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canny

언캐니는 단순히 신비로운 것이 아니라, 묘하게 친숙하게 느껴져서 오히려 불안감을 주는 심리적 경험이다. 이 현상은 친숙한 존재가 공포스럽거나, 으스스하거나, 금기시되는 맥락에서 마주치는 사건을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
The uncanny is the psychological experience of an event or thing that is unsettling in a way that feels oddly familiar, rather than simply mysterious. This phenomenon is used to describe incidents where a familiar entity is encountered in a frightening, eerie, or taboo context.
에른스트 옌치(1867-1919)는 언캐니의 개념을 제시했고, 나중에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가 1919년 에세이 「다스 운하임리히(두려운 낯섦)」에서 인형과 밀랍 인형의 섬뜩함을 탐구하면서 이를 더욱 발전시켰다. 프로이트의 경우, 언캐니는 기묘함을 일상적인 것 안에 둔다. 정신분석 이론가 자크 라캉은 이 아이디어를 확장하여 언캐니가 우리를 “나쁜 것과 좋은 것, 불쾌에서 오는 쾌를 구별하는 방법을 알 수 없는 곳에” 두며, (그 결과) 실재(the Real)에게 손짓하는 환원할 수 없는 불안을 초래한다고 썼다. 이 개념은 그 이후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1927-)의 ‘언캐니 밸리’와 쥘리아 크리스테바(1941-)의 ‘아브젝시옹’ 개념 같은 다양한 사상가와 이론가들에 의해 채택되어 왔다.
Ernst Jentsch set out the concept of the uncanny later elaborated on by Sigmund Freud in his 1919 essay Das Unheimliche, which explores the eeriness of dolls and waxworks. For Freud, the uncanny locates the strangeness in the ordinary. Expanding on the idea, psychoanalytic theorist Jacques Lacan wrote that the uncanny places us “in the field where we do not know how to distinguish bad and good, pleasure from displeasure”, resulting in an irreducible anxiety that gestures to the Real. The concept has since been taken up by a variety of thinkers and theorists such as roboticist Masahiro Mori’s uncanny valley and Julia Kristeva’s concept of abjection.
어원
Etymology
‘Canny’는 앵글로색슨어 어근 ‘ken’(“지식, 이해, 인지; 정신적 인식”)에서 유래했다. 언캐니는 따라서 “자신의 ken을 넘어선 개념”, 즉 친숙한 지식이나 인식 밖에 있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
Canny is from the Anglo-Saxon root ken: “knowledge, understanding, or cognizance; mental perception.” The uncanny is thus “an idea beyond one’s ken“, something outside one’s familiar knowledge or perceptions.
프로이트는 독일어 ‘운하임리히’(기분 나쁜; 으스스한)를 ‘하임리히’(친숙한) 또는 “homely”([자기 집처럼] 아늑한/편안한)의 반의어로 언급했다. 그러므로 언캐니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개념을 보다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unhomeliness”가 될 것이다.
Freud noted the German unheimlich as the antonym of heimlich, or the “homely”. A more literal rendering of the psychoanalytic concept of the uncanny would therefore be “unhomeliness”.
역사
History
독일 관념론
German idealism
철학자 F. W. J. 셸링(1775-1854)은 1837년 자신의 후기 저작인 『신화의 철학』에서 호메로스적 명료함이 이전의 언캐니에 대한 억압 위에 세워졌다고 상정하면서, 언캐니에 대한 질문을 제기했다.
Philosopher F. W. J. Schelling raised the question of the uncanny in his late Philosophie der Mythologie of 1837, postulating that the Homeric clarity was built upon a prior repression of the uncanny.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는 『힘에의 의지』 원고에서 허무주의를 “모든 손님들 중에 가장 기이한 것”이라고 말했고, 앞서, 『도덕의 계보』에서 그는 서구 문화의 가치를 뒷받침하는 형이상학을 파괴한 것은 “진리에의 의지”라고 주장한다. 이런 이유로, 그는 강한 가치를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스스로를 약화시키는 계몽주의 이상을 괴롭히는 조건을 설명하기 위해 “유럽 허무주의”라는 문구를 만들었다.
In The Will to Power manuscript, German philosopher Friedrich Nietzsche refers to nihilism as “the uncanniest of all guests” and, earlier, in On the Genealogy of Morals he argues it is the “will to truth” that has destroyed the metaphysics that underpins the values of Western culture. Hence, he coins the phrase “European nihilism” to describe the condition that afflicts those Enlightenment ideals that seemingly hold strong values yet undermine themselves.
에른스트 옌치
Ernst Jentsch
언캐니함(종종 약간 무서운 방식으로, 이상하거나 신비로운 사실)은 에른스트 옌치(1867~1919)가 1906년 에세이 「언캐니의 심리학에 대하여」에서 심리학적으로 처음 탐구되었다. 옌치는 언캐니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그것은) “지적 불확실성”의 산물이다; “그래서 언캐니는 언제나, 말하자면, 사람들이 그 안에서 길을 잃은 듯 헤매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 사람이 환경에 더 잘 적응할수록, 그 환경 속의 사물과 사건에 대해서 언캐니한 느낌을 덜 쉽게 받을 것이다.” 그는 그것이 소설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해 부연한다:
Uncanniness was first explored psychologically by Ernst Jentsch in a 1906 essay, On the Psychology of the Uncanny. Jentsch defines the Uncanny as: being a product of “…intellectual uncertainty; so that the uncanny would always, as it were, be something one does not know one’s way about in. The better oriented in his environment a person is, the less readily will he get the impression of something uncanny in regard to the objects and events in it.” He expands upon its use in fiction:
이야기를 할 때 언캐니한 효과를 쉽게 만들어내는 가장 성공적인 장치 중 하나는 이야기 속 특정 인물이 인간인지 자동인형인지 여부를 독자에게 불확실하게 남겨두는 것이며, , 그 과정에서 독자가 그러한 불확실성에 바로 관심을 집중하지 않도록, 다시 말해 독자가 이 문제를 파고 들어 즉시 밝혀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In telling a story one of the most successful devices for easily creating uncanny effects is to leave the reader in uncertainty whether a particular figure in the story is a human being or an automaton and to do it in such a way that his attention is not focused directly upon his uncertainty, so that he may not be led to go into the matter and clear it up immediately.
옌치는 독일 작가 E. T. A. 호프만(1776-1822)을 자신의 작업에서 언캐니 효과를 사용한 작가로 식별하는데, 특히 실물 같은 인형인 올림피아가 등장하는 호프만의 소설 “더 샌드맨(데어 잔트만)”에 초점을 맞춘다.
Jentsch identifies German writer E. T. A. Hoffmann as a writer who uses uncanny effects in his work, focusing specifically on Hoffmann’s story “The Sandman” (“Der Sandmann”), which features a lifelike doll, Olympia.
지그문트 프로이트
Sigmund Freud
언캐니 개념은 나중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1919년 에세이 「언캐니」에서 (프로이트가 “문학에서 ‘언캐니’에 대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가”로 언급한) 호프만의 작품을 바탕으로 더욱 정교화하고 발전시켰다. 그렇지만, 그는 올림피아가 이야기(“샌드맨”) 속에서 중심적인 언캐니 요소라는 옌치의 믿음을 비판한다:
The concept of the Uncanny was later elaborated on and developed by Sigmund Freud in his 1919 essay “The Uncanny”, which also draws on the work of Hoffmann (whom Freud refers to as the “unrivalled master of the uncanny in literature”). However, he criticizes Jentsch’s belief that Olympia is the central uncanny element in the story (“The Sandman”):
나는 – 그리고 이 이야기를 읽은 대부분의 독자들도 나와 의견을 같이하리라 생각하지만 – 어느 모로 보나 살아 있는 존재처럼 보이는 인형, 올림피아의 테마가 이 이야기에서 유례없는 언캐니한 분위기를 불러 일으키는 유일한 요소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으며, 더 나아가 그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도 볼 수 없다.
I cannot think – and I hope most readers of the story will agree with me – that the theme of the doll Olympia, who is to all appearances a living being, is by any means the only, or indeed the most important, element that must be held responsible for the quite unparalleled atmosphere of uncanniness evoked by the story.
대신에, 프로이트는 이야기의 완전히 다른 요소, 즉 “눈을 빼앗기는 것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 속 “언캐니함의 더 두드러진 사례”로 끌어들인다. 그는 눈을 잃는 것에 대한 불안이 남성의 거세 불안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는 이어서, 이 불안이 남성 관객을 남성성을 빼앗긴 채 언캐니함을 느끼게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들의 남성성이 빼앗기는 것을 통해, 프로이트는 남성의 두려움을 형성하는 핵심적인 기여 요소를 설명할 수 있는는 토대를 마련했다.
Instead, Freud draws on a wholly different element of the story, namely, “the idea of being robbed of one’s eyes”, as the “more striking instance of uncanniness” in the tale. He focuses on how the anxiety of their loss, is not unlike male castration anxiety. He continues, explaining how this anxiety may lead a male audience, robbed of their masculinity, feeling the uncanny. Their masculinity being robbed, provides Freud the foundation to illustrate a central contributor to male fear.
프로이트는 계속해서, 에세이의 나머지 부분에 걸쳐, “동일한 것의 반복”의 사례에서 발생하는 언캐니 효과를 확인하고, 이 개념을 반복강박의 개념과 연결시킨다. 그는 길을 잃고 우연히 자신의 발자취를 되짚어가는 사건, 그리고 겉보기에 의미 있게 보이는 임의의 수가 되풀이되는 사례를 포함시킨다 (여기서 프로이트는 융(1875-1961)이 훗날 ‘동시성’으로 언급한 개념을 예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또한 오토 랑크(1884-1939)의 “더블” 개념의 언캐니한 본성에 대해서도 논의한다.
Freud goes on, for the remainder of the essay, to identify uncanny effects that result from instances of “repetition of the same thing,” linking the concept to that of the repetition compulsion. He includes incidents wherein one becomes lost and accidentally retraces one’s steps, and instances wherein random numbers recur, seemingly meaningfully (here Freud may be said to be prefiguring the concept that Jung would later refer to as synchronicity). He also discusses the uncanny nature of Otto Rank’s concept of the “double”.
프로이트는 독일어 어원에서 파생된 ‘언캐니’의 측면과 구체적으로 연관짓는다. 그는 독일어 형용사 ‘운하임리히’를 그 기본형인 ‘하임리히(감추다, 숨기다, 비밀리에)’와 대조함으로써, 사회적 금기가 종종 경건한 존경심뿐 아니라, ㅡ 특히 감춰진 사항이 명백히 또는 추정상 성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경우 ㅡ 금기 상태의 사항이 ‘세인의 이목’(눈 또는 ‘시야’ 메타포와 비교하라.)으로부터 감춰지는 것은 위험한 위협이자 혐오스러운 존재일 것이라는 일반적인 가정을 낳음으로써, 더 나아가 공포 및 심지어 혐오의 아우라를 낳는다고 제안한다. 기본적으로, ‘언캐니’는 무의식적으로 우리 자신의 ‘이드(원초아)’, 즉 우리의 금지되어 억압된 충동 ㅡ 특히 사고의 전능성에서 유아적 신념을 상기시킬 수 있는 불확실성의 맥락에 놓일 때 ㅡ 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언캐니 요소들은 오이디푸스적 죄책감에 휩싸인 우리의 ‘슈퍼-에고(초자아)’가 사회적 규범을 일탈한 것에 대한 처벌에 의한 상징적 거세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위협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이와 같이, 우리 자신의 억압된 충동을 투영하는 사항과 개인은 우리에게 가장 언캐니한 위협이 되고, 동화 속 사회의 적과 유사한 언캐니한 괴물과 기형물이 되며, 결과적으로 종종 우리가 인지하는 모든 종류의 고통, 재앙, 병(폐)에 대해 우리가 비난하는 희생양이 된다.
Freud specifically relates an aspect of the Uncanny derived from German etymology. By contrasting the German adjective unheimlich with its base word heimlich (“concealed, hidden, in secret”), he proposes that social taboo often yields an aura not only of pious reverence but even more so of horror and even disgust, as the taboo state of an item gives rise to the commonplace assumption that that which is hidden from public eye (cf. the eye or sight metaphor) must be a dangerous threat and even an abomination – especially if the concealed item is obviously or presumingly sexual in nature. Basically, the Uncanny is what unconsciously reminds us of our own Id, our forbidden and thus repressed impulses – especially when placed in a context of uncertainty that can remind one of infantile beliefs in the omnipotence of thought. Such uncanny elements are perceived as threatening by our super-ego ridden with oedipal guilt as it fears symbolic castration by punishment for deviating from societal norms. Thus, the items and individuals that we project our own repressed impulses upon become a most uncanny threat to us, uncanny monsters and freaks akin to fairy-tale folk-devils, and subsequently often become scapegoats we blame for all sorts of perceived miseries, calamities, and maladies.
이 긴 발췌문에서 우리가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하임리히’라는 단어가 그 반대 의미인 ‘운하임리히’와 동일한 의미를 나타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임리히’한 것이 ‘운하임리히’한 것이 될 수 있다. […] 일반적으로 우리는 ‘하임리히’라는 단어가 모호하지 않지만, 모순되지 않고 여전히 매우 다른 두 가지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게 된다: 한편으로 그것은 친숙하고 기분 좋은 것을 의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감춰져 보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운하임리히’가 ‘하임리히’의 첫 번째 의미의 반대말로만 사용되며, 두 번째 의미의 반대말로는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
반면에, 우리는 셸링이 ‘운하임리히’의 개념에 완전히 새로운 빛을 던지는,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에 따르면, 비밀로 남아 있어야 하고 숨겨져 있어야 하지만 밝혀진 모든 것이 ‘운하임리히’다. […] 꿈, 환상 및 신화에 대한 연구는 [“샌드맨”의 중심 주제로 사용된 것처럼] 우리에게 눈에 대한 불안, 실명에 대한 두려움이 거세에 대한 공포를 대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스스로 눈을 멀게 한 신화 속 범죄자 오이디푸스는 단순히 거세 형벌 ㅡ ‘탈리오 법’(보복의 법칙)에 의해 자신에게 준 유일한 형벌 ㅡ 의 완화된 형태일 뿐이었다. […] 신경증 환자의 분석으로부터 그들의 ‘거세 콤플렉스’에 대한 세부 사항을 배우고 그들의 정신 생활에서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을 때 더 이상의 모든 의심은 제거된다.
What interests us most in this long extract is to find that among its different shades of meaning the word heimlich exhibits one which is identical with its opposite, unheimlich. What is heimlich thus comes to be unheimlich. […] In general we are reminded that the word heimlich is not unambiguous, but belongs to two sets of ideas, which, without being contradictory, are yet very different: on the one hand it means what is familiar and agreeable, and on the other, what is concealed and kept out of sight. Unheimlich is customarily used, we are told, as the contrary only of the first signification of heimlich, and not of the second.
[…]
On the other hand, we notice that Schelling says something which throws quite a new light on the concept of the Unheimlich, for which we were certainly not prepared. According to him, everything is unheimlich that ought to have remained secret and hidden but has come to light.[…]A study of dreams, phantasies and myths has taught us that anxiety about one’s eyes, the fear of going blind [as used as a central theme in “The Sandman”], is often enough a substitute for the dread of being castrated. The self-blinding of the mythical criminal, Oedipus, was simply a mitigated form of the punishment of castration – the only punishment that was adequate for him by the lex talionis. […] All further doubts are removed when we learn the details of their ‘castration complex’ from the analysis of neurotic patients, and realize its immense importance in their mental life.
프로이트 이후, 자크 라캉은 자신의 1962~1963년 세미나 “ㄹ’앙그와스(불안)”에서 (삶에 대한) 불안의 영역에 들어가기 위해 ‘운하임리히’를 “특권적 통로”로 사용했다. 라캉은 주체를 유혹하여 자기애적 교착 상태에 빠지게 하는 동일한 이미지가, 갑자기, 만일의 사태에 의해, 어떤 감춰진 대상에 의존하며, 그래서 주체는 그 순간 자신이 자율적 존재가 아님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After Freud, Jacques Lacan, in his 1962–1963 seminar “L’angoisse” (“Anxiety”), used the Unheimlich “via regia” to enter into the territory of Angst. Lacan showed how the same image that seduces the subject, trapping him in the narcissistic impasse, may suddenly, by a contingency, show that it is dependent on something, some hidden object, and so the subject may grasp at the same time that he is not autonomous.
관련 이론
Related theories
이 개념은 쥘리아 크리스테바의 ‘아브젝시옹’ 개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이는 상징적 질서에서 강제로 추방된 어떤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브젝시옹은 언캐니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관찰자는 아브젝트 안에서 무언가를, 아마도 그것이 ‘추방’되기 전의 모습의 일부를 인식할 수 있지만, 그것이 처음부터 추방되게 만든 원인에 대해서는 혐오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테바는 ‘언캐니 스트레인저’(섬뜩한 낯선 존재)과 관련하여 과거 ‘아브젝트’의 언캐니한 귀환을 특히 강조한다.
This concept is closely related to Julia Kristeva’s concept of abjection, where one reacts adversely to something forcefully cast out of the symbolic order. Abjection can be uncanny in that the observer can recognize something within the abject, possibly of what it was before it was ‘cast out’, yet be repulsed by what it is that caused it to be cast out to begin with. Kristeva lays special emphasis on the uncanny return of the past abject with relation to the ‘uncanny stranger’.
사데크 라히미는 언캐니함 그리고 직접적이거나 은유적인 시각적 참조 사이의 공통적인 관계를 지적했으며, 이를 자아 발달의 기본적인 과정, 특히 라캉의 거울 단계 이론에서 발전된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라히미는 언캐니한 경험이 전형적으로 환각, 실명, 거울 및 기타 광학적 비유의 테마 및 메타포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입증하기 위해 다양한 맥락에서 광범위한 증거를 제시한다. 그는 또한 ‘언캐니’라는 개념이 등장한 문학 및 심리학적 전통에서 시각적 및 거울적 주제와 연관성이 강하게 나타나는 역사적 증거를 제시한다. 라히미에 따르면, 도플갱어, 유령, 데자뷔, 분신, 자기 소외 및 분열된 인격, 환영, 쌍둥이, 살아있는 인형 등과 같은 언캐니의 사례는 두 가지 중요한 특징 – 시각적 비유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자아의 이중화라는 주제의 변형이라는 것 – 을 공유한다.
Sadeq Rahimi has noted a common relationship between the uncanny and direct or metaphorical visual references, which he explains in terms of basic processes of ego development, specifically as developed by Lacan’s theory of the mirror stage. Rahimi presents a wide range of evidence from various contexts to demonstrate how uncanny experiences are typically associated with themes and metaphors of vision, blindness, mirrors and other optical tropes. He also presents historical evidence showing strong presence of ocular and specular themes and associations in the literary and psychological tradition out of which the notion of ‘the uncanny’ emerged. According to Rahimi, instances of the uncanny like doppelgängers, ghosts, déjà vu, alter egos, self-alienations and split personhoods, phantoms, twins, living dolls, etc. share two important features: that they are closely tied with visual tropes, and that they are variations on the theme of doubling of the ego.

로봇 공학자 모리 마사히로의 인간과 유사한 존재에 대한 인간의 반응에 대한 에세이인 「부키미노타니 겐쇼(不気味の谷; 불쾌한 골짜기 현상)」는 친숙한 살아있는 사람들 그리고 인형, 꼭두각시, 마네킹, 의수, 안드로이드 로봇 같은 마찬가지로 친숙한 무생물의 표현 사이의 간극을 설명한다. 골짜기 속 존재들은 이러한 두 개의 일반적 현상 사이에 위치한다. 모리는 자신이 이 개념을 옌치 및 프로이트와는 독립적으로 관찰했다고 밝혔으나, 라이하르트(1933-) 그리고 ‘부키미(不気味)’를 ‘언캐니’로 번역한 번역가들에 의해 그들 사이의 연결이 형성되었다.
Roboticist Masahiro Mori’s essay on human reactions to humanlike entities, Bukimi no Tani Genshō (Valley of Eeriness Phenomenon), describes the gap between familiar living people and their also familiar inanimate representations, such as dolls, puppets, mannequins, prosthetic hands, and android robots. The entities in the valley are between these two poles of common phenomena. Mori has stated that he made the observation independently of Jentsch and Freud, though a link was forged by Reichardt and translators who rendered bukimi as uncanny.
- 출처 : 「Uncanny」, Wikipedia(en), 2022.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