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탈리즘 건축


〈보스턴 시청사〉, 1968년 완공. via Wikimedia Commons

브루탈리즘 건축, 또는 뉴브루탈리즘은, 전후 시대의 재건 프로젝트 중 영국에서 1950년대에 등장한 건축 양식이다. 브루탈리스트 건물은 장식적인 디자인 너머 아무것도 안 덮인 건축 자재와 구조 요소를 보여주는 최소한의 건축 양식이 특징이다. 이 스타일은 일반적으로 노출콘크리트 또는 벽돌, 각진 기하학적 모양, 주로 단색 색깔들을 사용한다; 철, 목재 및 유리 같은 다른 재료들도 특징을 이룬다.

모더니즘 운동의 후예인 브루탈리즘은 1940년대 건축의 향수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한다. 스웨덴어 ‘뉘브루탈리슴’에서 유래한 용어 “뉴 브루탈리즘”은 영국 건축가 앨리슨(1928~1993)과 피터(1923~2003) 스밋슨이 디자인에 대한 그들의 선구적인 접근방식을 위해 처음 사용했다. 이 양식은 이 운동을 프랑스 어구인 ‘베통 브뤼’(“가공되지 않은 콘크리트”) 및 ‘아르 브뤼’(“다듬지 않은 거친 형태의 예술”)와 연관시켰던 건축 비평가 레이너 번햄의 1955년 에세이에서 더욱 대중화됐다. 스미스슨 부부와 헝가리 태생 에르뇌 골드핑거(1902~1987) 같은 건축가들이 개발한 이 양식은 프랑스계 스위스인 르코르뷔지에, 에스토니아계 미국인 루이스 칸, 핀란드인 알바 알토 같은 다른 건축가들의 작업에 의해 부분적으로 예견되었다.

영국에서 브루탈리즘은 사회주의 원칙의 영향을 받아 실용적이고 저비용의 사회 주택 설계에서 등장했으며, 곧 동유럽과 같은 유사한 스타일의 영향을 받아 전 세계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브루탈리즘 디자인은 주로 지방 의회, 공공사업 프로젝트, 대학, 도서관, 법원, 시청 같은 공공 기관의 디자인에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이 운동의 인기는 1970년대 후반부터 하락하기 시작했으며, 일부는 이를 도시 쇠퇴 그리고 전체주의와 연관 짓기도 했다.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국가에서 브루탈리즘이 인기를 끈 이유는 전통적인 건축 양식이 부르주아 계급과 연관된 반면, 콘크리트는 평등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브루탈리즘은 역사적으로 논란을 불러일으켜 왔으며, 개별 건물뿐만 아니라 운동 자체가 다양한 비판(종종 “차갑다”라고 묘사됨)을 받아왔다. 종종 브루탈리즘 건축물을 철거하려는 대중 주도의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한다. 일부 사람들은 이 스타일을 선호하며 영국에서는 일부 건물이 보존되고 있다.


역사

스웨덴의 웁살라 쾨보에 있는 〈빌라 괴트〉(1950). 이 집을 설명하기 위해 “뉴 브루탈리즘”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via Wikimedia Commons

‘뉘브루탈리슴’(뉴 브루탈리즘)이라는 용어는 스웨덴 건축가 한스 아스플룬드(1921-1994)가 1950년 1월, 동시대 건축가인 벵트 에드만(1921-2000)과 렌나르트 홀름(1926-2009)이 설계한 웁살라의 현대적인 벽돌 주택인 〈빌라 괴트〉를 설명하기 위해 만든 말이다. 훗날 브루탈리즘의 핵심이 될 ‘있는 그대로’의 디자인 접근 방식을 보여주는 이 집은 창문 위로 드러난 I-빔, 안팎으로 노출된 벽돌, 몇몇 방에 사용된 타설 콘크리트 등을 특징으로 하며, 콘크리트 거푸집을 만들 때 사용된 보드의 홈 이음 패턴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용어는 1950년 여름, 마이클 벤트리스(1922-1956), 올리버 콕스(1920-2010), 그리고 그래엄 섕클랜드(1917-1984)를 포함한 영국 건축가 방문단에 의해 채택되었는데, 거기서 “마치 들불처럼 번져나갔으며, 이후 젊은 영국 건축가들 사이에서 특정 집단이 이를 받아들였다”고 전해진다.

“뉴 부르탈리즘”이라는 문구가 처음으로 출판된 것은 1953년 앨리슨 스미스슨이 《아키텍처럴 디자인》 11월호에 게재된 그들의 지어지지 않은〈소호 하우스〉에 대한 계획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했을 때였다. 그녀는 “이 건물에서 가능한 한 내부 마감 없이 구조를 완전히 노출시키는 것이 우리의 의도다.”라고 더 자세히 진술했다. 스미슨스 부부의 〈헌스탄톤 학교〉는 노퍽에서 1954년에 완공됐고, 〈서그덴 하우스〉는  왓포드에서 1955년에 완공됐으며, 영국에서 가장 초기의 뉴 브루탈리즘 사례를 대표한다. 미국 시카고의 일리노이 공대에 있는 미스 반데어로에의 1946년 동문 기념관에서 영감을 받은 것 같은 〈헌스탄톤 학교〉는 건축가들에 의해 “뉴 브루탈리스트”라는 제목이 붙은 세계 최초의 완공 건물로 유명하다. 당시에 그것은 “영국에서 가장 진정으로 현대적인 건물”로 묘사됐다.

이 용어는 영국의 건축사학자 레이너 번햄(1922~1988)이 1955년 자신의 에세이 「The New Brutalism」에서 윤리와 미적 특질의 스타일을 모두 식별하기 위해 사용하면서 점점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에세이에서, 번햄은 〈헌스탄톤 학교〉와 〈소호 하우스〉를 “건축에서의 뉴 브루탈리즘을 정의할 수 있는 레퍼런스”로 설명했다. 레이너 번햄은 또한 뉴 브루탈리즘이라는 용어를 아르 브뤼 및 프랑스어로 원(자재) 콘크리트를 의미하는 ‘베통 브뤼’와 처음으로 연관시켰다. 가장 잘 알려진 ‘베통 브뤼’ 건축물은 스위스계 프랑스인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프로토-브루탈리스트 작업으로, 특히 그의 1952년 프랑스의 〈유니테 다비타시옹〉, 1953년 인도 찬디가르의 〈행정 청사〉(의회 궁전), 1955년 프랑스 롱샹의 〈노트르 담 뒤 오〉 등이 대표적이다.

번햄은 1966년 단행본, 『뉴브루탈리즘 : 윤리 혹은 미학?』에서 자신의 생각을 더욱 확장하여, 특히 유럽에서 다소 최근에 확립된 건축 접근방식의 무리를 특성화했다. 이 책에서, 번햄은 르코르뷔지에의 콘크리트 작업이 영감이 원천이었으며 이 운동의 대중화를 도왔다고 말하면서, “만약 세계 대부분의 서구 건축 언어에서 인정되는 브루탈리즘의 개념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하나의 단일한 언어적 공식이 있다면, 그것은 르코르뷔지에 자신이 그 콘크리트 작업을 ‘베통 브뤼’로 묘사한 것이다.”라고 제시한다. 그는 또한 “‘뉴 브루탈리즘’이라는 단어는 이미 회자되고 있었고, ‘베통 브뤼’와 더불어 널리 알려진 연관성을 넘어 말하고 행한 것을 통해 어느 정도 심층적인 의미를 얻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관용구는 여전히 스미스슨 가족에 ‘속한’ 것이었고, 브루탈리즘의 개념에 구별되는 자질을 부여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 그들의 활동이었다.


모티프

북마케도니아 스코페에 있는 게오르기 콘스탄티노프스키가 설계한 〈학생 기숙사〉(1971). via Wikimedia Commons
TV 화면을 닮은 콘크리트 창틀 때문에 이름 붙여진 “TV 빌딩”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via Wikimedia Commons

뉴 브루탈리즘은 건축 양식일 뿐만 아니라 건축 디자인에 대한 철학적 접근 방식이며, 건축물의 목적, 거주자, 위치를 수용하는 단순하고 정직하며 기능적인 건물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것이다. 양식적으로, 브루탈리즘은 엄격하고 모던한 디자인 언어로, 1940년대의 건축에 대한 반작용으로 알려져 있으며, 대부분은 회고적 향수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피터 스미스슨은 브루탈리즘의 핵심이 물질에 대한 숭배, (그리고) 정직하게 표현되는 것이라고 믿으며 “브루탈리즘은 재료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니라 재료의 질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나무의 나무다움, 모래의 모래다움처럼 재료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라고 진술했다. 건축가 존 뵐커(1927~1972)는 건축에서 ‘뉴 브루탈리즘’은 ‘언젠가는 이해할 수 있는 스타일이 등장할지라도, 양식적 분석을 통해 이해할 수 없다’고 설명했으며, 이 운동을 “미학이 아닌, 윤리”라고 설명한 스미스슨의 말을 뒷받침했다. 레이너 번햄은 “뉴 부르탈리즘”이라는 관용구가 디자인에 대한 태도일뿐만 아니라 건축 자체에 대한 설명적 레이블로 존재하며, “정확한 설명을 피하면서도 살아 있는 힘을 유지한다.”고 느꼈다. 그는 브루탈리스즘적인 구조물이 “1, 계획의 형식적 가독성; 2, 구조의 명료한 전시; 3, ‘발견된(있는 그대로의)’ 고유한 특질에 대한 재료의 평가라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 운동을 체계적인 언어로 체계화하려고 시도했다. 또한 미적 “이미지”, 또는 “시각적 실체로서의 건물의 일관성”도 중요했다.

브루탈리즘 건물은 일반적으로 특정 기능 영역을 나타내는 반복되는 모듈 요소로 구축되며, 명확하게 연결되고 통일된 전체로 그룹화된다. 건물의 주요 기능 및 사람들의 동선과 관련하여 외부 입면 및 전체 부지 건축 계획에서 그래픽 표현이 자주 강조된다. 건물에는 콘크리트, 벽돌, 유리, 철, 목재, 거친 돌, 그리고 개비온 같은 재료를 사용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저렴한 비용으로 인해 생콘크리트가 자주 사용되며, 현장에서 거푸집을 부어 만들 생기는 나무 ‘거푸집 자국’이 있는 거친 표면을 통해 건축의 기본적인 본질을 드러내도록 남겨둔다. 사례들은 성격상 종종 거대하며 (심지어 크지 않은 경우에도) 외관만큼이나 내부 공간에 초점을 두어 건물이 어떻게 보여야 한다는 전통적인 관념에 도전한다.

브루탈리즘 디자인의 공통된 주제는 건물의 외부에서 건물의 내부 작업 ㅡ 구조 및 서비스부터 사람들의 사용에 이르기까지 ㅡ 을 노출하는 것이다. 1962년에 디자인된 〈보스턴 시청사〉의 경우, 건물의 눈에 띄게 다른 돌출된 부분은 시장실이나 시의회 회의실 같은 벽 뒤에 있는 실(공간)들의 특별한 성격을 나타낸다. 또 다른 관점에서, 〈헌스탄톤 학교〉의 디자인에는 일반적으로 숨겨진 서비스 기능인 시설의 물탱크를 눈에 잘 띄는 타워에 배치하는 것이 포함됐다. 〈헌스탄톤 학교〉의 수도와 전기 유틸리티는 벽에 숨겨져 있기보다 눈에 잘 띄는 파이프와 도관(導管)을 통해  공급됐다.

건축 철학으로서의 브루탈리즘은 종종 사회주의 유토피아 이념과 연관되곤 했는데, 특히 이 스타일의 정점에 가까운 앨리슨 및 피터 스미스슨을 비롯한 디자이너들이 이를 지지되는 경향이 있었다. 실제로, 그들의 작업은 기능을 강조하고 건축을 현대 생활의 현실과 연결시키려고 했다. 그들의 초기 기여 중에는 교통과 보행자 동선이 엄격하게 분리된 ‘streets in the sky’가 있었는데, 이는 1960년대에 유행했던 또 다른 주제였다. 이 스타일은 196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유럽 공산주의 국가(불가리아, 체코슬로바키아, 동독, 소련, 유고슬라비아)의 건축에서 강력한 위치를 차지했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브루탈리즘은 “국민적”이면서 “현대적인 사회주의” 건축 양식을 만들려는 시도로 제시되었다. 이러한 사회주의 시대의 조립식 건물을 파넬라키(판자형 아파트)라고 한다.


디자이너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에 위치한 〈해비타트 67〉(1967). via Wikimedia Commons
브루탈리즘적 디자인인 워싱턴 지하철 역의 내부 천장. via Wikimedia Commons

영국에서 브루탈리즘 스타일과 관련된 건축가로는 에르노 골드핑거, 앨리슨과 피터 스미스슨, 바실 스펜스(1907~1976) 경의 작업의 일부, 런던 시의회 / 런던 의회 건축가 부서, 오웬 루더(1928~), 존 밴크로프트(1936~), 거의 틀림없이 어쩌면, 데니스 라스던(1914~2001) 경, 레슬리 마틴(1908~1999) 경, 제임스 스털링 경과 제임스 고완 ㅡ 그들의 초기 작업 ㅡ  등이 있다. 영국의 수도에서 브루탈리즘의 영향을 받은 건축물의 잘 알려진 사례로는 바비칸 센터(챔벌린, 파월 및 본)와 국립극장(데니스 라스던)이 있다.

미국에서 폴 루돌프(1918-1997)와 랄프 랩슨(1914-2008)은 모두 유명한 브루탈리스트였다. 중서부 지역의 건축가 중 선두주자였던 에반스 울렌 3세(1927-2016)는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에 브루탈리즘과 모더니즘 건축 양식을 도입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월터 네치(1920-2008)는 브루탈리즘 양식의 학교 건물로 유명하다. 마르셀 브로이어(1902-1981)는 이 양식에서 모서리보다는 곡선을 주로 사용하는 “부드러운” 접근으로 유명하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는 벅헤드의 부유한 피치트리 로드에 테드 레비가 설계한 플라자 타워와 피치트리 콘도미니엄의 파크 플레이스에 이 건축 양식이 도입되었다. 워싱턴 메트로의 많은 역, 특히 오래된 역은 브루탈리즘 스타일로 지어졌다. 건축사학자 윌리엄 조디(1917-1997)는 루이 칸(1901-1974)이 “대부분의 브루탈리즘을 근육질적인 자세로 여겨 반대했지만”, 그의 작업 중 일부는 “브루탈리즘의 입장에 순간적으로 초점을 맞춘 일부 동일한 아이디어의 영향을 받은 것이 확실하다”고 말한다.

호주에서는 로빈 깁슨(1930-2014)의 〈퀸즐랜드 미술관〉, 켄 울리(1933-2015)의 시드니 대학교 〈피셔 도서관〉(그의 주청사 건물도 브루탈리즘 양식의 예), 크리스토퍼 크링가스(1936-1975)의 호주 고등법원과 워링가 시민 센터, 맥쿼리 대학교의 원래 도서관이었던 MUSE 건물(C7A MUSE라고도 함)이 새 도서관으로 대체되기 전의 건물, 멜번의 〈세계 무역 센터〉 등이 브루탈리즘 양식의 대표적 건축물이다. 호주에 있는 존 앤드루스(1933-2022)의 정부 및 기관 건물들도 이 스타일을 보여준다.

캐나다에는 브루탈리즘 건축의 수많은 사례가 있다. 1967년 캐나다 연방 100주년을 앞두고, 연방 정부는 많은 공공 건물의 건설에 자금을 지원했다. 전부가 캐나다 100주년의 일환으로 지어진 건 아니지만, 주요 브루탈리즘 건축물의 예로는 퀘벡 대극장, 마리-귀야르 빌딩(이전의 콤플렉스-G), 콩코드 호텔, 퀘벡에 있는 라발대학교 캠퍼스 대부분, 해비타트 67, 보나벤처 광장, 메종 드 라디오 캐나다, 몬트리올 메트로 그린 라인의 여러 지하철역; 샬럿타운에 있는 컨페더레이션예술센터, 오타와의 국립 예술 센터, 킹스턴의 시립병원, 토론토의 온타리오 과학 센터, 로바츠 도서관, 로치데일 대학, 위니펙의 로열 매니토바 극장 센터와 캐나다 곡물 위원회 건물, 브리티시 컬럼비아의 웨스트민스터 수도원 교회 등이 있다. 밴쿠버 출신의 저명한 건축가 아서 에릭슨(1924-2009)은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교의 메인 캠퍼스 건물, 맥밀란 블레델 빌딩, 밴쿠버 에버그린 빌딩, 인류학 박물관, 밴쿠버 법원을 비롯한 여러 유명 브루탈리즘 개발 건물을 담당했다.

세르비아에서 보지다르 얀코비치(1931-)는 이른바 “베오그라드 주거 학파”의 대표적인 인물로, 평면을 기반으로 한 기능주의적 관계와 디테일에서의 정교하게 발전된 건축으로 식별된다. 잘 알려진 예로, ‘제넥스 타워’로도 알려진 〈웨스턴 시티 게이트〉는 1977년 미하일로 미트로비치가 설계한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의 36층짜리 고층 빌딩이다.이 건물은 두 개의 타워가 2층 규모의 다리와 회전식 레스토랑으로 연결된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높이 117m, 레스토랑을 포함하면 135–140m에 이르며, 이는 베오그라드에서 〈우슈체 타워〉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고층 건물이다. 제넥스 타워는 브루탈리즘 스타일로 설계되었으며, 일부 구조주의 및 구성주의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건물은 세르비아에서 브루탈리즘 건축의 대표적인 사례로 간주되며, 1960~1970년대 전 세계적으로 지어진 이 스타일의 건축물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된다. 형태와 디테일의 처리는 약간의 포스트모더니즘적 연상을 불러일으키며, 오늘날 세르비아에서 이 스타일의 초기 시대를 대표하는 몇 안 되는 잔존 건축물 중 하나이다. 이 건축물의 예술적 표현은 세르비아 건축의 한 시대를 장식했다.

베트남에서 브루탈리즘 건축은 특히 오래된 공공 건물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으며, 국가가 소련식 경제 계획을 따랐던 ‘바오 껍’(문자 그대로 ‘보조’라는 뜻) 시대와 연관되어 있다. 이 시기 동안 많은 소련 건축가들이 베트남에 파견되었으며, 그중 가장 두드러진 인물은 가롤드 이사코비치(1931-1992)였다. 그는 베트남에서 새로운 건축가들을 양성하는 데 기여했으며, 수십 년 동안 베트남 건축 스타일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사코비치는 〈베트남-소련(越蘇)우정노동문화궁전〉(1985)을 포함하여 베트남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브루탈리즘 건축물들을 설계했다. 말년에는 브루탈리즘에서 벗어나 베트남 전통 양식을 채택했다고 전해지며, 일부 베트남 건축가들은 이를 현지 모더니즘 또는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는 1976년 베트남 정부로부터 ‘노동 영웅’ 칭호를 수여받기도 했다. 구 남베트남에서는 아시아 출신 건축가로는 최초로 미국건축가협회(AIA) 명예 펠로우가 된 응오 비엣 투(1927-2000)가 설계한 〈통일궁〉(1966)이 브루탈리즘적 요소를 가진 대표적인 건물로 꼽힌다. 그렇지만, 1975년 이전의 남베트남 건축이 브루탈리즘에 속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으며, 일부 건축가들은 오히려 모더니즘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베트남에서 브루탈리즘 건축 양식에 대한 대중의 감정이 부정적으로 바뀌었지만, 최근에 이 양식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고 한다.


대학 캠퍼스

제임스 스털링이 디자인한 케임브리지 대학교 역사학부 건물 (1968). via Wikimedia Commons

영국 대학에서 브루탈리즘 건축의 초기 사례는 1959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건축학과의 증축으로, 당시 학과장이었던 레슬리 마틴의 영향 아래 콜린 세인트 존 윌슨과 알렉스 하디가 설계하고 대학 학생들이 참여하였다. 이를 계기로 캠브리지에는 II등급에 등재된 유니버시티 센터와 처칠 칼리지 등 다른 브루탈리즘 건물이 생겨났다. 건축가 제임스 스털링의 레드 트릴로지의 두 번째 건물인 역사학부 건물(레스터 대학교 엔지니어링 빌딩, 옥스퍼드 퀸즈 칼리지의 플로리 빌딩과 함께 모두 II등급으로 등재)은 “대학이 건축 후원에 앞장섰던 시기의 교육 건물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의 독특한 예”로 등재 목록에 설명되어 있다.

1960년대 영국에 새로운 대학이 세워지면서 브루탈리즘 건축가들에게도 기회가 생겼다. 가장 먼저 지어진 곳은 1등급에 등재된 팔머 하우스가 그 중심인, 바실 스펜스(1907-1976)가 설계한 서섹스 대학교이다. 이 건물은 1960년대 다른 캠퍼스의 조립식 건축물과 대조되는 수공예 벽돌과 콜로세움에서 영감을 받은 벽돌 교각 위에 보드 마크가 있는 콘크리트 아치로 이루어진 콜로네이드 등의 특징으로 “미술공예운동과 모더니즘의 만남”으로 묘사되어 왔다. 그것은 또한 영국왕립건축가협회에서 “핵심 브루탈리즘 건물” 중 하나로 선정한 건물이기도 하다.

데니스 레스던이 디자인한 일명 ‘지구라트’,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교 (1968). via Wikimedia Commons

흔히 ‘지구라트’로 언급되는 6개의 연결된 기숙사를 포함한 데니스 레스던(1914-2001)의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교 작업은 1960년대 브루탈리즘 대학 캠퍼스의 가장 훌륭한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다른 주목할 만한 예로는 스탠리 큐브릭의 1971년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의 촬영지로 사용된 브루넬 대학교의 2등급 강의동이 있으며, 배스 대학교, 스털링 대학교, 얼스터 대학교를 건축한 로버트 매튜, 존슨-마샬 & 파트너스에 의해 디자인된 요크 대학교의 중앙 홀과 주변 단과대학들, 아키텍츠’ 코-파트너십의 에식스 대학교 중앙 캠퍼스 단지 등이 있다.

더럼 대학교의 킹스게이트 브리지(1963) 및 던엄 하우스(1966). via Wikimedia Commons

더럼 대학교에는 1961년 이후 건물 중 2017년까지 1등급으로 등재된 단 6개의 건물 중 하나인 오브 아럽(1895-1988)의 1등급 목록에 등재된 킹스게이트 브리지(1963)와 “전후 영국 최고의 학생회 건물”로 소개되었지만 트웬티스 센추리 소사이어티(1914년 이후의 건축 유산 보존을 위한 캠페인을 펼치는 영국의 자선 단체)의 5년간의 캠페인 끝에 2021년에야 철거를 면한 2등급에 등재된 던엄 하우스(아키텍츠’ 코-파트너십의 리처드 레인스; 1964–66) 등 브루탈리즘 캠퍼스 건물이 눈에 띄는 쌍을 이루고 있다.

윌리엄 페레이라가 디자인한 가이젤 도서관 (1970). via Wikimedia Commons

미국에서 가장 초기의 브루탈리즘 건물 중 하나는 폴 루돌프가 1963년 예일대학교에 지은 건축대학 건물로, 그는 고객이자 건축가인 학과장으로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독특한 자유를 누렸다. 루돌프가 1964년에 설계한 매사추세츠 다트머스 대학교의 건물은 캠퍼스 전체를 브루탈리즘 스타일로 디자인한 드문 사례로, 루돌프는 “어바니즘과 기념비성에 대한 실험을 가장 완벽하게 실현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월터 네치는 일리노이대학교 시카고 서클 캠퍼스(현재 시카고 일리노이대학교 동부 캠퍼스)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통합된 브루탈리즘 디자인으로 설계했다. 네치는 시카고 대학교와 노스웨스턴 대학교 도서관의 브루탈리즘적인 조셉 레겐스타인 도서관도 설계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크래프톤 힐스 대학은 1965년 ‘데저트 모던’ 건축가 E. 스튜어트 윌리엄스가 설계하여 1966년부터 1976년 사이에 지어졌다. 윌리엄스의 브루탈리즘적 디자인은 해당 지역의 가파른 지형과 대조를 이루며, 주변 환경으로부터 방화벽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분적으로 선택되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브루탈리즘 건물 중 하나는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가이젤 도서관이다. 윌리엄 페레이라(1909-1985)가 디자인하고 1969~70년에 건설된 이 건물은 “브루탈리즘과 미래주의 사이의 흥미로운 접점을 차지한다”고 평가되지만, 원래는 강철과 유리로 된 모더니스트 건물로 계획되었다. 그러나 비용 문제로 인해 구조 요소가 콘크리트로 재설계되면서 건물 외부로 이동하게 되었다. 1963년 인디애나폴리스의 버틀러 대학교 캠퍼스에 개관한 공연 예술 시설인 에반스 울런 3세의 브루탈리즘 양식의 클로스 기념관은 대담하고 드라마틱한 디자인으로 찬사를 받았다. 미네소타 대학교 웨스트뱅크 캠퍼스에는 1971년 랄프 랩슨이 설계한 공연장인 라리그 센터가 있으며, “트윈 시티에서 브루탈리즘 스타일의 가장 좋은 예”로 불리고 있다. 서던일리노이대학교 카본데일 캠퍼스의 파너 홀은 브루탈리즘의 사용으로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 왔으며, 대학 자체에서도 “어머니만이 사랑할 수 있는 외관”으로 간주되어 캠퍼스에서 흉물스러운 건물로 여겨져 왔다.

조지타운대학교 도서관 시스템의 메인 도서관인 조셉 마크 라우잉어 도서관은 존 칼 워네크(1919-2010)에 의해 디자인되어 1970년에 개관했다. 원래 조지타운 대학교의 다른 건물과 비슷한 전통적인 디자인으로 구상된 라우잉거 도서관의 최종 디자인은 브루탈리즘을 수용하고 인근의 플랑드르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인 힐리 홀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이었다. 이 건물은 도서관 건축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인정받아 1976년 미국건축가협회로부터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브루탈리즘에 대한 대중의 태도가 바뀌면서 이 도서관은 조지타운과 워싱턴 D.C.에서 “가장 못생긴” 건물 중 하나로 불리고 있다.

토론토 대학교 로바츠 도서관(1974). via Wikimedia Commons

브루탈리즘 양식 대학 캠퍼스의 예는 다른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토론토 대학교의 로바츠 도서관은 워너, 번스, 토안, 룬데가 디자인하고 1968년부터 1973년 사이에 지어졌다. 비록 “브루탈리즘 운동의 최고 업적”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1974년 개관 때는 대중의 정서가 이미 브루탈리즘에 등을 돌린 이후에 이루어졌고, 그 결과 “가장 큰 규모의 실수”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남아프리카 요하네스버그의 랜드 아프리칸스 대학교(현재 요하네스버그 대학교 킹스웨이 캠퍼스 오클랜드 파크)는 아프리칸스어 정체성의 표현으로 디자인된 브루탈리즘적인 건물이 대부분이다. 동남아시아의 여러 대학에서도 브루탈리즘 디자인을 찾아볼 수 있으며, 대표적으로 호치민시 의약학대학교, 프놈펜 왕립대학교, 후에 산업대학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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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고의 〈퀸 엘리자베스 스퀘어 아파트〉(1962)는 1993년에 철거되었다. via Wikimedia Commons

《이코노미스트》의 2014년 기사에서는 건물 철거 캠페인이 일반적으로 브루탈리즘 건물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을 말하면서 대중에게 인기가 없다고 지적했다. 사이먼 젠킨스(1943-)에 따르면, “역사상 이토록 많은 사용자들이 철거를 간절히 원했던 양식은 거의 없을 것이다.” 2005년, 영국 TV 프로그램인 〈데몰리션〉에서는 철거해야 할 12개 건물을 선정하는 공개 투표를 실시했는데, 그 중 8개 건물이 브루탈리즘 양식 건물이었다.

하나의 주장은 이러한 비판이 부분적으로 북서 유럽과 뉴잉글랜드와 같은 습하고 흐린 해양성 기후에서 콘크리트 파사드가 잘 노화되지 않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후에서는 콘크리트 표면에 물 얼룩이 생기고 때때로 이끼와 지의류가 자라며, 철근에서 나오는 녹 얼룩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 양식에 대한 비평가들은 그것이 “차가운” 외관으로 인해 매력적이지 않고, 전체주의의 분위기를 투영할뿐만 아니라, 특정 기후에서 잘 풍화되지 않는 재료와, 낙서로 인해 표면이 파손되기 쉽기 때문에, 건물이 도시 쇠퇴와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양식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높이 평가되며, 영국에서는 보존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21세기

〈프레스턴 버스 정류장〉(1969년, 영국 랭커셔)은 두 차례의 철거 제안이 실패한 끝에 2013년 9월에 2등급 등재 건물 지위를 획득했다. via Wikimedia Commons

비록 브루탈리즘 운동은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에 구조적 표현주의와 해체주의에 자리를 내주면서 거의 끝났지만, 2015년부터 다양한 안내서와 서적 ㅡ 『브루탈리스트 런던 맵』(2015), 『디스 브루탈 월드』(2016), 『SOS 브루탈리즘 : 글로벌 서베이』(2017), 뿐만 아니라 화려한 『아틀라스 오브 브루탈리스트 아키텍처』(파이돈, 2018) ㅡ 출간되면서 관심이 다시 증가했다.

네오브루탈리즘 스타일의 에식스 대학교 〈실버라드 학생 센터〉(2015). via Wikimedia Commons

이 스타일을 정의하는 많은 요소가 최신 건물에서는 완화되었으며, 콘크리트 파사드는 종종 석재와 같은 표면을 만들기 위해 샌드블라스트 처리되거나, 스투코로 덮이거나, 패턴이 있는 프리캐스트 요소로 구성되기도 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또한 셰필드의 파크 힐 재개발 같은 오래된 브루탈리즘 건물의 리노베이션에서도 발견된다. 그렇지만, 브루탈리즘 전통의 나무 거푸집 자국이 남은 콘크리트는 여전히 일부 개발에서 사용되며, 대표적인 예로 네오브루탈리즘 양식의 실버라드 학생 센터와 에식스 대학교 도서관 확장이 있다. 이는 기존의 1960년대 브루탈리즘 캠퍼스 건물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되었으며, “현장 타설된 브루탈리즘 콘크리트를 섬세한 맥락적 소재로 활용할 기회”를 반영하고 있다.

〈빌라 괴트〉는 1995년 3월 3일 웁살라 카운티 행정위원회에 의해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물로 지정되었다. 영국에서는 여러 브루탈리즘 건물이 역사적 건물로 등재되었으며, 건축가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스펙트》 매거진의 설문조사에서 스코틀랜드 최고의 전후 건물로 선정된 길레스피, 키드 & 코이아의 〈성 베드로 신학교〉 등이 보존 캠페인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미국에서도 뉴헤이븐의 롱워프에 있는 〈피렐리 타이어 빌딩〉과 같은 유사한 건물이 인정 받았다. 트웬티스 센추리 소사이어티는 영국의 〈트라이콘 센터〉와 영화 〈겟 카터〉에서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한 〈트리니티 스퀘어〉 다층 주차장 등의 철거 반대 캠페인을 벌였지만 실패했으나, 〈프레스턴 버스 정류장 차고〉, 런던의 〈헤이워드 갤러리〉 등의 경우에는 성공했다.

철거된 주목할만한 건물에는 이스트런던에 있는 스미스슨 부부의 〈로빈 후드 가든〉(2017), 존 매딘(1924~2012)의 〈버밍엄 중앙 도서관〉(2016), 버지니아주 레스톤에 있는 마르셀 브로이어의 〈미국언론재단빌딩〉, 워싱턴 DC의 아랄도 코쉬타(1925-2017)의 〈크리스트 사이언티스트 제3 교회〉(2014), 런던의 〈웰백 스트릿 주차장〉(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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