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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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사진(신코우샤신)은 일본에서 1930년대에 일어난 일본사진사에서 중요한 변혁의 기폭제가 된 예술 표현 운동이다. 일본의 독자적인 운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해외의 동향에 연동하여 생긴 국제적인 흐름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변천

신흥사진은 독일의 신즉물주의(노이에 자하리히카이트)의 영향에서 비롯된 1930년 전후로 강해진 사진 표현의 흐름으로, 세계 각국에 파급되었다. 독일에서의 ‘노이에 포토’에 대한 운동으로, 미국에서는 독일어를 직역하여 ‘뉴 포토그래피’라고도 불린다. 독일의 노이에 포토를 “독일 신흥사진”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일본에서의 해석은 “근대 사진”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독일에서의 움직임을 집대성한 전시회가 1929년 독일에서 열린 〈필름 운트 포토〉(「영화와 사진」) 전이며, ‘노이에스 제언’(뉴 비전)으로 알려진 모호이너지(1895-1946)는 이 전람회의 구성을 담당했다.

그 2년 후인 1931년, 〈독일 국제 이동 사진전〉으로서  같은 전시의 ‘사진 부문’ 일부가 일본의 도쿄와 오사카에서 공개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것들은 일본 사진계에 강한 영향을 주어, 일본의 신흥사진의 보급을 강하게 촉진시켰다.

신흥사진은 기본적으로 회화와는 다른 사진의 독자적인 표현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지금까지의 회화주의적 픽토리얼리즘(예술사진)과 결별하는 것이며, 사상적으로도 미국의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등이 주창한 스트레이트 포토그래피 개념에 가깝다. 이 흐름의 구체적인 일본 사진가로는 호리노 마사오(1907-1998), 가나마루 시게네(1900-1977), 와타나베 요시오(1907-2000), 오쿠보 코로쿠(1900-1936) 등을 들 수 있으며, 근대 찬양, 기계 미학의 제창, 도시와 사회성 중시, 보도사진과의 근접성 등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사진 표현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그 범위는 스트레이트 포토그래피보다 넓으며, 특히 선구자인 라슬로 모호이너지, 프란츠 로(1890-1965), 렝거-파츄(1897-1966) 등을 중심으로 한 바우하우스의 사진 경향도 당연히 포함된다(포토그램, 포토몽타주 등의 기법을 사용하는 경향, 구성주의를 적용하는 경향도 포함). 현미경이나 망원경 등을 이용한 과학사진까지 포함해서 생각할 수 있다. 그 점에 있어서, 스트레이트 포토그래피와 같은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이러한 경향에 속하는 일본의 구체적인 사진작가로는 나카야마 이와타(1895-1949), 코이시 기요시(1908-1957), 야스이 나카하루(1903-1942) 등을 들 수 있다. 이 경향은 전위 사진과의 근접성이 있어, 히라이 테루시치(1900-1970) 등도 이 흐름에 들어갈 수도 있다.

‘신흥사진’이라는 명칭은 《포토타임즈》(1924년 3월 일본에서 창간한 사진 잡지)의 기무라 센이치(1900-1938)가 중심이 되어 1930년에 결성한 ‘신흥사진연구회’와 (이들이) 창간한 《신흥사진연구》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전쟁 전 일본의 사진계에서는 이 신흥사진 표현 운동이 도쿄보다 오히려 간사이의 사진화단에서 크게 발전했으며, 그 선구자로 ‘아시야 카메라 클럽’이 있다. 신흥사진을 구현한 잡지로는 《코오가(광화)》(1932~1933년 간행되었다. 동인으로는 노지마 야스조(1889-1964), 나카야마 이와타, 기무라 이헤이(1901-1974), 2호부터 이나 노부오(1898-1978))가 있고, 사진집으로는 호리노 마사오의 『카메라・눈×철・구성』(1932)이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