 1839년에서 1849년 사이에 페르디난트 2세가 (포르투갈) 신트라에 페나 궁전을 건설하면서 시작되었다. 또 다른 선구적인 프로젝트는 1860년대 리스본에 있는 제로니무스 수도원의 복원 작업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마누엘린 양식의 수도원은 네오-마누엘린 양식으로 지어진 새로운 탑과 별관(현재 해양 박물관과 국립 고고학 박물관으로 사용)을 추가로 갖추게 되었다. 이 기간 동안 상징적인 벨렝 타워도 여러 네오-마누엘린 양식의 요소를 추가하며 복원되었다. 포르투갈에 있는 다른 중요한 네오-마누엘린 양식 건물로는 리스본의 호시우 기차역(1886~90), 팰리스 호텔 두 부사코(1888~1907), 신트라 타운 홀(1906~09), 카스카이스의 카스트루 기마랑이스 백작 궁전(1900), 신트라에 있는 킨타 다 헤갈레이라(1904~10) 등이 있다. 네오-마누엘린 양식은 개인 주택 같은 더 작은 건물에도 사용되었다.

네오-마누엘린 양식은 결국 식민지와 옛 포르투갈 식민지로 확산되었다. 브라질에서는 주로 포르투갈 협회에서 지은 여러 네오-마누엘린 양식 건물이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건축물은 1880년에서 1887년 사이에 포르투갈 이민자들이 리우데자네이루 중심부에 세운 왕립 포르투갈 도서관(헤아우 가비네치 포르투게스 지 레이투라)이다. 브라질의 다른 마누엘린 양식 건물에는 산투스의 포르투갈 센터(센트루 포르투게스 지 산투스; 1898~1901), 바이아의 포르투갈 도서관(1915~18), 리우데자네이루의 포르투갈 문학 고등학교(리세우 리테라리우 포르투게스; 1938)가 있다.

네오-마누엘린 양식 건물의 예들은 이전 포르투갈 식민지 제국의 아프리카 및 아시아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포르투갈 문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국가들에서도 네오-마누엘린 양식의 영향을 받은 건물들의 예가 있다. 좋은 예가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아르세니 모로조프 저택(1895~99)이다.


갤러리

포르투갈 신트라의 페나 궁전. via Wikimedia Commons
포르투갈 신트라에 있는 퀸타 다 레갈레이라. via Wikimedia Commons
브라질 바이아에 있는 왕립 포르투갈 도서관. via Wikimedia Commons
포르투갈 카스카이스에 있는 카스트로 귀마레스 궁전. via Wikimedia Commons
모잠비크 마푸토에 있는 자연사 박물관. via Wikimedia Commons
러시아 모스크바의 모로조프 궁전. via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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