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 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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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용 베이비 케이지”에 대한 엠마 리드의 특허 도안. via Wikimedia Commons

베이비 케이지는 도시 아파트 창문에 매달린 철망 케이지에 침대를 설치한 것을 말한다. 처음에는 “건강 케이지”로 불렸으며, 로버트 C. 라페르티가 혼잡한 도시에서 생활하는 아기에게 신선한 공기와 햇빛을 제공하기 위해 발명했다.


역사

1900년대 초, 결핵의 광범위한 확산을 막기 위해 많은 야외(개방) 학교가 세워졌다. 야외와 환기가 전염병 퇴치의 핵심이라는 믿음은 베이비 케이지를 만드는 데 영감을 주었다.

1908년, 아기를 위해 신선한 공기가 필요하다는 의사의 권고에 따라, 엘리너 루스벨트는 같은 해 태어난 그녀의 첫 아이 안나가 낮잠을 잘 수 있는 공간으로 뉴욕 자택의 뒷 창문 바깥에 “측면과 상단에 철망이 있는 일종의 상자”를 부착했다. 비록 루스벨트는 아기가 울면 그대로 두라는 의사의 조언을 따랐다고 해도, 아이의 울음소리에 놀란 이웃 주민들은 뉴욕아동학대방지협회에 이 엄마를 신고하겠다고 협박했다. 훗날 루스벨트는 자신이 단지 현대적인 엄마라고 생각했다고 말하면서, 이웃의 반응에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1922년, 엠마 리드는 “휴대용 베이비 케이지”에 관한 특허 출원을 제출했다. 이 케이지는 창문의 외부 가장자리에 매달아, 아기를 그 안에 두도록 고안되었다.

베이비 케이지의 쓰임새는 1930년대 런던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설치물은 정원 없는 도시에 사는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첼시 베이비 클럽 같은 이웃 공동체에서 정원이 없는 모든 회원에게 베이비 케이지를 제공했다. 1935년, 왕립영국건축가협회는 첼시 베이비 클럽 이니셔티브의 사례를 들며 아기를 위한 발코니를 중산층의 모든 주택에 필수 요소로 지정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 독일 공군이 주도한 (런던 상공에서 벌어진) 브리튼 전투로 런던 전역에서 베이비 케이지의 사용이 중단되었지만, (이전만큼의 인기는 없었지만) 1953년부터 다시 등장했다.

결국, 베이비 케이지의 판매는 안전 문제와 도시 자동차 교통량 증가로 인해 1900년대 중반까지 점진적으로 감소했다.


디자인

재료들은 달랐지만, 전체적인 디자인은 동일했다. 메쉬(철망) 케이지는 공기와 햇빛은 통과시키면서 아이가 아래 도로로 떨어지는 것을 방지했다. 일부 디자인은 눈, 비 또는 위에서 떨어지는 파편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지붕을 통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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