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끼 건축


증끼 건축 양식 사례. via Wikimedia Commons

얀키 스타일로도 알려진 증끼 양식은 인도네시아 독립 이후 발전한 전후 모더니즘 건축 양식이다. 이 스타일은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반 사이에 유행했다.

증끼 양식은 수백 년간의 네덜란드 식민 통치 후 미국의 새로운 영향이 인도네시아 건축에 반영된 것이다. 그것은 미국의 전후 모더니즘 교외 주택을 열대 지방에 맞게 해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토박이 건축가인 요한 실라스(1936-)는 이 독특한 건축 양식이 네덜란드인들이 만들어온 것과는 다른 건축으로 해석한 인도네시아인들의 자유로운 정치적 정신을 표현한 것이라고 추측한다.


역사

초기 형태

증끼 양식은 새로운 위성 도시인 크바요란 바루의 개발과 함께 처음 등장했다. 이 지역의 건설은 1955년에 완료되었다. BPM 석유회사 직원들을 위해 지은 이 집들은 대담한 캐릭터와 장난기 가득한 각도로 유명했다. 예를 들어, 크바요란의 중산층 주택은 정사각형 또는 직사각형 레이아웃으로 설계되었지만, 1층은 햇볕으로부터 아래층의 파사드를 보호하기 위해 앞으로 기울어져 있다. 크바요란에 있는 하급 관사들은 전면 파티오(보통 집 뒤쪽에 만드는 테라스)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발릭파판 같은, BPM이 운영되는 다른 도시에도 유사한 주택이 건설되었다.

크바요란 바루에 위치한 BPM 직원 숙소. via Wikimedia Commons

새로운 양식의 발전

이 양식은 1950년대에 더욱 발전하였다.  과감한 색상의 사용이 도입되었으며, 장난기 넘치는 각도와 가파르고 특이한 지붕이 이 시대의 가옥을 특징짓는다. 그것은 또한 미국의 미드 센추리 모던 양식에 더더욱 영향을 받고 있다. 이 시기에, 이 특별한 양식은 강한 미국적 영향으로 인해 인도네시아에서 ‘얀키-타입’ 또는 ‘증끼 스타일’로 알려졌다. 이는 아메리칸 미드 센추리 구기 스타일을 열대 지방에 맞게 재해석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증끼 스타일의 건물은 대부분 건설회사 또는 1951년에 인도네시아 최초의 건축학과가 설립된 반둥공과대학교 건축학과 학생들에 의해 디자인되었다. 처음에 이 학과는 네덜란드인 교수들에 의해 운영되었으나, 이들은 독립 후 정치적 혼란 속에서 진행된 두 번째 송환 조치로 인해 1950년대 중반에 떠나야 했다. 이후 짧은 기간 동안 일부 독일인 교수들이 학과를 관리했지만, 1950년대 말에는 미국인과 미국 대학을 졸업한 인도네시아인들이 이 학과를 맡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ITB(반둥공과대학교)의 건축학과 졸업생들은 미국 건축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졸업생 중에는 젤란틱, 하르요노 시깃, 요한 실라스 및 해리 위나르노 크와리 등이 있다. 이 영향은 아마도 1950년대 중반 반둥공과대학 건축학과에서 근무한 미국인 교사들을 통해 전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특징

본질적으로, 증끼 스타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네덜란드인이 사용했던 엄격한 입방체의 기하학적 형태를 거부했다. 증끼 스타일은 오각형과 같은 독특한 형태와 날카로운 대담한 각도를 활용했다. 비대칭 지붕과 파사드, 장난기 넘치게 잘라낸 문과 창문, 기이하게 기울어진 지붕과 처마는 쾌활함과 자유의 정신을 담고 있었다. 그것들은 인도네시아인들의 자유에 대한 정치적 정신을 표현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반둥 헤리티지 소사이어티의 사무국장인 프랜세스 아판디는 이 건축물들이 “… 매력적이고 주목할 만하지만, 연구가 부족하고, 문서화되지 않고, 과소 평가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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