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멈퍼드


루이스 멈퍼드. via Wikimedia Commons

루이스 멈퍼드(1895.10.19.~1990.1.26.)는 미국의 역사가, 사회학자, 기술 철학자이자 문학 평론가이다. 특히 도시와 도시건축에 대한 연구로 유명했고, 작가로서 폭넓은 경력을 쌓았다. 멈퍼드는 사회철학, 미국 문학 및 문화사 그리고 기술의 역사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그는 스코틀랜드 이론가 페트릭 게디스 경(1854~1932)의 작업에 영향을 받았으며, 동료인 영국 사회학자 빅터 브랜포드(1863~1930)와 긴밀하게 협력했다.

멈퍼드는 또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7~1959), 클라렌스 스타인(1882~1975), 프레더릭 오스본(1885~1978), 에드먼드 N. 베이컨(1910~2005), 버니바 부시(1890~1974)와 동시대인이자 친구이기도 했다.


생애

초기 생애 및 교육

멈퍼드는 뉴욕주 퀸즈의 플러싱에서 태어나 1912년 스타이브슨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뉴욕시립대학과 뉴스쿨오브소셜리서치에서 공부했지만, 결핵에 걸려 학위를 마치지 못했다. 1918년에 그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복무하기 위해 해군에 입대했고 무선 전기기사로 임명되었다. 그는 1919년에 제대했으며 영향력있는 모더니즘 문학 저널인 《더 다이얼》의 부편집자가 되었다. 그는 이후 《더 뉴요커》에서 일하며 건축 비평과 도시 문제에 대한 논평을 썼다.

아메니아에 있는 멈퍼드가 살던 집. via Wikimedia Commons

첫 번째 책

문학 비평 분야에서 멈퍼드의 초기 책들은 현대 미국 문학 비평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더 골든 데이』(1926)에서 그는 허먼 멜빌(1819~1891), 랄프 왈도 에머슨(1803~1882),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 너새니얼 호손(1804~1864), 월트 휘트먼(1819~1892)으로 구성된 19세기 중반 미국 문학의 정전을 주장했는데, 그들 모두는 미국 남북전쟁과 아메리카 합중국의 산업화로 인해 초래된 19세기 후반의 사회 변화에 의해 파괴될 그 시대의 (특히 미국 남북) 전쟁 전(앤터벨룸) 미국 문화를 반영한다고 주장했다. 멜빌의 생애에 대한 설명과 그의 작업에 대한 자신의 해석적 논의를 결합한 (멈퍼드의 단행본) 『허먼 멜빌』(1929)은 멜빌 리바이벌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곧이어, 『더 브라운 데케이드』(1931)라는 책과 함께, 그는 미국 건축과 도시 생활을 사회적 맥락에서 해석한 권위자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서신

멈퍼드는 심리학자 헨리 머리(1893~1988)의 절친한 친구였으며, 1928년부터 1960년대까지 허먼 멜빌, 심리학, 미국의 가치와 문화, 그리고 자아의 본성을 포함한 주제에 대해 광범위하게 서신을 교환했다.

도시계획

도시 생활에 대한 그의 초기 저서에서, 멈퍼드는 인간의 능력에 관해 낙관적이었고 인류는 모든 인류를 위한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전기와 매스컴을 사용할 것이라고 썼다.

멈퍼드는 나중에 이 2차 산업혁명이 가져온 (지나치게) 광범위한 기술 개선에 대해 좀 더 비관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의 초기 건축 비평은 또한 헨리 홉슨 리처드슨(1838~1886), 루이스 설리번(1856~1924) 및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작업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었다.

명예

멈퍼드는 1941년 미국철학학회와 1947년 미국예술과학아카데미에 선출되었다. 1963년, 멈퍼드는 미술 비평으로 (미국) 대학미술협회에서 프랭크 주잇 매더 상을 받았다. 멈퍼드는 1964년에 (미국) 대통령자유훈장을 받았다. 1975년에 멈퍼드는 (영국) 대영제국명예기사작위(KBE)의 수훈자가 되었다. 1976년, (프랑스) 치노 델 두카 국제상을 수상했다. 1986년에는 (미국) 국가예술훈장을 받았다.

추가 발행물

그는 30년 넘게 《더 뉴요커》 잡지를 위한 건축 비평가로 일했다. 그의 1961년 책, 『역사 속의 도시』는 (미국) 전미 도서상을 수상했다.

은퇴

루이스 멈퍼드는 1990년 1월 26일 뉴욕주 아메니아 타운에 있는 자택에서 9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9년 후 이 집은 국가사적지로 등재되었다. 그의 아내 소피아는 1997년 9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아이디어

1944년에 출간된 그의 책 『인간의 조건』에서, 멈퍼드는 인류 연구를 향한 자신의 방향을 “오가닉 휴머니즘(유기적 인본주의)”으로 특징지었다. 이 용어는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한계, 인체의 본성과 일치하는 한계를 설정한다는 점 때문에 중요하다. 멈퍼드는 공기질, 식량 가용성, 수질, 공간의 편안함의 중요성을 결코 잊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번창하려면 이 모든 요소를 존중해야 했기 때문이다. 유기적 인본주의가 브레이크(제동) 역할을 하는 동안은 기술과 진보는 결코 폭주 열차가 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추론이었다. 실제로, 멈퍼드는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의 뇌를 ‘활동 과잉으로 특징지었으며, 이는 인류가 자연의 많은 위협을 정복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좋은 일이지만, 의미 있게 자극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용되지 않으면 잠재적으로 나쁜 일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멈퍼드의 인간 “본성”, 즉, 인간 존재의 자연적 특성에 대한 존중은, 그에게 기술 및 테크닉 전반을 평가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했다. 이와 같이 도시와 기술의 구현에 대한 그의 비판과 조언은 근본적으로 그가 주장한 유기적 인본주의를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멈퍼드는 결국 유기적 인문주의의 관점에서, 자신이 그 가능성을 인식했지만 단지 악몽 같은 시나리오일 뿐인, 자연 환경이 아니라 기술이 궁극적으로 인류의 본성을 형성할 것이라 주장했던 마셜 매클루언(1911~1980)에 대해 비판적 평가를 시작했다.

멈퍼드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인 인간성을 규정하는 것이 주로 도구(기술)의 사용이 아니라 언어(상징)의 사용이라고 믿었다. 그는 원시 사회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정보와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것은 초기 인류에게 완전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며, 그것이 더욱 정교하고 복잡해짐에 따라 분명히 사회의 기초가 되었다고 확신했다. 그는 인류가 미래로 나아감에 따라 세계에서 이러한 정보 “통합”의 과정이 계속되기를 희망했다.

멈퍼드의 작업 전반에 걸쳐 “technics(테크닉)”라는 단어의 선택은 의도적이었다. 멈퍼드에게 기술은 테크닉의 일부다. 테크닉은, 기술뿐만 아니라 예술, 기량, 손재주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테크네’의 더 넓은 정의를 사용하여, 사회 환경과 기술 혁신의 상호작용 ㅡ 사회의 “산업 과정”뿐만 아니라 “소망, 습관, 아이디어, 목표” ㅡ 을 의미한다. 멈퍼드는 『기술과 문명』(1934)의 서두에서 “다른 문명들은, 겉보기에는, 테크닉의 방법과 목적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높은 수준의 기술 숙련도에 도달했다.”고 썼다.

메가테크닉

『기계의 신화 2권: 권력의 펜타곤』(12장)(1970)에서 멈퍼드는 끊임없고 제한 없는 확장, 생산, 교체를 강조하는 기술의 모던한 경향을 비판한다. 그는 이러한 목표가 기술적 완성도, 내구성, 사회적 능률성, 그리고 전반적인 인간 만족도에 반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메가테크닉스”라고 불렀던 현대 기술은 소비자 신용, 할부 구매, 기능하지 않고 결함이 있는 디자인, 계획된 진부화, 그리고 빈번한 피상적인 “유행” 변화 같은 장치를 사용함으로써 오래 지속되는 고품질 제품을 생산하는데 실패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광고에 의한 끊임없는 유혹이 없다면 생산은 둔화되고 정상적인 교체 수요로 평준화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제품이 매년 최소한의 변화만 요구하는 효율적인 디자인의 정점에 도달할 수 있다.”

그는 “단 한 차례의 경미한 수리 ㅡ 존경스러운 일이다. ㅡ 로 19년 동안 사용해 온” 자신의 냉장고를 예로 들었다. “매일 사용하는 자동 냉장고와 급속 냉동 보관은 모두 영구적인 가치를 지닌 발명품이다. … 시장 분석가와 유행 전문가의 기준이 아닌 바이오테크닉의 기준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똑같이 훌륭한 제품이 디트로이트에서 나올 수 있을 것이며, 오래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바이오테크닉

멈퍼드의 책, 『권력의 펜타곤』 이미지와 인용구. via Wikimedia Commons

멈퍼드는 테크닉과 생물학적 가용능(生物學的可用能) 사이의 관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멈퍼드가 사용하지 않은 후자의 용어는, 지역이 복잡성의 단계를 통해 생명을 지탱할 수 있는 능력으로 특징지어진다. 기술이 출현하기 전에는, 지구의 대부분의 지역은 어느 정도 생물학적으로 이용가능했다; 그렇지만, 특정 형태의 기술이 빠르게 발전할 때, 생물학적 가용능은 급격하게 감소한다. 예를 들어, 슬래그 더미, 오염된 물, 주차장, 콘크리트 도시는 생물학적 가용능 측면에서 극히 제한적이다. 생물학적으로 이용가능하지 않은 지역은 디스토피아의 형태로 영화(ex. 블레이드 러너)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멈퍼드는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생물학적 가용능이 붕괴될 필요는 없다고 믿었는데, 이는 생태학적으로 책임 있는 방식으로 기능하는 기술을 만드는 것이 가능다고 여겼기 때문이며, 그는 그런 종류의 기술을 바이오테크닉이라고 불렀다. 멈퍼드는 바이오테크닉 의식 ㅡ 그리고 어쩌면 공동체도 ㅡ 이 인간 생명의 본성에 대한 다윈주의적 사고의 진화 과정에서 후기 단계로 부상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는 이것이 “메가테크닉”의 자살 충동을 떨쳐버리는 데 필요한 일종의 테크닉이라고 믿었다. 멈퍼드는 초기 공동체로 거슬러 올라가는 생태 의식을 인정하면서도, 신흥 바이오테크닉을 신다윈주의적 의식의 산물로, 그리고 살아있는 유기체와 그 환경의 상태 사이의 상호-영향 관계에서 시선 돌리기를 거부하는 탈산업화 사고 형태로 간주했다. 멈퍼드의 사고방식에서, 바이오테크닉을 중심으로 조직된 사회는 그 통합적 관계를 위해 그 기술을 제한할 것이다.

멈퍼드의 이해에 따르면, 메가테크닉 맥락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기술은 우리에게 가져다준 명백한 혜택과 함께 의도하지 않은 유해한 부작용을 가져왔다. 예를 들어, 그는 (기술로서의) 화폐의 발달이 부를 추상화함으로써 객관적인-부의 부담스러운 측면을 제거했기 때문에 부작용으로 과잉 축적의 비합리적인 맥락을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부가 추상적이지 않았던 시대에는, 풍부함이 부(즉, 곡물, 토지, 가축 등으로 측정되며, 만족할 만큼 있지만 그것에 짓눌리지 않을 정도로만 보유된 부)를 획득하는 데 있어 조직 원리로 작용했다. 부를 질 대신 순수한 양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화폐는 통제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는 메가테크닉의 한 예이다. 멈퍼드의 이러한 개념화가 옳다면, 역사가와 경제학자들은 부의 분배와 역할과 관련하여 아직도-증가하는 부의 추상화와 급진적 변형 사이의 관계를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편익과 함께 전자 화폐를 향한 움직임은, 아직 완전히 이해되지 않았고 아직 결론에 이르지 못한 경제적 스트레스와 착취의 형태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추상적인 비축이 아닌 자원을 분배하는 기술은 바이오테크닉 생활의 개념에 더 적합할 것이다.

이와 같이 멈퍼드는 바이오테크닉 사회가 기술이 자신의 힘을 확대하면서 끊임없이 확장되어야 한다는 메가테크닉의 망상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며, 그 망상을 산산조각 내어 “거주적합성”을 만들고 보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이오테크닉 사회는 메가테크닉으로 권력을 추구하기보다는, 멈퍼드가 “풍부함”이라고 부르는 것 ㅡ 즉, 자원과 필요 사이의 항상성(恒常性) 관계 ㅡ 을 추구할 것이다. 이 풍부함의 개념은 바이오테크닉 사회가 기술과의 관계를 동물이 먹이를 대하는 방식과 연관짓는다고 제안하면 더 명확해진다. 자연적인 만족이 이루어진 상황 아래서는 기술 진보의 추구가 단순히 “그 자체를 위해” 계속되지 않을 것이다.

풍요함 속에서 만족이 주는 제한적 효과와 동시에, 기술 발전의 추구는 또한 유기체에 미칠 수 있는 잠재적인 부정적 영향에 의해서도 제한될 것이다. 이와 같이, 바이오테크닉 사회에서는 공기질, 음식의 질, 수질 등은 모두 유기체를 위협하는 기술적 야망을 제한할 수 있는 중대한 관심사가 될 것이다. 소음, 방사선, 스모그, 유해 화학 물질 및 기타 기술 부산물의 예상되는 부정적인 가치는 새로운 기술 혁신의 도입을 크게 제한할 것이다. 멈퍼드의 말에 따르면, 바이오테크닉 사회는 “질적 풍부함, 진폭, 널찍함, 그리고 양적 압력과 혼잡으로부터의 자유”를 지향할 것이다. “자기-관리, 자기-교정, 그리고 자기-추진은 영양, 번식, 성장, 회복과 마찬가지로 유기체의 필수 속성이다.” 바이오테크닉 사회는 균형, 총체, 완전성을 추구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바이오테크닉을 추구하는 개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도시에 대한 멈퍼드의 비판 그리고 도시 생활과 도시 디자인에 관한 모든 작업의 핵심인 인체의 본성을 중심으로 조직된 그의 도시 비전은 바이오테크닉의 초기 개념 ㅡ 멈퍼드가 그의 멘토인 패트릭 게디스(1854~1932)에게서 얻은 개념인 “거주적합성” ㅡ 에 뿌리를 두고 있다.

멈퍼드는 1970년에 쓴 『권력의 펜타곤』의 후반부에서 바이오테크닉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 용어는 바이오테크닉이 유기적 인본주의자에게 호소하는 구체적인 기술의 형태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그가 초기에 사용한 “유기적 인본주의”라는 용어와 잘 어울린다. 멈퍼드가 바이오테크닉을 설명했을 당시, 자동차 및 산업 공해는 핵으로 인한 절멸(재앙)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지배적인 기술적 관심사가 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멈퍼드는 기술이 훨씬 더 일찍 많은 위험을 초래해왔고 미래에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점을 인식했다. 멈퍼드에게, 인간 위험 요소는 인간의 본질적 본성을 적절하게 존중하고 수용하지 않는 권력-지향적인 기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멈퍼드는 훗날 다른 사람들이 명시적으로 언급하는 것처럼, 생태학적 의미에서 이해되는 현대인의 삶은 생태계의 기술적인 부분(총, 폭탄, 자동차, 마약)이 그들을 창조한 종의 필요에 의해 제약을 받기보다는 그들 고유의 힘에 의해 움직이는 통제불능의 상태로 빠져들기 때문에 균형을 잃는다고, 묵시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는 바이오테크닉이 새로운 해답이자 메가테크닉의 문제에 대항하여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고 믿었다. 그는 바이오테크닉이라는 답이 이미 그의 시대에 스스로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믿었다.

멈퍼드의 저술이 “바이오테크닉 사회”보다 “바이오테크닉”이라는 용어에 더 특권을 부여한 것은 사실이다. 그 이유는 그가 쓴 『권력의 펜타곤』 마지막 문장에서 명확해진다: “기계에 대한 신화를 떨쳐버린 우리에게 다음 움직임은 우리의 몫이다: 기술관료적(테크노크라시) 감옥의 문은 녹슨 고대 경첩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나가기로 선택하는 순간 자동으로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멈퍼드는 바이오테크닉 사회가 하나의 필수 과제이며, 동시대인들이 메가테크닉의 한계(그는 또한 ‘관’이라고도 부른다.)를 벗어나 나아갈 때 그들을 이끌어야 할 목표라고 믿었다. 이와 같이 그는 자신이 잘 이해한 대로, 다른 이야기의 시작 부분에서 바이오테크닉 사회를 낳을 수 있는 혁명, 즉 바이오테크닉 의식과 개인의 행동에서 비롯될 수 있는 조용한 혁명인 바이오테크닉 혁명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끝낸다. 멈퍼드는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1861~1947)의 유기체 철학의 열렬한 독자였다.

폴리테크닉 vs. 모노테크닉

『기술과 문명』(1934)에 소개된 핵심 아이디어는 기술이 이중적이라는 것이었다:

  • 많은 다양한 기술 방식을 요청하여 인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복잡한 틀을 제공하는, 폴리테크닉.
  • 오직 기술 자체만을 위한 기술로서 그 자체의 궤도를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인류를 억압하는, 모노테크닉.

멈퍼드는 현대 미국의 운송 네트워크가 자동차에 의존하는 “모노테크닉”이라고 흔히 비판했다. 자동차는 그것들이 사용하는 도로가 너무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사람들에게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도보, 자전거, 대중교통 같은 다른 교통 수단에 대해 장애물이 된다. 멈퍼드는 매년 수천 명이 자동차 사고로 인해 부상당하거나 사망하는 것을 미국 사회가 고속도로 교통에 극단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치르는 “의식적 희생”이라고 설명한다.

문명의 세 시대

또한 『기술과 문명』에서 멈퍼드는 (패트릭 게디스가 창시한 개념을 따르는) 인간 문명을 세 가지 뚜렷한 시기로 나누어 자세히 논의했다:

  • 이오테크닉 (중세) ※ eo- : 초기, 최고(最古)
  • 팰리오테크닉 (산업혁명 시대) ※ pale(o)- : 고(古) 또는 구(舊)
  • 네오테크닉 (후기, 현재) ※ neo- : 신(新)

메가머신

멈퍼드는 또한 메가머신 ㅡ 인간을 구성 요소로 사용하는 기계 ㅡ 이라고 하는 대규모 계층적 조직을 언급한다. 이러한 조직은 멈퍼드의 문명 단계 이론의 특징이다. 멈퍼드에 따르면, 가장 최근의 메가머신은 현대의 기술관료적 핵무기 보유국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ㅡ 멈퍼드는 각각 크렘린과 펜타곤으로 대표되는 소련과 미국의 권력복합체를 예시로 사용했다. 피라미드의 건설자, 로마 제국과 세계대전의 군대가 그 이전의 예이다.

그는 회계 및 표준화에 대한 꼼꼼한 주의(집중)와 군사지도자를 신성한 지위로 격상시키는 것은 역사를 통틀어 메가머신의 자연스러운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파라오를 확대한 이집트 회화의 반복적인 특성, 마오쩌둥과 이오시프 스탈린 같은 공산당 지도자들의 확대된 초상화를 공개적으로 전시하는 것 등을 예로 들었다. 그는 또한 고대 이집트에서 나치 독일에 이르기까지 잔존하는 역사적 단편들 사이에서 양적 회계 기록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도 언급한다.

이러한 메가머신의 구축에는 윤리적 개입 없이 “서보(큰 기계의 자동 제어 장치)-유닛” 역할을 하는 거대한 인간의 관료체제가 필요하다. 멈포드에 따르면, 조립 라인, 즉각적이며 전 세계적인 무선의 통신과 원격제어 같은 기술적 개선은 지속되는 심리적 장벽을 쉽게 약화시킬 수 있다. 그는 홀로코스트를 지원하는 물류를 조직한 나치 관리, 아돌프 아이히만(1906~1962)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멈퍼드는 이러한 메가머신의 극단적인 목표를 차분히 수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총칭하여 “아이히만스”라고 한다.

산업혁명의 전조로서의 시계

멈퍼드의 잘 알려진 연구 중 하나는 중세 수도사에 의해 개발된 기계식 시계가 이후 사회 전반에 채택된 방식에 관한 것이다. 그는 증기기관이 최고의 자리에 있다는 일반적인 견해와 달리 이 장치를 전체 산업혁명의 핵심 발명품으로 보았으며, 다음과 같이 썼다: “현대 산업 시대의 핵심-기계는, 증기기관이 아니라, 시계다. … 시계는 … ‘생산물’이 초와 분인 권력-기계의 부품이다 …”

도시 문명

『역사 속의 도시』는 1962년 논픽션 부문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이 영향력 있는 책에서 멈퍼드는 도시 문명의 발전을 탐구했다. 어번 스프롤(무분별한 도시 팽창)에 대해 혹독할 정도로 비판적인 멈퍼드는 현대 도시의 구조가 서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많은 사회 문제에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비관적인 어조로, 멈퍼드는 도시계획이 사람과 그들의 생활 공간 사이의 유기적 관계를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멈퍼드는 중세 도시의 예시를 “이상 도시”의 기초로 사용하고, 현대 도시가 붕괴로 끝난 로마 도시(무분별하게 팽창하는 거대 도시)에 너무 가깝다고 주장한다; 현대 도시가 같은 맥락으로 계속된다면, 로마 도시와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 거라고 주장한다.

멈퍼드는 도시가 “땅의 산물 … 자연의 섭리 … 인간의 표현 방법”이라고 믿으며 도시 문화에 대해 비판적으로 글을 썼다. 더 나아가, 멈퍼드는 도시 문화가 직면한 위기를 인식하고, 성장하는 금융 산업과 정치 구조를 불신하며, 이들 기관에 의해 지역 커뮤니티 문화가 육성되지 않는 곳을 두려어했다. 멈퍼드는 “대도시 재정”, 도시화, 정치, 소외를 두려워했다. 멈퍼드는 다음과 같이 썼다: “도시의 물리적 디자인과 그것들의 경제적 기능은 자연 환경과 인간 공동체의 영적 가치와의 관계에 부차적이다.”

교외

도시 교외의 생활 방식도 멈퍼드의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교외에서는 어떤 사악한 그림자가 신문 속 칼럼 위에 드리워진 경우를 제외하고는, 악의 없는(결백한) 세계에 대한 이미지의 손상 없이 살고 죽을 수 있다. 따라서 교외는 환상을 보존하기 위한 망명지 역할을 했다. 여기에서 가정은 번영할 수 있었고, 그 너머에 만연한 규격화(통제)를 감지할 수 없었다. 이것은 단순히 어린이-중심 환경이 아니었다; 그것은 현실이 쾌락 원칙에 희생되는 유치한 세계관에 기반을 두고 있다.

종교와 영성

멈퍼드는 또한 계획 분야에서 종교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인 최초의 도시 계획 학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그의 가장 잘 알려지지 않은 책 중 하나인 『생활 신앙』(1940, p.216)에서, 멈퍼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영적인 생활과 현실의 생활을 분리하는 것은 우리 존재의 양면에 공평하게 내리는 저주다.


영향

멈퍼드의 일반적인 철학적 성향과 더불어, 기술의 역사에 대한 그의 관심과 “폴리테크닉”에 대한 설명은 기술이 인간 존재에 가능한 한 광범위하고 제대로 봉사하는 것에 관심을 갖는 최근의 많은 사상가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자크 엘륄(1912~1994), 위톨드 리브진스키(1943~), 리처드 그레그(1885~1974), 에머리 로빈스(1947~), 제임스 볼드윈(1933~2018),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슈마허(1911~1977), 헤르베르트 마르쿠제(1898~1979), 에리히 프롬(1900~1980), 머레이 북친(1921~2006), 토머스 머턴(1915~1968), 마셜 매클루언(1911~1980), 콜린 워드(1924~2010), 케빈 카슨(1963~) 등 이들 저자 중 일부는 지식인이자 기술 개발 및 기술 사용에 관한 결정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람들이었다.

멈퍼드는 또한 미국 환경 운동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베리 코모너(1917~2012)와 북친 같은 사상가들이 그의 도시, 생태, 기술에 대한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 라마찬드라 구하(1958~)는 그의 작업이 “생물 지역주의, 반핵주의, 생물다양성, 대체 에너지 경로, 생태학적 도시 계획 및 적정 기술에 대한 가장 초기적이고 훌륭한 사상 중 일부”를 포함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멈퍼드의 영향은 1930년대 후반에 뉴욕을 촬영한 베레니스 애보트(1898~1991)의 사진을 비롯한 일부 예술가들의 작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멈퍼드는 아인 랜드(1905~1982)의 소설 『파운틴헤드』(1943)에서 (주인공에 대립하는) 적대자인 엘스워스 투히를 위한 영감이 되었다.


작업


  • 1922 유토피아 이야기
  • 1924 스틱과 스톤
  • 1926 건축 (미국도서관협회에서 “목적 있는 독서” 시리즈로 출판)
  • 1926 황금기
  • 1929 허먼 멜빌
  • 1931 브라운 데케이드: 미국에서의 예술 연구, 1865~1895
  • “삶의 리뉴얼” 시리즈
    • 1934 기술과 문명
    • 1938 도시의 문화
    • 1944 인간의 조건
    • 1951 삶의 수행
  • 1939 도시
  • 1939 인간은 행동해야 한다
  • 1940 생활 신앙
  • 1941 남부 건축
  • 1945 도시 개발
  • 1946 생존을 위한 가치
  • 1952 예술과 기술
  • 1952 현대 미국 건축의 근원
  • 1954 온전한 정신의 이름으로
  • 1956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여 (에세이 모음집)
  • 1956 인간의 변신 (뉴욕: 하퍼 & 로우)
  • 1961 역사 속의 도시 (전국도서상 수상)
  • 1963 고속도로와 도시 (에세이 모음집)
  • 기계의 신화 (전2권)
    • 1967 기술과 인간 발전
    • 1970 권력의 펜타곤
  • 1968 도시 전망 (에세이 모음집)
  • 1979 나의 작업과 나날들: 개인적인 연대기
  • 1982 삶으로부터의 스케치: 루이스 멈퍼드 자서전 (뉴욕: 다이얼 프레스)
  • 1986 루이스 멈퍼드 읽기 교재 (도널드 L. 밀러 편집; 뉴욕: 판테온 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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