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for art’s sake
예술을 위한 예술 ㅡ 19세기 후반의 프랑스어 슬로건인 l’art pour l’art(‘라흐 푸흐 라흐’로 발음)의 일반적인 영어 표현 ㅡ 은 예술의 본질적 가치와 유일한 ‘진정한’ 예술은 모든 교훈적, 도덕적, 정치적, 공리주의적 기능으로부터 분리된다는 철학을 표현하는 문구다. 이러한 작업은 “내향적” 또는 “자발적” 인간을 포함하도록 확장된 개념인, ‘자기-목적적’(‘그 자체로 완결된’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αὐτοτελής’)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Art for art’s sake—the usual English rendering of l’art pour l’art (pronounced [laʁ puʁ laʁ]), a French slogan from the latter part of the 19th century—is a phrase that expresses the philosophy that the intrinsic value of art, and the only ‘true’ art, is divorced from any didactic, moral, political, or utilitarian function. Such works are sometimes described as autotelic (from Greek: autoteles, ‘complete in itself’), a concept that has been expanded to embrace “inner-directed” or “self-motivated” human beings.
이 용어는 때때로 상업적으로 사용된다. 이 문구의 라틴어 버전인 ars gratia artis(고전 라틴어 발음: 아르스 그라티아 아르티스)는 메트로-골드윈-메이어(미국 종합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기업)의 모토로 사용되며, 상징적인 영화 로고에서 사자 레오의 포효하는 머리 주위의 필름 스크롤에 등장한다.
The term is sometimes used commercially. A Latin version of this phrase, ars gratia artis (Classical Latin: [ˈars ˈɡraːtia artis]), is used as a motto by Metro-Goldwyn-Mayer and appears in the film scroll around the roaring head of Leo the Lion in its iconic motion picture logo.
역사
History
오리지널 문구인 “라흐 푸흐 라흐”(예술을 위한 예술)는 테오필 고티에(1811~1872)가 1835년 자신의 저서 『모팽 양(마드모아젤 드 모팽)』 서문에서 슬로건으로 처음 채택한 것이다.
The original phrase “l’art pour l’art” (‘art for art’s sake’) is credited to Théophile Gautier (1811–1872), who was the first to adopt it as a slogan in the preface to his 1835 book, Mademoiselle de Maupin.
그렇지만, 고티에만이 이 말을 쓴 것은 아니다: 그것은 빅토르 쿠쟁(1792~1897), 뱅자맹 콩스탕(1767~1830), 에드거 앨런 포(1809~1849)의 작품에도 등장한다. 예를 들어, 포는 자신의 에세이 「시적 원리」(1850)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Gautier was not, however, the only one to write those words: they appear in the works of Victor Cousin, Benjamin Constant, and Edgar Allan Poe. For instance, Poe argues in his essay “The Poetic Principle” (1850):
우리가 단지 시를 위해서만 시를 쓰고… 그것이 우리의 의도였다고 인정하는 것은 진정한 시적 위엄과 힘이 근본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자백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단순한 사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볼 수만 한다면 우리는 해 아래서 바로 이 시, 이 시 자체, 시일 뿐 그 이상도 아닌 이 시, 오로지 시를 위해 쓰여진 이 시보다 더 완벽하게 위엄 있고 더 없이 고귀한 작품이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는 것을 즉시 발견하게 될 것이다.
We have taken it into our heads that to write a poem simply for the poem’s sake … and to acknowledge such to have been our design, would be to confess ourselves radically wanting in the true poetic dignity and force:– but the simple fact is that would we but permit ourselves to look into our own souls we should immediately there discover that under the sun there neither exists nor can exist any work more thoroughly dignified, more supremely noble, than this very poem, this poem per se, this poem which is a poem and nothing more, this poem written solely for the poem’s sake.
“예술을 위한 예술”은 19세기 보헤미안의 신조가 되었다; 이 슬로건은 예술의 가치가 일부 도덕적이거나 교훈적인 목적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들 ㅡ 존 러스킨에서 훨씬 후대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옹호하는 코뮤니스트들에 이르기까지 ㅡ 에 맞서 제기되었다. 그것은 예술을 정치화하려는 마르크스주의적 목표에 대한 거부였다. 예술을 위한 예술은 예술이 예술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고, 예술적 추구는 그 자체로 정당화되며, 예술은 도덕적 정당화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그리고 실제로, 도덕적으로 중립적이거나 체제 전복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Art for the sake of art” became a bohemian creed in the 19th century; a slogan raised in defiance of those—from John Ruskin to the much later Communist advocates of socialist realism—who thought that the value of art was to serve some moral or didactic purpose. It was a rejection of the Marxist aim of politicising art. Art for the sake of art affirmed that art was valuable as art in itself; that artistic pursuits were their own justification; and that art did not need moral justification, and indeed, was allowed to be morally neutral or subversive.
따라서,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1834~1903)는 16세기의 반종교개혁(가톨릭 개혁) 이후 관행처럼 굳어진 국가나 공식 종교에 봉사하는 예술의 익숙한 역할을 거부하며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예술은 모든 쓸 데 없는 말(인기를 끌려는 말; 허풍; 부질없는 이야기)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하며 … 헌신, 연민, 사랑, 애국심 등 예술과 완전히 이질적인 감정과의 혼동 없이, 눈이나 귀의 예술적 감각에 호소해야 한다.” 이러한 당돌한 일축은 또한 작가가 감상주의로부터 스스로 거리를 두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 진술에서 낭만주의의 잔재는 결정권자(심판자)로서 예술가 자신의 눈과 감성에 의존하는 것이다.
As such, James McNeill Whistler wrote the following in which he discarded the accustomed role of art in the service of the state or official religion, which had adhered to its practice since the Counter-Reformation of the 16th century: “Art should be independent of all claptrap – should stand alone…and appeal to the artistic sense of eye or ear, without confounding this with emotions entirely foreign to it, as devotion, pity, love, patriotism and the like.” Such a brusque dismissal also expressed the artist’s distancing of himself from sentimentalism. All that remains of Romanticism in this statement is the reliance on the artist’s own eye and sensibility as the arbiter.
이 노골적인 슬로건은, 영국 예술과 문학의 역사에서 빅토리아 시대 모럴리즘(도덕주의)에 대해 자의식적으로 반항했던 ‘탐미주의 운동(유미주의)’의 월터 페이터(1839~1894)와 그의 추종자들과 관련이 있다. 그것은 1868년 동시에 출판된 두 작품 – 《웨스트민스터 리뷰》에 게재된 윌리엄 모리스(1834~1896) 시에 대한 페이터의 리뷰, 그리고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에 대한 앨저넌 찰스 스윈번(1837~1919)의 리뷰 – 에서 영어로 처음 등장했다. 페이터의 수정된 형태의 리뷰는 탐미주의 운동의 가장 영향력 있는 텍스트 중 하나인 『르네상스 역사 연구』(1873)에 등장한다.
The explicit slogan is associated, in the history of English art and letters, with Walter Pater and his followers in the Aesthetic Movement, which was self-consciously in rebellion against Victorian moralism. It first appeared in English in two works published simultaneously in 1868: in Pater’s review of William Morris’s poetry in the Westminster Review, and the other in William Blake by Algernon Charles Swinburne. A modified form of Pater’s review appeared in his Studies in the History of the Renaissance (1873), one of the most influential texts of the Aesthetic Movement.
아널드 베넷(1867~1931)은 이 문제에 대해 익살맞은 발언을 했다: “내가 가만히 앉아서, 내가 더 잘 할 수 있는 이야기에 대해 다른 동료들이 각각 2기니를 챙기는 것을 보아야 하는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나의 유일한 목적이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고 상상한다면, 그들은 처참하게 속고 있는 것이다.”
Arnold Bennett made a facetious remark on the issue: “Am I to sit still and see other fellows pocketing two guineas apiece for stories which I can do better myself? Not me. If anyone imagines my sole aim is art for art’s sake, they are cruelly deceived.”
독일에서, 시인 슈테판 게오르게(1868~1933)는 이 문구(‘쿤스트 퓌어 디 쿤스트’)를 번역하여 자신의 문학 프로그램에 채택한 최초의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자신의 문학 잡지 《블래터 퓌어 디 쿤스트》의 1권(1892)에서 발표했다. 그는 주로 샤를 보들레르(1821~1867)와 그가 파리에서 만난 프랑스 상징주의자들에게서 영감을 받았는데, 그곳에서 그는 알베르 생-폴과 친구였으며 스테판 말라르메(1842~1898)를 중심으로 한 서클에서 활동했다.
In Germany, the poet Stefan George was one of the first artists to translate the phrase (‘Kunst für die Kunst‘) and adopt it for his own literary programme which he presented in the first volume of his literary magazine Blätter für die Kunst (1892). He was inspired mainly by Charles Baudelaire and the French Symbolists whom he had met in Paris, where he was friends with Albert Saint-Paul and consorted with the circle around Stéphane Mallarmé.
비판
Criticism
니체
By Nietzsche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는 예술가가 여전히 예술을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고 주장하면서, ‘예술을 위한 예술은 없다’고 주장했다:
Friedrich Nietzsche claimed that there is ‘no art for art’s sake’, arguing that the artist still expresses them being through it:
도덕적 설교와 인간 개선이라는 목적이 예술에서 제외된다고 해도, 예술이 완전히 목적이 없고, 방향을 잃고, 무의미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 요컨대, ‘예술을 위한 예술’은, 자신의 꼬리를 물어뜯는 벌레다. “도덕적인 목적보다는 오히려 목적이 전혀 없다!” ㅡ 이는 단순한 열정에 관한 이야기다. 반면에, 심리학자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 모든 예술이 하는 것은 무엇인가? 칭송하지 않는가? 미화하지 않는가? 선택하지 않는가? 선호하지 않는가? 이 모든 것과 함께 그것은 특정 가치를 강화하거나 약화시킨다. 이것이 단순히 “덧붙은” 것인가? 우연인가? 예술가의 본능이 미치지 못하는 무엇인가? 아니면 예술가의 능력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닌가? 그의 기본적인 본능은 예술을 지향하는가, 아니면 오히려 예술의 감각을 지향하는가? 삶? 삶의 바람직함? 예술은 삶에 대한 위대한 자극이다: 어떻게 그것을 목적 없는 것으로, 방향 없는 것으로, 예술을 위한 예술로 이해할 수 있는가?
When the purpose of moral preaching and of improving man has been excluded from art, it still does not follow by any means that art is altogether purposeless, aimless, senseless — in short, l’art pour l’art, a worm chewing its own tail. “Rather no purpose at all than a moral purpose!” — that is the talk of mere passion. A psychologist, on the other hand, asks: what does all art do? does it not praise? glorify? choose? prefer? With all this it strengthens or weakens certain valuations. Is this merely a “moreover”? an accident? something in which the artist’s instinct had no share? Or is it not the very presupposition of the artist’s ability? Does his basic instinct aim at art, or rather at the sense of art, at life? at a desirability of life? Art is the great stimulus to life: how could one understand it as purposeless, as aimless, as l’art pour l’art?
마르크스주의자와 사회주의자
By Marxists and socialists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예술을 사회주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정치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Marxists have argued that art should be politicised for the sake of transmitting the socialist message.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사회주의 작가였던 조르주 상드(1804~1876)는, 1872년에 ‘예술을 위한 예술’은 공허한 문구, 쓸모 없는 문장이라고 썼다. 그녀는 예술가들이 그들의 작업을 감상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접근가능하도록 보장하면서 “가능한 한 많은 영혼에게 그것을 전달할 적절한 표현을 찾아야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George Sand, who was not a Marxist but a socialist writer, wrote in 1872 that L’art pour l’art was an empty phrase, an idle sentence. She asserted that artists had a “duty to find an adequate expression to convey it to as many souls as possible,” ensuring that their works were accessible enough to be appreciated.
세네갈 대통령, 세네갈 사회당 대표, 네그리튀드 공동 창립자인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1906~2001)와 반식민주의적 아프리카 민족 해방주의 작가인 치누아 아체베(1930~2013)는 이 슬로건이 예술과 창조에 대한 제한적이고 유럽-중심적인 관점이라고 비판했다. 상고르는 “블랙 아프리칸 미학”에서, 예술은 “기능적”이며 “블랙 아프리카에서, ‘예술을 위한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아체베는 “예술을 위한 예술은 악취를 없앤(보기 좋게 꾸민) 개똥의 또 다른 조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창조의 신새벽』이라는 제목의 에세이 및 비평 모음집에서 더욱 통렬하게 비판했다.
Senegalese president, head of the Socialist Party of Senegal, and co-founder of Negritude Leopold Sedar Senghor and anti-colonial Africanist writer Chinua Achebe have both criticised the slogan as being a limited and Eurocentric view on art and creation. Senghor argued that, in “black African aesthetics,” art is “functional” and that in “black Africa, ‘art for art’s sake’ does not exist.” Achebe is more scathing in his collection of essays and criticism entitled Morning Yet on Creation Day, in which he asserts that “art for the sake of art is just another piece of deodorised dog shit.”
마르크스주의 해석학의 창시자 중 한 명인 발터 벤야민(1892~1940)은 그의 중요한 1936년 에세이 「기계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에서 이 슬로건에 대해 논한다. 그는 복제, 특히 사진에서의 혁신에 대한 전통적인 예술 영역 내에서의 반응과 관련하여 처음으로 그것을 언급한다. 그는 심지어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슬로건을 사회적 측면을 괄호로 묶는 “예술 신학”의 일부로 명명한다. 에세이의 에필로그에서, 벤야민은 파시즘과 예술의 연관성에 대해 논의한다. 그의 주요 예시는 미래파와 그것의 멘토인 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1876~1944)의 사상이다. 미래파의 슬로건 중 하나는 “피아트 아르스 – 페레아트 문두스”(세상이 망할지라도, 예술을 행하라)였다. 도발적으로, 벤야민은 파시즘이 전쟁을 “기술에 의해 변화되어 온 지각에 대한 예술적 만족을 제공하기를” 기대하는 한, 그때 이것이 “예술을 위한 예술”의 완성(첫날밤 치르기)이자 실현이라고 결론짓는다.
Walter Benjamin, one of the developers of Marxist hermeneutics, discusses the slogan in his seminal 1936 essay “The Work of Art in the Age of Mechanical Reproduction”. He first mentions it in regard to the reaction within the realm of traditional art to innovations in reproduction, in particular photography. He even terms the “L’art pour l’art” slogan as part of a “theology of art” in bracketing off social aspects. In the Epilogue to his essay, Benjamin discusses the links between fascism and art. His main example is that of Futurism and the thinking of its mentor Filippo Tommaso Marinetti. One of the slogans of the Futurists was “Fiat ars – pereat mundus” (‘Let art be created, though the world perish’). Provocatively, Benjamin concludes that as long as fascism expects war “to supply the artistic gratification of a sense of perception that has been changed by technology,” then this is the “consummation,” the realization, of “L’art pour l’art.”
멕시코 공산당 당원이자 “혁명적 대의의 지지자”였던 디에고 리베라(1886~1957)는 예술을 위한 예술 이론이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갈라놓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계속해서 리베라는 이른바 “순수 예술”의 특성 중 하나가 소수의 우월한 사람들만이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 예술 운동이 예술의 사회적 도구로서의 가치를 박탈하고 궁극적으로 부자들만 이용할 수 있는 통화(화폐)-같은 아이템으로 만들 것이라고 말한다.
Diego Rivera, who was a member of the Mexican Communist Party and “a supporter of the revolutionary cause,” claims that the art for the sake of art theory would further divide the rich from the poor. Rivera goes on to say that since one of the characteristics of so called “pure art” was that it could only be appreciated by a few superior people, the art movement would strip art from its value as a social tool and ultimately make art into a currency-like item that would only be available to the rich.
중국 공산당 지도자 마오쩌둥(1893~1976)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술을 위한 예술, 계급 위에 군림하는 예술, 정치로부터 분리되거나 독립된 예술 같은 것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프롤레타리아 문학과 예술은 전체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대의의 일부이며; 그것들은, 레닌이 말했듯, 전체 혁명 기계의 톱니와 바퀴다.”
Chinese communist leader Mao Zedong said: “There is in fact no such thing as art for art’s sake, art that stands above classes, art that is detached from or independent of politics. Proletarian literature and art are part of the whole proletarian revolutionary cause; they are, as Lenin said, cogs and wheels in the whole revolutionary machine.”
- 출처: 「Art for art’s sake」, Wikipedia(en), 2022.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