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터 프롬 노웨어 : 건축을 찾아서

이중용 건축편집자

우선, 지난 13년의 시간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곳에 선 천가옥건축사사무소 여러분께 경의를 표합니다. 2008 금융위기, 2020 COVID-19 팬데믹, 2022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위시한 다양한 분쟁과 경제 위기 등 과거와 달리 우리 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환경의 범위가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었고, 지금 제가 ‘지난 15년 사이의 주요 위기 목록’을 ChatGPT를 통해 간단히 얻어 참고해 작성한 것처럼 인공지능과 로봇의 4차산업이 3차산업, 즉 서비스업 모델로 고착된 건축 분야 전반에서 인간이 보유한 전문성을 잠식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한 시점에 이르렀듯 천가옥의 시간이 결코 녹록치 않았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많은 선택의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있을 겁니다. 그 과정 안에 이 글도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천가옥의 건축가들인 우범구와 이승주,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이중용은 학부 시절 작업실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사이이기도 합니다. 그 시절을 떠올려 보면, 미래의 모습이란 어느 정도 미리 결정되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예를 들면, 

우범구는 뭐든 곧잘 그리고 만드는 학생이었습니다. 이미지와 물질에 대한 생각을 충분히 갖추기 어려운 환경이었음에도 그것을 다루는 그의 감각만큼은 다듬어져 있었습니다. 매사에 타당하고 편안한 선택을 하고 또한 그것을 해결해내는 능력이 있었으며, 그에 어울리는 차분하고 온화한 성격이었습니다. 남들이 호들갑스레 갖추는 것들 ㅡ 애인, 악기 실력, 등등 ㅡ 이 그에게는 항상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자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냥 하면 돼.”

이승주는 필요한 것들을 빠르게 흡수하는 한편 상황에 맞게 적용하는 데 능한 학생이었습니다. 작업 초기의 방향 설정에서부터 일과 사람을 조직하는 역량과 더불어, 그는 그와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자신감과 동경을 불어넣을 줄 아는 감각이 있었습니다. 그의 호기로운 성격이 우리들의 우정과 지향을 형성시키는 주요 촉매였으며, 문제든 관계든 환경이든 안정시키는 역량이 좋았습니다. 그는 자주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자.”

그렇게 함께였던 3의 시절이 오늘의 2와 1로 분화된 건 제가 다른 경로를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학업을 마치고 사회의 문 앞에 섰을 때, 저는 통상적인 설계로의 과정이 아니라 건축 분야와 관련된 글 쓰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도면과 현장의 건축을 벗어나 문화와 사유의 건축을 목적지로 하는 여정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대체로 디자인을 다른 친구들이 하면 글 쓰는 작업을 제가 했기 때문에 그들이 예술적이고 제가 논리적일 거라고 가정하는 게 보통입니다만, 돌이켜 보면 삶에 대해서는 완전히 반대였던 것 같습니다. 친구들은 설계라는 공적 합의와 사적 규율이 어느 정도 갖춰진 영역 안에서 현실적인 작업을 이어갔고, 저는 글 쓰는 일 정도로 생각한 막연한 영역 안에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한편 신념이나 모험을 선택하고 실패하고 공부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친구들의 시간은 잘 하는 것을 어떻게 더 잘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이었겠지만, 저의 시간은 제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천가옥의 친구들이 ‘집-짓기’로 규정된 0차원의 건축 설계로부터 1차원의 선, 2차원 면, 3차원 입체로 나아가는 일을 하고 있었다면, 저는 내내 제가 하는 작업의 의미와 이유에 해당하는 0차원의 점 ㅡ ‘무엇-짓기’, 따라서 시작부터가 다른 ㅡ 을 규정하는 문제로 되돌아가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2와 1은, 업역에 의해 공간적으로 분리되고 방향에 의해 시간적으로 분리되었습니다.

아마도 지금 우리는 자신이 속한 차원을 기준으로 상대를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들에게 저는 3차원 입체의 순간순간 변화하는 2차원 면으로 보일 것이고, 저에게 그들은 0차원 점의 이전 단계로 가정되겠지요. 일반적인 상태 인식은 한 차원 낮은 곳을 향하니까요. 달리 표현하면, 그들은 저를 3차원 세계 속에 나타나 있는 현상(現象)으로부터 이해해 들어올 확률이 높고, 저는 그들을 ‘그들로 지시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라는 가정 뒤에 감춰져 있는 가상(假想)으로부터 이해해 나아갈 확률이 높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저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의 시작은 저를 가시(可視)적으로/표면적으로 스캔하여 완결된 하나의 형태(외면)를 얻는 것이 될 것이고, 제가 그들을 이해하기 위한 방법의 시작은 그들을 가지(可知)적으로/구조적으로 단층촬영하여 가급적 많은 단면(내면)을 얻어내는 것이 될 것입니다.

형태와 단면의 특징이 그러하듯 우리는 서로를 각각 공간적인 관점과 시간적인 관점으로 이해할 공산이 큽니다. 솔리드(채움)와 보이드(비움), 스케일(척도)과 컨텍스트(맥락)에 의해 파악되고 균형 잡히는 그들의 세계 속에 제가 있겠지요. 공간에서 변화의 결과는 표면의 변화로 나타나며, 자연스레 외피(스킨)의 트렌드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만큼 그들은 스타일리스트(stylist)로서의 면모를 보여줄 겁니다. 반대로, 저는 그들을 지나간 것(과거)과 다가오는 것(미래), 점멸하는 것(사건)과 포집된 것(역사) 사이의 존재로 볼 것입니다. 생각을 포함하여 모든 것이 변화하는 가운데, 시간 속에 투사되는 인위적인 힘(의지)들을 살피기 위해 가급적 많은 데이터를 동시에 파악하고 균형 잡는 데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는 만큼 제가 아키비스트(archivist)로서의 면모를 갖추려는 것 또한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함께 건물을 보면서도 다르게 말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건물을 보면서 그들은 “저기 구축된 건축적 사물(事物)이 있다.”라고 이야기할 것이고, 같은 것/곳을 보면서 저는 “저기 구축된 건축적 사상(思想)이 있다.”라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건축계라는 하나의 영역 안에서 건축이라는 한 가지 대상을 다른 관점으로 이해해 들어간다 손치더라도, 그것들이 서로에게 타당한 것으로 납득된다면 우리는 기꺼이 서로에게 귀를 기울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에게는 용어가 하나 부족합니다. 건축 안에서, 현상 속의 구축된 건축적 사물을 지칭하는 건축 용어로 ‘건물’(혹은 ‘건축물’)을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가상 속의 구축된 건축적 사상을 지칭하는 건축 용어는 없습니다. ‘건축적 사물’을 ‘건물(建物)’이라고 하듯 ‘건축적 사상’은 ‘건상(建想)’ 정도로 표현하면 될까요? 입에 붙지 않은 표현이라 그런지 많이 어색하네요.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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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건축적 사물)                    OO (건축적 사상)

비록 단어가 없어도 의미 차원에서 이해하면 될 것이라 생각하기 쉬울 것입니다. ‘건축’이라는 하나의 범주 안에 ‘건축적 사물’과 ‘건축적 사상’이 오브제 모빌처럼 매달려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번에는 건축이 아닌 인간에게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흔히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하면 일반화의 폐해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성급함이 더 강하게 작동합니다. 성급한 일반화란 ‘성급함’이라는 몸의 상태와 ‘일반화’라는 생각의 방법이 결합되어 나타난다고 볼 수 있을 텐데, 생각을 더 해야 하는데 생각을 멈추는 것은 몸이 느끼는 즉각적인 반응 그리고 그에 연결된 조급함과 무신경함 혹은 게으름, 멀게는 몸의 유한성에 생각이 제한당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먼 것과 가까운 것,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 느린 것과 빠른 것, 어려운 것과 쉬운 것, 복잡한 것과 간단한 것 등등이 있을 때 생각은 차이로 인식되는 양쪽 측면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려는 노력을 기본으로 삼지만 몸은 한쪽으로의 쏠림을 재촉합니다. 먼 것보다는 가까운 것, 무거운 것보다는 가벼운 것, 느린 것보다는 빠른 것, 어려운 것보다는 쉬운 것, 복잡한 것보다는 간단한 것, 무엇보다 하기 싫은 것보다는 하고 싶은 것 쪽으로 말입니다.

우리가 무언가에 대해 알지 못할 때, 우리는 적절한 앎에 이르기 위해 충분히 생각해야 하지만 적당히 생각하고 단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경험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생존은 그에 대한 논증과 무관하게 지금까지 생존에 성공했다는 것의 증거가 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생존에 관한 한 우리는 ‘이미’ 성공했고 ‘지금’ 성공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우리는 ‘늘 하던 대로’, 정보가 충분치 않은 상태로, 단정해버립니다. 최소한 자신의 생존에 대해서만큼은 실패할 확률이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닐 거라고 믿으면서 말입니다. 대표적으로, ‘건축적 사상’을 ‘건축’과 동일시하며 단정해버리는 이들을 보게 됩니다. 네. 맞습니다. 균형이 잡혀 있어야 할 우리 생각 속의 건축은 그렇게 균형이 무너집니다. 사물과 동등한 위계로 다뤄야 할 사상을 가장 기본이 되는 용어인 ‘건축’으로 격상시키면서부터 말입니다. 이는 결국 용어와 사고 사이의 우열을 저울질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만들고, 건축 안에서 동등하게 다뤄져야 할 각자의 노력 역시 경쟁적인 감정과 선입견 아래 다뤄지는 것에 둔감해지도록 만듭니다. 우리는 건물을 짓기 위해 아주 작은 부분까지 합당한 방법으로 처리하려 고심하면서도, 이렇듯 생각 속에서는, 철물로 조립해야 할 부분을 양면 테이프로 붙여도 되는 것처럼 가볍게 다룰 때가 많습니다.

건축 (건축적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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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건축적 사물)                    OO (건축적 사상)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무신경함이나 불성실함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뭔가 대단한 것을 하고 있다는 교만과 착각이, 자신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인정 받고 싶은 욕망이, 거리에 흔한 대단치 않아 보이는 건물이나 먹고살기 위한 일 이상을 생각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분리해내고 강조하기 위한 방편을 찾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 건, 그들이 지은 건, 건물(사물)이야.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건축(사상)이지.” 마치 예술적이거나 철학적인 건축이 따로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페브스너(Nikolaus Pevsner, 1902~1983​​)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건축(architecture)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건물(building)이라는 단어의 의미로부터 분리해내려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개중에는 변화에 대해 히스테리적으로 반응하는 기성 집단이 자신들의 차별적 시각을 가치로 포장하기 위해 이러한 논리를 활용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본래의 그 대체(大體)는 건축학, 즉 학문적으로 건축을 규명하려는 과정에서의 노력이었습니다. 지적 체계를 짓는 학(學; 학문; 건축학)과 건물을 짓는 술(術; 실무; 건축술)의 차이를 생각지 않을 경우, 학문의 노력에 대해 실무가, 실무의 노력에 대해 학문이, 서로를 백안시(白眼視)하며 꼬투리 잡거나 지성 아닌 감정을 소모하며 적대시하는 사태들을 왕왕 보게 됩니다. 오늘날 건축가를 거의 예술가로 대우↑취급↓하거나, 공인된 자격증이 있는 사람(건축사; 建築士)만 건축가라는 식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건축가로서 혹은 건축사로서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 합당한 과정 안에서 치열하기보다, 결과에 대해 사후적으로 세상이 부여하는 명예에만 관심이 쏠리고 심지어는 그것을 마치 자신이 가져야 할 당연한 몫인 양 생각하기 쉬운 이유 또한, 타당한 언어와 사유의 부재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옆 나라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1894년 이토 주타(伊東忠太, 1867~1954)가 「아키텍처의 본래 뜻을 논하여, 그 번역어를 선정하고, 우리 조가학회의 개명을 바란다」(アーキテクチュールの本義を論じて、その訳字を選定し、わが造家学会の改名を望む)라는 글을 쓰고 1897년 조가학회가 건축학회로 개명하는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architecture의 번역어로 ‘겐치쿠’(けんちく; 建築; 건축)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한국의 많은 전문 용어들이 일본의 서구 번역 노력에 기대고 있는 것처럼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건축’이라는 번역어도 여기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 초에 쓰여진 카미야 타케오(神谷武夫, 1946~)의 「문화의 번역 : 이토 주타의 실패」(文化の翻訳 : 伊東忠太の失敗)에서 지적되듯, 일본 역시 ‘건물’과 ‘건축’의 의미가 100여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태입니다. 물론 이토 주타의 선택 자체가 편협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집짓기의 의미가 너무 명확하게 인식되는 조가(造家; 지을 조, 집 가; 집 짓기)라는 용어보다는 당시 공학적인 측면에 치우쳐 사용되고 있었던 건축(建築; 세울 건, 쌓을 축; 세우고 쌓는 일)이라는 용어가 가진 의미의 느슨함,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용어의 ‘막막함’이 해당 분야의 학과 술, 예술과 기술 측면 모두를 아우를 것으로 보았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용어나 생각이 지나치게 구체적이어서는 그것이 담을 수 있는 폭이 좁아진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것마저도 세우고 쌓는다는 구체적 행위를 연상시킨다는 점 그리고 이 용어가 정확히 무엇에 해당하는가에 대한 범주 규정이 없었다는 점 때문에, 건축을 건물과 동일시하거나 모호하게 사용하는 시간이 백 년 쯤 흐른 뒤에야 그것의 범주적 성격을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했던 것입니다. 다름 아닌 ‘문화’로 말입니다.

건축 (건축적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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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건축적 사물)                    OO (건축적 사상)

건축을 포괄적인 성격의 문화로 상정(想定)하는 것은, 그로 인해 건물을 그 하위 범주의 대상으로 구분하여 인식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만듭니다. 최소한 건축과 건물의 의미 혼동 때문에 곤란할 일은 점차 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관념적 위계로 인한 분쟁-가능성은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건축적 사상’을 온당하게 표현할 용어가 없기 때문에, 이것을 ‘건축’과 동등하게 다루려는 열정과 치기들이 자꾸만 되돌아옵니다. 이상한 일이죠? 건물 혹은 건축적 사물을 짓기 위한 건축가의 노력은, 어째서 매체 앞에서는 건축에 대한 인문적 성찰처럼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 걸까요? 건축가는 자신의 자리(건축적 사물 짓기)에서 최선을 다한 것으로 충분히 평가받을 수 있을 텐데, 어째서 다른 자리(건축적 사상 짓기)에서 성취를 얻은 것처럼 말을 하는 걸까요? 건축가들은 이렇게 반문(反問)할 수 있을 겁니다. “건물을 지으면서 치열하게 하는 고민 중에는 물리적으로 짓는 것을 넘어 인문적으로 사유하는 지점들이 있을 수 있고, 그렇다면 건축가가 건축적 사물도 구축하지만 동시에 건축적 사상을 구축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을까요?”

두 가지만 말하겠습니다. (이 표현이 우리들의 학부 마지막 설계 수업에 참여한 크리틱의 입버릇이었다는 것을 천가옥의 두 건축가들도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한 가지는, 위대한 건축가이면서 동시에 위대한 철학자 혹은 반대로 위대한 철학자이면서 동시에 위대한 건축가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1472) 등 소위 다양한 분야에 걸쳐 영향력 있는 작업을 한 르네상스맨들이 역사 속에 있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지만 오늘의 우리가 머리로만이 아니라 가슴으로도 공감할 수 있으려면 시대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비슷한 상황을 공유할 수 있는, 가급적 가까운 시기의 사례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누이의 집을 계획하는 데 참여한 20세기 철학자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을 떠올리는 분들이 있을 테지요. 하지만 그가 철학자이면서 동시에 일생을 건축가로 살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철학에서의 해체(deconstruction)와 건축에서의 해체주의(deconstructivism)를 통해 영향을 주고 받으며 때로 함께 작업까지 했던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와 아이젠만(Peter Eisenman, 1932~)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다들 알다시피, 혹은 간단한 검색으로도 알 수 있다시피, 그들의 프로필에 상대의 분야가 자신의 전문 영역으로 기재되는 일은 없습니다. 이렇듯 동시에 여러 분야에서 확고하고 일관된 성취를 만드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간단합니다. 오늘날 이미 많은 분야가 상당한 역사와 성과 위에 정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개별 분야에서의 성취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면, 우리는 아마도 한 분야의 성취를 이룬 사람들에게서 다른 분야의 성취 또한 자연스럽게 기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의 바이올린 연주도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 1963~)의 야구 기록도 모두 에피소드로 남아 있습니다. 물론 누구라도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역사를 쓰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함께 고려되어야 할 다른 한 가지는, 전문적인 성취를 전제로 할 때, 하나의 업(業; 직업/작업,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하나의 삶(人生)을 살아내는 것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약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이 땅으로 떨어지는 사과에 대해 생각하면서 악상을 떠올렸다면, 혹은 레시피를 떠올렸다면, 만유인력의 법칙은 뉴턴의 당대에 정립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음악가나 요리사로서가 아니라 과학자로서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자신의 일상을 자신의 업인 과학에 대한 영감과 성찰의 자양분으로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업이란 사회 안에서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선보이고 거래하는 결과물뿐만 아니라 타인이 속속들이 다 알기 어려운 과정에 대한 전문가로서의 태도를 일상 속에서도 자기-규제적으로 다스려 나아가도록 만듭니다. 손을 쓰는 장인이 작업을 벗어난 일상 속에서도 손을 보호하는 습관을 유지하거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작업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일상에서도 신뢰를 잃지 않는 것을 자신의 기준으로 내재화(內在化)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항상 최고의 연주를 준비하며 몸을 풀기 위해 몇 시간을 쏟아야 하는 사람들이 동시에 전혀 다른 분야에서 최고의 작업을 하기 위해 몸이든 생각이든 준비해야 하는 시간을 추가로 사용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적어도 직업(職業)이 아니라 작업(作業)인 한에서, 단순 실행이 아닌 발전을 위해 자신의 업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하나의 업과 하나의 삶은 자연스럽게 융합될 수 밖에 없습니다.

간략하게 설명했지만, 이 두 가지만으로도 건축에 관한 사물을 짓는 일과 건축에 관한 사상을 짓는 일이 어째서 하나의 몸에서 이루어지기 힘든 것인지에 대한 느낌 정도는 떠올려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요(要)는 그것입니다. 둘은 건축이라는 하나의 영역 안에 있지만, 다루는 매개체와 전문성이 근본적으로 다르며, 건물을 짓는 일이든 생각을 짓는 일이든 업과 삶이 융합되지 않고서는 성취를 향해 나아가기 쉽지 않다는 것 말입니다. (여기서의 ‘성취’는 건축 분야 내에서의 진보 혹은 건축을 통한 사회 기여와 관련된 것을 의미하며, 현실에서 성공했다는 의미와는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흔히들 ‘차이의 인정’ 같은 말들을 합니다. 좋은 말입니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도 일면 그러한 말일 수 있습니다. 사물과 사상을 뒤섞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각각으로 인정하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만 온당한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렇다면 건물을 짓는 사람은 추상적(抽象的)인 차원에서의 사유 없이 구체적(具體的)인 차원에서의 성취에 몰두하는 것으로 충분한 걸까요? 건축적 사상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구체적인 차원에서의 경험 없이 추상적인 차원에서의 성취에 몰두하는 것으로 충분한 걸까요? (혹은 그러한 것들이 가능하기는 할까요?) 그렇게 된다면 결국 서로 다르다는 사실만을 말할 수 있고, 서로를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연결할 계기를 만들 가능성은 우연의 영역으로 넘어가버릴 것입니다. 이는 마치 극복할 가능성 없이 분열된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 스트레스 받으면서도 개별자들의 차이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만큼은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오늘날 우리의 민주주의가 맞닥뜨리고 있는 고민과 같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저는 다시, 두 가지를 말하겠습니다.

첫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선은, 각자의 작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험을 다루는 작업이라면 경험에, 사유를 다루는 작업이라면 사유에 집중해야 합니다. 여기서는 확실히 분야 간 소통 가능성이 멀지만 방향과 순서가 우리를 가능성으로 이끌 것입니다. 자신의 업이 경험에 치우친 것이라 하더라도 그 경험을 사유로 연결시키는 노력을 통해 경험은 더욱 풍부해질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업이 사유에 치우친 것이라 하더라도 그 사유를 경험으로 연결시키는 노력을 통해 사유는 보다 구체화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각각 경험의 이해와 확장을 위한 사유(경험의 사유化)이며 사유의 이해와 확장을 위한 경험(사유의 경험化)이기 때문에 여전히 자신의 영역을 넘어 상대와 조우(遭遇)할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개별적인, 각각에 관한 것이니까요. 하지만 가능성은, 그러한 개별적인 확장 노력이 조우를 위한 첫 걸음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순수한 감각에 생각의 표피를 입히는 것 그리고 순수한 생각에 감각의 표피를 입히는 것은 1차적으로는 자신을 정리하고 확장하기 위한 것이지만, 각각이 형성한 표피는 (자신이 아닌 상대의 특성으로 형성됨으로써) 상대가 포착-소통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험도 논리적으로 생각될 수 있을 때까지 다듬어야 하며, 사유도 지각적으로 감각될 수 있을 때까지 다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각이 느낌에만 머물면 생각은 감각을 생각할 수 없고, 생각이 논리에만 머물면 감각은 생각을 감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서로에게 닿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상대가 다룰 수 있는 형식(format)을 갖추는 것은 서로에게 닿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입니다. 물론 서로가 상대의 방식으로 깔끔하게 호환되고 이해되는 것 자체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것은 마치 같은 언어를 사용하여 전혀 다른 이해를 구성하고 있는 성(聖; 성스러움)과 속(俗; 세속적임)의 문제와 다를 바 없습니다.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종합을 기다리는 합리론(合理論)과 경험론(經驗論)의 편협함을 반복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노력한다면, 그 노력 안에서 오독(誤讀; 잘못 읽힘)과 오배(誤配; 잘못 배송됨)의 위험성과 가능성을 줄타기하며 서로에게 닿는 시도를, 모험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식으로 감각과 생각, 경험과 사유, 실무와 이론, 사물과 사상 등은 소통-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방법(方法)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방법」이란, ➊ 어떤 일을 해 나가거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취하는 수단이나 방식, ➋ 객관적 진리에 이르기 위하여 사유 활동을 행하는 방식, 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무엇보다 방법은 그 자체로 경험적인 특징과 사유적인 특징을 공통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하나의 장(場)으로 가정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방법은 (그것의 작동 성공 여부에 상관없이) 자체적으로 일목요연한 과정을 가집니다. 이는 우리에게 제시되는 방법의 숫자만큼의 다양한 성공 노트와 실패 노트를 모두 가질 수 있다는 의미이고, 방법에 대한 증명 정도에 따른 보편성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여기에서의 보편성이 특정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것은 해당 경험 및 지식의 유무와 무관하게 관심과 열의만 있다면 누구든 특정한 원리와 결과를 공유할 수 있는 길(道)이 됩니다. 동일한 질문을 가진 사람은, 동일한 방법을 이해하고 실행하면, 동일한 작동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질문과 과정과 결과를 더 풍부하게도 만들 수 있습니다. 방법은 생산자들의 공통적인 소통의 기반이면서 동시에 목표가 될 수 있습니다. 건축적 사물을 짓는 사람은 건축적 사물을 짓는 방법을 탐구함으로써, 건축적 사상을 짓는 사람은 건축적 사상을 짓는 방법을 탐구함으로써, ➊ 자신의 영역에 기여하고, ➋ 다른 영역의 사람들을 초대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방법의 개발이야말로 인공지능을 포함한 포괄적 기계 시대에 인간에게 남은 마지막 과제일 수 있습니다. 과거의 방법은 기계가 학습 또는 구현할 수 있고, 기계는 주어진 방법을 적용하고 개선할 수 있는 반면 새로운 방법은 기계와 기계화된 세계의 외부에서 제시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직까지는, 인간이 기계의 바깥에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여기까지, 저는 자기 작업으로부터 비롯되는 소통-가능성을 확보하는 일, 그리고 방법의 제시를 통해 보편적인 진보의 징검다리를 놓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학창 시절, ‘대문자(A) 건축’과 ‘소문자(a) 건축’ 같은 표현을 사용하여 건축에 대해 이야기 나눴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시절의 그것은 20세기 후반 서구 건축계에 등장한 해체주의라는 혜성이 한국 건축계 언저리를 스치고 지나가며 흩뿌린 별똥 중 하나였습니다. 같은 내용이라도 이전 세대가 이를 주로 이상과 현실, 제도와 일상의 문제로 보았다면, 그 시절의 우리는 대체로 중심과 주변의 문제로 이해했더랬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건축과 세상을 그런 식의 단순한 구도로 이해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하향식 이상(고전), 자기 규정(모던), 상향식 이념(비전)으로 이어지는 서구 건축의 역사 안에서 벌어지는 그들만의 인정투쟁(認定鬪爭)을 이해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로 타자(서구)의 역사를 살아내려 애쓰는 노란 피부 하얀 가면(프란츠 파농의 책,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의 풍자식 표현)의 식민지 지식인 연극에서 벗어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구조주의 흐름을 함께 강화시켰던 메타볼리즘, 그리고 날것의 베통 브뤼(béton brut; ‘가공되지 않은 콘크리트’의 의미)에 대비되는 정제된 노출콘크리트 등, 일본은 세계화 과정을 밟는 서구 건축의 귀퉁이에서 대등한 건축 주체로 동시대 역사를 지어갔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역사는 서구를 두리번거렸으며, 번역은 일본을 아무렇지도 않게 가져와서는 내막도 잘 몰랐고, 현실은 말 그대로 개발도상(開發途上)이었습니다. 그래서 20세기 초 서구 건축의 브레이크이자 가속페달이 건축 자체를 규정하는 힘(원칙; ‘Five Points of Architecture’ 등)에서 비롯된 것이었던 데 반해, 20세기 말 등장한 우리 건축의 브레이크이자 가속페달은 당면한 시대에 대한 호소(선언; ‘빈자의 미학’ 등)였던 것입니다. 논리적으로라면 0℃의 차가운 이성으로부터 시작해야 했을 테지만, 100℃의 끓는 피가 아니면 시작조차 될 수 없는 곳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그리고 매우 자연스럽게, 이성에 기반하는 건축적 사유의 찬 공기는 점차 밀려나고 감성에 기반하는 건축적 사물의 뜨거운 공기로 우리의 세계가 데워졌습니다. 거기에 더해 이미지만으로 충분한 세계에서 사유는 요식행위(要式行爲)처럼 남아 있고, 생각을 정리하는 작업의 형태들이 사라지며 정신적 사막화가 진행되는 자리는 더러 건물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은 퇴행적(退行的) 낭만의 글귀들로 채워집니다.

오늘날, 건축은 건물의 동의어가 된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의 의미는 건축적 사물을 짓는 것과 건축적 사상을 짓는 것의 차이, 더 나아가 건축적 사물을 짓는 사람과 건축적 사상을 짓는 사람의 역할 구분에 대한 인식이 없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고, 그 균형을 이루는 요소가 모두 건축적 사물을 짓는 사람(흔히, 건축가)이 가진 능력으로 대체될 수 있음을 뜻합니다. 그 결과로, 감성적인 부분은 건축가의 디테일링된 이미지로 더욱 강화되고, 이성적인 부분은 사유 자체로부터가 아니라 건축가의 작업 과정의 부산물(副産物)로서 패키징된 낭만의 경향을 내비칩니다. 건축적 사상이 동반되지 않는 상황에서 건축가들의 내공만 축적되는 시기에는 물질을 다루는 역량이 점차 깊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데 반해, 사유를 다루는 역량은 충분한 설명 없이 공감을 유도하는 순간과 영원의 느낌 포착 쪽으로 쏠리기 쉽습니다. 그렇게 건축을 디자인하고 경험하는 과정에서의 통찰은 가능하지만, 건축을 이해하고 사유하는 과정에서의 통찰은 점점 멀어집니다.

건축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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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적 사물 (디테일링된 이미지)                   건축’가’적 사상 (패키징된 낭만)

저는, 우리가 다른 자리에서 다른 작업을 통해 건축이라는 하나의 지경(界)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디자인과 그 결과물만으로 건축의 모든 것을 대변할 수 있다면, 지금의 우리에게는 제대로 된 디자인과 그 결과물이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제는 흔해 보이기까지 하는, 자기-만족을 넘어 타자-인정의 일반적 계기가 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스타키텍트(starchitect) 한 사람조차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대학, 세계적인 건축사무소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늘어나는데도 유독 한국인에게 차세대로 주목되는 기회가 없다는 것은 한국인의 역량 부족 때문일까요? 물론,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인 측면에서 한국의 건축가들은 세대를 거듭하며 긍정적인 감각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국적과 이름을 지우고 블라인드 테스트(blind test)를 한다면 더러 세계인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디자인도 있을 겁니다. 이 말은,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만 견준다면 나름의 역량을 인정 받을 수 있는 건축가도 있을 거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건축은, 여타의 유서 깊은 분야들과 마찬가지로 천재들만을 위한 놀이터가 아닙니다. 시대-보편적으로 공유된 문제의식과 해결에 대한 공동의 열망 안에서 이야기들이 충분히 지어질 때, (천재 혹은 스타키텍트라는 덤과 함께) 자연스럽게 한 시대의 건축이라는 지층을 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없기 때문에 건축이 없다’라는 한 비평가의 한국 건축에 대한 철 지난 진단에 일부 공감하면서도, (그리고 이것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건축가들의 프로젝트는 끊이지 않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공유되는 힘이 매우 약하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진단은 이렇습니다. 21세기 건축가들이 20세기 건축가 흉내를 내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것을 매체도 부추기고 있다는 점까지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차별화된 디자인에 선언문을 첨부하는 열정으로 새로운 양식이나 흐름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의 사람들을 피, 땀, 눈물로 설득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시대가 민주주의의 과정에 돌입하면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개별화되어 모두를 하나의 이야기 아래 설복시키는 설득의 기술은 한계를 드러내므로, 전문성은 말주변이 아니라 과학이거나 혹은 과학에 가까운 것으로 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세기의 만렙(滿level) 건축가는 대체로 시인에 가까웠습니다만, 새로운 세기에는 쪼렙(低level) 건축가라도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건축가도 혼자만의 도취된 자아에서 벗어나 대화를 나누고 대안을 나누며 더불어 살아가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궁리해야 한다는 걸 누구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건축가가 아무리 잘 해도, 비익조(比翼鳥)처럼, 날아오르기 위해 필요한 다른 한쪽 눈과 한쪽 날개인 건축적 사유의 침체기가 지속되는 동안에는, 프로젝트들은 마스터베이션(自慰)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또한 천가옥을 비롯한 많은 한국의 건축사무소를 보이지 않게 받치고 있는 환경입니다. 프로젝트에 몰입하고, 매체에 게재되는 기쁨도 잠시, 반향 1도 없는 상황에 어리둥절하다, 차츰 익숙해지는 것 말입니다. 사람들은 디자인 문제를 거론합니다. 그러다가 그럴듯한 말을 만들지 못해서 그런 걸까 의심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우리의 건축적 경험에 몰두하는 동안에, 아무도 우리의 건축적 사유가 방치된 상황을 살피지 않습니다. 눈이나 코와 손이 말을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임시로 손짓 발짓을 사용할 수 있겠지만, 결국은 입이 말을 하게 해야 합니다. 서구 건축이 자신의 입으로 유창하게 자신의 말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대화가 되어야 친구도 될 수 있고 경쟁도 할 수 있습니다. 혹자는 외국어를 배우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입니다. 우리-자신의 생각, 우리-자신의 이야기, 혹은 우리-자신과 그들을 포괄하는 세계에 대한 생각과 이야기가 없으면 자기자신도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경험과 사유가 함께 손바닥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세계, 저는 그것이 건축계(建築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보 생산자와 정보 소비자 사이에서 주로 눈과 귀와 머리를 사용하는 에디터입니다. (따라서 제게 입은 없지만,) 제가 보기에 우리가 우리의 말을 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것은 한편으로 아직 노출되지 않았거나 자신을 드러내려 애쓰지 않았던 후발 주자들에게는 나쁘지 않은 상황이기도 합니다. 생각해보세요. 생각을 대신(代身) 포장하는 어눌한 말로, 혹은 직접 말을 해보겠다고 수화(手話)로, 건축을 설명하려 했던 이전의 상황들을 말입니다. “What are you doing?” 하지만 비웃거나 자괴감을 갖지는 맙시다. 오독일 수 있는 저의 생각을 포함하여 우리가 내딛고자 애쓰는 오늘이 지난날의 그러한 노력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건축 안에서 누구든 마찬가지겠지만, 특히나 우리가 건축을 찾아가는 여정 안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급작스럽게 펼쳐진 세계 속에서 세밀한 지도도 없이 비틀거리며 걷고 있습니다.

저는 천가옥의 작업에 대해서도, 건축의 직접적인 이슈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제가 느끼는 건축의 상황을 느슨하게 그려보았을 따름입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서두르는 편이었습니다. 마음이 앞서서, 저 같은 에디터를 보면 어떤 근사한 표현으로 포장해 줄 건지를 궁금해하곤 했습니다. 친숙한 안경을 끼고, 알만한 브랜드의 옷을 입고, 눈썹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그럴싸한 전문 용어 섞어 대강 말을 풀어 놓으면 건축가처럼 보일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먹고살았다는 이야기 외에 특별히 와닿은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제 시각이 삐딱해서 그런 거라면 국내·외 건축계에서라도 제대로 된 평가들이 회자(膾炙)되어야 할 텐데, 더러 유명한 사람들은 있었지만 건축적으로 새로운 지평(地平)을 열었다는 경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그것이, 건축적 사유가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우리 건축가들이 서구 건축가 흉내를 내며 구체적인 자기 몸(현실)의 문제를 가벼이 여기고 추상적인 포장지(개념) 쇼핑에 에너지 소모를 하기 때문인 이유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건축가는 현실에서 싸우는 사람입니다. 현상을 파악하고, 현상을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거기서 더하는 깨달음을 다시 (방법의 형태로) 현실로 꺼낼 때, 그것이 건축가의 시그니처(signature)가 될 것입니다. 완벽한 도약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건축적 사유의 시간이 도래하기를 기다려야 하겠지만, 그것은 인연 혹은 운명의 문제로 남겨둡시다.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이라면 지층이 형성되는 정도의 오랜 세월의 감각도 수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멀리 쏘기 위해 화살만 수없이 개량하는 사람과 미사일을 개발하는 사람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짧게 도전하는 시간을 아무리 많이 쌓아도 길게 도전하는 시간 한 번으로 해낼 수 있는 시대^전환 같은 것에는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당장의 형편에 맞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 역사를 함께 생각해야 하는 문화의 감각 안에서는 긴 호흡도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자신 그리고 소속된 공동체를 옥죄는 유·무형의 압박감 속에서 이미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며 살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지금에 뭘 더하라는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지금처럼 자기답게 ㅡ 그렇다고 오바(over)하지는 말고 ㅡ 사십시오. 건축에 관해서는 스스로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생각을 행동으로 꺼내려 애를 쓰십시오. 비단 건축가뿐만 아니라 사람은 말보다 행동입니다. 간혹 대화도 나눕시다. 건축이 우리 인생의 즐거운 화두이기를 바랍니다. 건강과 건승을 빕니다. 진심을 담아서 이 글을 보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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