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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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에 있는 〈독일 제국 총리실〉의 역사적인 사진. via Wikimedia Commons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붉은 군대 극장〉의 역사적인 사진. via Wikimedia Commons
〈소비에트 궁전〉은 소련의 실현되지 않은 프로젝트였다. via Wikimedia Commons

전체주의 건축은 “독재 정권, 과도하게 중앙집권화된 정부, 또는 반대를 용납하지 않는 정치 단체, 특히 파시스트 이탈리아, 나치 독일, 스탈린의 소비에트 연방 등의 공식적으로 승인된 건축”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는 용어이다. “국제적인 양식으로서, 이는 종종 단순화된 신고전주의 그리고 19세기 사실주의 및 고전주의에 기반한 조각을 활용하여 거대한 초대형 국가 기념물을 제작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러한 건축은 지도자와 정권의 이념을 지지하기 위해 의도된 것이었다.

전체주의 건축에 대한 설명은 전체주의 체제만의 독특한 요소가 아닌 신고전주의를 넘어 종종 브루탈리즘에 초점을 맞추며, 특히 르 코르뷔지에와 베니토 무솔리니와의 연관성 속에서 다뤄지기도 한다. 다른 저자들은 브루탈리즘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단순히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물리적 구현을 넘어서는 모더니즘 예술 양식으로 옹호하기도 했다. 많은 건축가와 건축사가들은 전체주의 정권 내에서 건물의 계획과 건설에 상당한 유사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를 독특한 건축 양식으로 간주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개관

용어 및 적용

“전체주의 건축”이라는 용어는 학술 문헌에서 나치 독일, 파시스트 이탈리아, 스탈린주의 소련의 건축을 비교하는 데 사용되며, 이들 모두 거대한 기념비적 형태와 이념적 정향이 특징이다. 전체주의 정권 아래서의 건축과 관련된 용어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발전하였으며, 이는 해당 정권이 붕괴한 후에도 오랫동안 전체주의적 이상을 환기시키는 기존 건축물과 화해하려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 기존 건축물을 대규모로 철거하는 것은 신생 전체주의 국가와 그 지도자들의 욕망에 맞춰 사회를 물리적으로 재구성하는 수단으로서 종종 전체주의 정권에 의해 수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건축가이자 건축사가인 드미트리 흐멜니츠키는 전체주의 건축 개념이 일반적으로 스탈린 시대의 신고전주의와 연관되며, “건축적 수단을 통해 추상적인 관념을 상징하려 한다. 보통, 이는 국가와 권력의 위대함이라는 관념이다.”라고 썼다. 시추세프 건축 박물관 관장이자 미술사학자인 옐리자베타 리하체바(1978-)는 ‘전체주의 건축’을 흔히 사용되는 용어로 설명했지만, 뚜렷하게 정의된 건축 양식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체주의 건축”이라는 단일하고 통일된 양식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존재하지 않으며, 이 용어는 일반적으로 독자적인 건축 사조라기보다는 유럽 내 전체주의 정권의 건축에서 나타나는 광범위한 경향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간주된다.

일본의 제국 양식 또한 때때로 전체주의 건축의 범주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미술사학자 스즈키 유는 일본의 전체주의 양식이 건축가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의 결여로 인해 독일이나 이탈리아만큼 획일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분석

모든 건축은 본질적으로 그것이 건설된 사회의 산물이므로, 전체주의 정권의 건축은 그 창작자들의 정신과 욕망을 파악하는 데 활용될 수 있으며, 이는 건축사가들에게 인기 있는 연구 주제가 된다. 전체주의 정권의 건축은 종종 지배적인 국가 프로파간다가 어떻게 구현되는지의 면에서 고찰된다. 파시스트 이탈리아, 독일, 포르투갈, 스페인의 건축은 종종 인종적 우월성, 민족주의, 기독교 우월성과 같은 개념을 환기시키는 반면, 스탈린주의 건축(예: 국가 경제 성과 전시회)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한 소련의 성과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레닌의 영묘가 조세르의 피라미드 모양을 연상시키는 것처럼, 전체주의 정권이 그들의 지도자를 기리는 기념물을 건설하는 목표는 종종 종교 건축의 미적 특성과 비교된다. 호치민 영묘와 게오르기 디미트로프 영묘와 같은 다른 묘소의 건축 유형도 공산주의를 정치적 종교로 홍보하는 건축물의 사례로 묘사되기도 했다.

《더 타임스》 칼럼니스트 벤 매킨타이어(1963-)는 다음과 같이 썼다. “히틀러, 스탈린, 마오쩌둥, 무솔리니, 사담 후세인은 모두 자신의 영광을 기리는 거대한 도시들이 건설되는 것을 상상했다. 스탈린의 소비에트 궁전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보다 높게 건설될 예정이었다. 히틀러의 수상 관저는 높이 17ft(약 5.2m)의 거대한 황동 문과 4,000ft²(약 370㎡)에 달하는 총통의 ‘집무실’과 더불어 의도적으로 과장된 연출을 강조한 표현이었다. 1948년에 집필된 『1984』에서 조지 오웰은 곧 공산권을 지배하게 될 전체주의 건축 양식 ㅡ ‘거대한 피라미드 형태의 하얀 콘크리트 건물로, 층층이 쌓여 300미터 높이까지 솟아오르는 구조물인 진리부’ ㅡ 에 대한 예견적인 묘사를 남겼는데, 그것은 위압적이고 흉물스러운 것이었다.

유럽 전체주의 정권의 건축물 잔재는 유럽 문화 유산의 일부로 볼 수 있다. 유럽 평의회에 따르면, “유럽 전체주의 정권의 건축물을 연구하는 것은… 통일성과 다양성 속에서 유럽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한 방법이다. 유럽이라는 개념은 제2차 세계대전의 상처와 파시즘 및 나치즘의 몰락에서 비롯되었다. 공산주의 몰락 이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면서, 정치적 자유, 표현과 집회의 자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같은 근본적인 가치에 기반한 더 넓고 포괄적인 유럽에 대한 개념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었다.” 유럽 문화 기구 ‘아트리움’은 건물을 건설한 정권보다 오래 살아남아 “여전히 다른 시대의 기념물로 서 있는” 버려진 건물들의 사진을 수집한다.

특히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에서, 「모든 공공건물, 구조물 및 시설의 명칭을 통한 공산주의 또는 기타 전체주의 체제의 선전 금지에 관한 법률」과 같은 법률에 근거하여, 전체주의 정권에 의해 만들어진 수많은 건물과 기념물이 철거되었다. 폴란드에서는 〈문화과학궁전〉의 철거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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