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스티아노 세를리오


빈첸초 라지오가 1830년경 상상으로 그린 세를리오 초상화. via Wikimedia Commons

세바스티아노 세를리오(1475.9.6.–1554년경)는 이탈리아 매너리즘 건축가로, 퐁텐블로 궁전을 지은 이탈리아 팀의 일원이었다. 세를리오는 『이 세테 리브리 델ㄹ’아르키테투라』(“건축7서”) 또는 『투테 ㄹ’오페레 ㄷ’아르키테투라, 에트 프로스페티바』(“건축과 원근법에 관한 모든 연구”)로 알려진 영향력 있는 논문을 통해 건축의 고전적 질서를 규범화하는 데 기여했다.


초기 생애

볼로냐에서 태어난 세를리오는 1514년에 로마로 가서 발다사레 페루치(1481-1536)의 아틀리에에서 일했으며, 1527년 로마 약탈로 모든 건축 프로젝트가 일시적으로 보류될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페루치와 마찬가지로, 그는 (자신의 경력을) 화가로 시작했다. 그는 1527년경부터 1540년대 초까지 베니스에서 살았지만 그 도시에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세를리오의 교회 파사드 모델은 피렌체에 있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1485년경)에서 알베르티가 처음 선보인, 낮은 쪽 아일(통로) 옆에 있는 높은 볼트형 네이브(신도석)이 있는 고딕 양식에 고전적인 외관을 제공하는 혁신적인 방식을 정리하고 더 고전적으로 만든 정규화된 버전이었다. 이 아이디어는 1530년대에 널리 퍼져 있었다: 몇몇 동시대 교회들이 우위를 놓고 경쟁했지만, 세를리오의 목판화가 이 개념을 모든 건축가의 손에 쥐여주었다. 토목 기사로서, 그는 요새를 디자인했다.

어떠한 화려한 실행 작업보다 세를리오의 출판물이 프랑수아 1세의 관심을 끌었다. 세를리오의 경력은 (지아코모 바로치 다 비뇰라와 벤베누토 첼리니를 포함한) 이탈리아 디자이너와 공예가 팀이 모였던 퐁텐블로 성의 건설과 장식에 대한 자문을 구하기 위해, 왕이 그를 프랑스로 초청하면서 시작되었다. 세를리오는 여러 개인적인 의뢰를 받았지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남아 있는 유일한 것은 부르고뉴에 있는 토네르 인근의 약 1546년에 지어진 앙시-르-프랑 성이다.

세를리오는 말년을 리옹에서 보낸 후, 1554년경 파리의 퐁텐블로 지역에서 사망했다.


세를리오의 다섯 가지 오더. via Wikimedia Commons
1537년 세를리오의 교회 파사드 모델은 18세기까지 지속된 형식을 구체화했다. via Wikimedia Commons
7권 중 한 페이지. via Wikimedia Commons
8권 중 일부 펼침면. via Wikimedia Commons

건축에 관한 논문

투테 ㄹ’오페레 ㄷ’아르키테투라, 에트 프로스페티바』(“건축과 원근법에 관한 모든 연구”)는 세를리오가 쓴 건축에 대한 실용적인 논문이다. 비록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가 르네상스 시대 최초의 장편 건축 논문을 저술(약 1450년경, 1486년 출간)했지만, 그것은 삽화가 없었고, 라틴어로 쓰여졌으며, 건축가와 건설업자뿐만 아니라 학식 있는 인본주의자들과 잠재적 후원자에게 어필하도록 디자인되었다. 세를리오는 텍스트를 보완하기 위해 고품질 삽화를 사용하는 것을 개척했다. 그는 이탈리아어로 글을 썼으며, 그의 책 중 일부는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가 병행된 텍스트로 출판되었다. 그의 논문은 건축가, 건설업자, 장인의 요구에 명시적으로 맞춰졌다.

이 논문은 여덟 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 6권은 몇 세기 동안 분실되었으며 8권은 비교적 최근까지 출판되지 않았다. 8권이 항상 논문의 일부로 간주되는 것은 아니다. 처음 다섯 권은 기하학, 원근법, 로마 고대, 오더, 교회 디자인에 관한 세를리오의 연구를 다룬다. 6권은 소작농 오두막에서 왕궁에 이르기까지 주택 디자인을 보여주고, (박물관) 루브르를 위한 세를리오의 지어지지 않은 디자인뿐만 아니라 폭군과 용병을 위한 최신 요새를 포함하여 르네상스 주택 유형에 대한 톡특한 기록을 제공한다. 7권은 대칭과 비례의 고풍스러운 원칙에 따라 고딕 양식 파사드를 리모델링하거나 ‘복원하는’ 방법을 포함하여, 과거 이론가들이 간과했던 공통의 디자인 문제에 대한 범위를 보여준다. “로마의 병영 설치법”으로 불리는 8권은 폴리비오스(기원전 200년경-118년경)의 설명에 따라 로마 진영(陣營)을 재구성하고, 그 뒤를 이어 트라야누스 황제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군사 도시와 기념비적인 다리가 뒤따른다. 포럼, 집정관(콘술)의 궁전, 욕실이 있는 이 책은 세를리오의 다른 실용적인 작업들과 달리, 일부는 환상이고 일부는 고고학이다.

4권의 서문에서, 세를리오는 그 내용의 대부분에 대해 그의 최근 사망한 멘토의 공로를 인정했다: “이 책에서 당신이 찾을 수 있는 모든 즐거운 것들에 관해서는, 당신은 제가 아닌 저의 선생인 발다사레 페루치(1481-1536)에게 공을 돌려야 한다…” 이 논문에 대한 페루치의 기여 정도는 알려져 있지 않다. “페루치는 고대의 유적에 대한 상세한 연구에서 지도(指導)적인 정신이었고, 그는 그의 드로잉을 세를리오에게 남겼다. 바사리와 첼리니는 이 책의 대부분의 공을 페루치에게 돌리겠지만, 보다 최근의 착가들은 연구에서 세를리오의 역할과 그의 동료의 작업을 완성하려는 그의 선의를 옹호한다.”

기획 및 출판

그의 가장 초기 저서가 출간되었던 1537년까지, 세를리오는 적어도 10년 동안 그 논문을 작업해 왔으며 이미 그것을 7권의 책으로 정리했다. 비록 세를리오는 계획된 7권의 책을 모두 완성했지만, 그의 생애 동안 처음 다섯 권의 책만 출간되었다. 6권은 20세기까지 필사본으로 남아 있었다. 그는 부록으로 생각할 수 있는 두 권의 책을 추가로 저술했다: 그가 생전에 출판한 마지막 책인 『문에 관한 특별한 책』; 그리고 완성 상태와 다른 책들과의 의도된 관계가 모두 불확실한, 고대 로마 군대 진영 디자인에 대한 논의인 『폴리비오스의 병영 설치법에 관하여』.

다음은 책의 출판 순서를 세를리오의 숫자 순서와 비교한 것이다:

41537 베니스On the Five Styles of Buildings
건물의 다섯 가지 양식에 관하여
31540 베니스On Antiquities
고대 유물에 관하여
1, 21545 파리On Geometry, On Perspective
기하학에 관하여, 원근법에 관하여
51547 파리On Temples
신전에 관하여
X1551 리옹Extraordinary Book of Doors
문에 관한 특별한 책
71575 프랑크푸르트On Situations (posthumous)
상황에 관하여 (사후)
61966 밀라노On Habitations (posthumous; MS facsimile)
거주지에 대하여 (사후; MS 복사)
Y1994 밀라노On Polybius’ Castrametation (posthumous)
폴리비우스의 병영 설치법에 관하여 (사후)

세를리오가 전체 작업을 위해 어떤 제목을 의도했는지, 확칠치 않다 ㅡ 아마도 첫 번째 출간된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건축의 일반 규칙’일 수도 있지만, 이것은 곧 그 책에만 특정하게 붙게 되었다. 다양한 판본들이 그 내용에 따라 『건축5서』 또는 『건축7서』로 알려졌다. 종종, 그것은 단순히 세를리오의 『건축론』으로 언급되며, 몇몇 중요한 판본들은 『투테 ㄹ’오페레 ㄷ’아르키테투라, 에트 프로스페티바』(“건축과 원근법에 관한 모든 연구”)라는 제목을 사용한다; 하지만 실제로 현존하는 9권의 모든 책(또는 일곱 권의 번호가 매겨진 책 모두)이 실제로 단일 판본으로 처음 출간된 것은 1996–2001년의 2권짜리 영어 번역본에서였다.

내용

비록 책들은 세를리오가 원하는 출판 순서대로 나온 것으로 보이지만, 그가 명목상으로 정한 순서가 일반적인 내용에서 구체적인 내용으로 흘러가는 뚜렷한 흐름을 제공한다:

세를리오의 독자는 다음 순서로 나아간다: 첫째, 점, 선, 완전한 (정사각형) 평면을 구성하는 기하학적 정의로 구성된 유클리드의 ‘천국’; 둘째, 원근법 이론을 통해 표현된 자연의 근본적인 3차원 형태; 셋째, 판테온과 고대의 ‘이상화된’ 기념물에 반영된 완벽한 형태의 건축적 구현; 넷째, 고대 유적과 비트루비우스의 텍스트에서 입증된 바와 같이, 토스카나 오더에서 콤포지트(합성) 오더로 발전하는 오더의 규칙, 그리고 문, 벽난로, 궁전 파사드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오더의 보편성; 다섯째, 세를리오가 창안한 신전에서 오더의 사용; 여섯째, 주택 디자인에서 오더의 사용 (오두막에서 궁전으로의 오름차순으로, 다시 등급을 매김); 가장 낮은, 일곱째 단계에서는 건축가가 겪을 수 있는 ‘사고들’ 또는 실질적인 문제로 끝맺는다.

의미심장하게도, 2권 “원근법에 관하여”의 마지막 몇 페이지에는 르네상스 연극에 큰 영향을 끼친 세 가지 연극 장면(만화, 비극, 풍자)과 무대 평면 및 단면이 수록되어 있다.

미학의 관점에서, 세를리오는 순수 예술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최초의 사람 중 하나다: “그리고 최근에 모든 순수 예술과 모든 훌륭한 예술가들의 아버지이자 후원자인 레오 10세”.

영향

세를리오의 책들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스타일의 전달자로서, 그리고 다양한 언어로 빠르게 사용할 수 있게 되어,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에서 큰 영향을 끼쳤다. 많은 로마 건물에 대한 그의 평면도와 입면도들은 종종 재인쇄되어, 고전적인 이미지의 유용한 레퍼토리를 제공했다.

책의 최초 출간 후 5년 이내에, 플랑드르 학자 피테르 쿠케 판 알스트(1502-1550)가 플라망어(벨기에 북부 지역에서 사용되는 네덜란드어), 독일어, 프랑스어로 된 『4서』의 각색본을 앤트워프에서 출판했다; 세를리오는 자신의 작업에 대한 이러한 무허가 판을 질 낮은 위조물로 간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세를리오의 영향력 확산에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했다. 쿠케 판 알스트의 제자이며 네덜란드 건축가이자 엔지니어인 한스 프레데만 드 브리스(1527-1609)는 알프스 북쪽에 세를리오의 양식과 장식들을 전파했다. 그리고 1606년 암스테르담에서 출판된 1-5권의 네덜란드어 번역본은 주로 쿠케 판 알스트의 플랑드르어 작업을 기반으로 했으며, 이는 1611년 런던에서 로버트 피크(1551-1619)가 출판한 1-5권 영어 번역본의 토대가 되었다. 비록 4차에 걸친 번역본이었지만, 그것은 거의 4세기 동안 세를리오의 가장 완벽한 영어 판본으로 남아 있었다. 그 예시는 재커비언 양식 건축의 주요 영감이었던 앤트워프 매너리즘 양식 판화의 영향력에 대항하는 역할을 했다. 훗날, 세를리오의 책은 크리스토퍼 렌 경(1632-1723) 그리고 (영국 도시) 바스를 계획한 건축가이자 기업가인 존 우드(1704-1754)의 서재에 있었다. 이니고 존스(1573-1652)는 그가 주석을 달았던 이탈리아어 판본을 소유했다.

3권과 4권은 오리지널 이탈리아 판본과 동일한 삽화를 사용한 후안 데 아얄라(1745-1797)에 의해 톨레도에서 1552년 스페인어로 출판되었다.

  • 세를리오의 영향의 예
아세자 저택의 외관에 미친 영향. via Wikimedia Commons
호텔 몰리니에의 정문에 미친 영향. via Wikimedia Commons
메종 뒤 크리블의 문에 미친 영향. via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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