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테 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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괌의 라테 스톤 공원에 있는 라테 스톤. via Wikimedia Commons
라떼스톤 구조의 재구성. via Wikimedia Commons

라테 스톤, 또는 간단히 라테(또는 라트데, 라티, 또는 라트디)는, 위로 향한 평평한 면이 있는 반구형 석재 주두로 뚜껑을 덮은 기둥[필라](차모르어: 할리기)을 말한다. 그것들은 고대 차모르 사람들에 의해 건물 지지대로 사용되었으며, 마리아나 제도의 대부분 지역에서 발견된다. 현대에는 라테 스톤이 차모르(족) 정체성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된다.


건설

라테 스톤은 석회암, 현무암, 또는 사암으로 만들어졌다. 전형적인 기둥의 높이는 60cm에서 3m 사이이며, 일반적으로 위로 갈수록 좁아진다. 기둥은 보통 채석된 다음 건설 현장으로 운반되었다. 작은 크기에서 중간 크기 라테의 경우, 갓돌(관석)은 암초에서 채취한 커다란 반구형 산호 머리였다. 로타섬에서 발견된 거대한 갓돌은 기둥과 마찬가지로 채석되었다.

오세아니아에서 구조와 목적이 다른 거석들이 해양 문화에 공통적이지만, 라테 스톤은 마리아나 제도에서만 볼 수 있다. 라테 스톤과 필리핀에 있는 이푸가오족(族)에 의해 만들어진 쌀 창고를 짓는 데 사용하는 나무 기둥[포스트] 사이의 유사점이 지적되었다. 둥근 갓돌은 쥐가 기둥을 기어오르는 것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자바의 보로부두르에 있는 부조 조각에 비슷한 나무 기둥 구조가 묘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로 인해 한 학자는 마리아나와 자바 사이의 선사 시대 문화 교류에 대한 논쟁적인 이론을 제시했다.

라테 스톤은 크기가 매우 다양했다. 가장 작은 것은 높이가 몇 피트였다. (1 feet = 30.48 cm) 지금까지도 서 있는 가장 큰 라테는 5m 높이로, 타가 하우스(유적지)가 있는 티니안섬에 위치해 있다. 로타섬에서, 채석된 라테는 세워질 경우 8m에 달했을 것이다. 여기서 발견된 가장 큰 캡(갓)의 무게가 22톤인 반면, 가장 큰 샤프트(기둥)의 무게는 34톤이다.


사용

티니안의 타가 하우스, 1902. via Wikimedia Commons

접촉-전 마리아나 제도의 역사는 보통 라테-이전, 과도기적 라테-이전, 라테의 세 시기로 나뉜다. 라테 스톤은 서기 900년경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1521년 페르디난드 마젤란(1480-1521)이 도착하고 스페인 식민 지배가 될 때까지 점점 더 보편화되었으며, 이후 급격히 사용이 줄어들어 1700년경에는 완전히 버려졌다. 라테 스톤은 괌 그리고 로타, 티니안, 아귀잔, 사이판을 포함한 북부 마리아나 제도 영연방에 있는 남부 섬뿐만 아니라 파간 같은 몇몇 작은 북부 섬에서도 발견되었다.

훼손되지 않은 돌들은 보통 직사각형 공간을 틀 짓는 8에서 14개 사이의 평행한 쌍으로 배열된 상태로 발견된다. 구조물 내 쌍이 많을수록, 라테 스톤은 더 커진다. 괌 남부에 위치한 군수품 부속 건물에서 120개 라테 스톤 배열이 발견되었다. 섬을 방문한 초기 유럽 방문객들 중 누구도 사용 중인 라테 스톤의 그림을 그린 것 같지 않지만, 라테 위 구조물이 쾌속 범선을 보호하고 커뮤니티 모임 장소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명시한 한 목격자와 더불어 16세기와 17세기의 여러 스페인의 이야기에 따르면 돌 위에 집이 세워졌다고 한다. 그렇지만, 결정적이고 일관된 증거의 부족은 모든 이론들이 논쟁의 여지가 있음을 의미한다. 일부 고고학자들은 오직 높은 지위의 차모로인만이 라테 스톤 위에 지은 구조물에 살았다고 믿는 반면, 다른 이들은 라테 시대의 모든 차모로인들이 라테 구조물에서 살았으며, 구조물 내에서 돌의 높이와 숫자는 사회적 지위를 나타낸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요리용 오두막, 카누 하우스, 미혼  남성을 위한 공영 주택을 포함했을 수 있는 라테 마을의 다른 구조물들은 전형적으로 잔디, 코코넛 잎 또는 니파(야자) 잎으로 된 초가 지붕이 있는 나무 기둥[폴], 종종 대나무의 A-프레임으로 지상에 지어졌다.


문화적 맥락

중심에 라테 스톤이 그려져 있는 북마리아나 제도의 국기. via Wikimedia Commons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마리아나 제도에서 작업해 온 고고학자들은 해안을 따라 위치한 라테 스톤과 내륙에 위치한 그것들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있음을 주목했다. 해안의 라테는 도기의 파편, 물고기 및 동물 뼈, 돌 및 조개 도구를 포함하여, 거주지의 광범위한 유물이 있는 모래사장에 놓이는 경향이 있다. 인간 매장지는 라테의 집합 내부 또는 인근에서 이들 고고학적 잔존물을 포함하는 모래사장 안에 안치되었다. 대조적으로, 내륙 라테 스톤이 놓여 있는 토양에는 고고학적 지층이나 관련된 매장지가 거의 없다. 이는 본토의 라테 부지가 일시적으로 점유되었으며, 후기 라테 시대에 매장 관행에서 변화가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18세기와 19세기까지, 마리아나 제도로 가는 여행자들은 외래-유입 질병이 차모로 인구를 절멸시킨 후 남겨진 것으로 보이는 버려진 지역에서만 라테를 발견했다. 현대에 들어와 라테 스톤은 차모로 정체성의 상징이 되었으며 다양한 정부, 기업 및 개인의 맥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콘크리트 라테는 때때로 새 건물에 통합되는 반면, 마리아나의 주민들은 때때로 실제 라테 스톤을 자신들의 집 주변 조경에 활용하기도 한다.

라테 스톤은 괌과 북마리아나 제도의 미국 25센트 동전에 등장한다. 북마리아나 제도의 고속도로 표지판에는 라테 스톤의 흰색 윤곽선 위에 도로 번호가 겹쳐져 표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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