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용 건축편집자
모빌리티 플랫폼 서비스가 2019년의 국내 택시업계를 압박하고 있다. 해당 분야의 국제적 선도기업은 2023년 드론택시 서비스 출시를 선언하고 그에 걸맞는 새로운 터미널인 스카이포트 건축 디자인 사례들을 발표했다. 뒤따르는 자율주행기술은 숫제 인간에게서 운전과 배송 관련 직업마저 거두어 갈 기세다. 구독경제는 영화관, 잡지, 생필품을 비롯한 다양한 오프라인 콘텐츠 시장을 흔들고 있다. 동영상 공유 서비스를 활용하는 일개 채널들이 1,700명 준공영방송의 광고수익에 필적하고 7,000명 공영방송과 진실을 다투고 있다. 균일한 품질의 과일을 동일 시간에 인간의 4~7배 이상 수확할 수 있는 로봇이 농업 분야 상륙을 준비하고 있다. 중앙집권의 형식을 해체하면서도 신용사회를 유지하게 할 블록체인 기술은 아직 은행을 없애지 못 했고 앨런 머스크가 꿈꾸는 화성 여행도 아직은 실현되지 않고 있지만, 이제는 정확한 내용을 모르더라도 새로운 기술과 알고리즘이 확실한 존재감으로 기존 산업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누구나 알 수 있다. 건축 분야에도 징후는 있다. 한 국내 기업이 출시한 AR 기반 앱은 전통적인 프레젠테이션 분야와의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3D 프로그램 플러그-인으로 2020년 출시 예정인 스웨덴의 한 제품은 평면의 크기와 공간 구성을 연동하여, 설계를 할 때 선택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 줄 전망이다. 하지만 기술적 성취를 즐기는 것도 잠시다. 뉴욕의 한 젊은 건축가는 AI가 건축업과 연동되는 순간 1 내지 5% 정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건축가가 불필요할 것이라며 직업을 잃지 않으려면 건축가도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개 분야 내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어나는 변화는 자연스러운 과정처럼 보이지만, 오늘날 다양한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바라보면 도무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정도로 아사리판이다. 이런 와중에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몸은 낡은 습관을 새로운 습관으로 대체하고 있다. 전통적인 출판산업은 대체제로 등장한 전자책 시장 때문이 아니라 순식간에 확장된 인터넷 정보와 간편해진 장치들에 익숙해져버린 인간의 몸 때문에 새로운 수요 창출의 도전을 머뭇거리고 있다. 신간 서적의 유통기한이 요구르트(3일)와 동급이라는 표현은 이제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상투적인 말이 되었다. 한때 50만부를 찍었다는 월간지 《샘터》가 2019년 12월 이후 사실상 폐간 수순을 밟는다는 소식에 안타까움을 내비치는 사람이 있을지언정 충격과 불안을 토로하는 사람은 없다. 그냥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는 반응이다. 흥미로운 건, 이런 상황이 오래되었음에도 출판계 어디에서도 시대에 맞서는 정도의 뚜렷한 액션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과물을 세일즈 할 수 있는 셀럽을 저자로 활용하는 전략은 진즉에 노출되었다. 이러한 방식의 일시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시장 전체의 침체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은 두 가지 정도로 해석이 가능하다. 셀럽의 숫자가 충분하지 않거나, 혹은 생산된 콘텐츠의 질이 소비하는 독자의 호기심과 지적 수준을 만족시키지 못 하는 상황이 반복되어 왔거나. 모든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는 없어도 어떤 책이든 스테디셀러가 될 가능성은 있다. 독자의 수준이 낮다는 전제를 피한다면, 당장 호기심을 채워주거나 단박에 눈길을 끌지 않더라도 좋은 책은 결국 발견되고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전작이 100만부를 넘어 영화로까지 만들어진 저자의 올해 신간이 여전히 초판 1쇄에 머물고 있는 현실과 그에 대한 전문가 계통의 평가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현재의 상황에서 감지되는 건 작품과 현실을 냉정하고 공정하게 살피려는 노력보다 상처를 회피하려는 두려움의 냄새 뿐이다. 번역서 발행 비율이 세계 최고인 나라에서 어느 정도 책을 팔 수 있는 셀럽이나마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다행스럽지만, 결과적으로 이들을 활용한 생존전략은 대중음악의 아이돌 활용 전략과 비슷해진다. 음원을 출시하는 것이 생존 사이클의 시작일 뿐인 것처럼 책을 출간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방송 출연과 순위가 중요한 이유는 최소한의 공정함 안에서 마케팅과 활동 권한을 보장받기 위함이듯 책도 공신력 있는 서점의 매대와 홈페이지 초기화면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한다. 결과적으로 아이돌의 수익은 음원보다 행사에서 판가름나고 저자의 수익 역시 인세보다 강연 같은 행사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아진다. 이러한 구조는 두 가지 경향을 양산한다. 하나는 매력적인 작품보다 매력적인 저자에게 유리한 구조이기 때문에 작품의 가치보다 저자의 이미지가 지나치게 부각되는 경향이 생긴다. 다른 하나는 아이돌 음악이 유행하는 정서를 따라가듯 동일한 구조 안에서 태어나는 책 역시 유행하는 정서를 대변하려는 경향이 생기기 쉽다. 이러한 경향들은 독자의 특성을 단순화시키는 경향으로 이어진다. 저자의 글을 읽고 반성적으로 사색하며 이성적으로 동화되어 지속적으로 성장을 도모하는 독자보다 자신의 현재 상태를 잘 읽어줄 것처럼 보이는 책을 선택하고 감정적으로 동화되어 일시적 해소에 만족감을 느끼는 독자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책을 읽고, 그 과정에서 하나 혹은 여럿의 영감과 시각을 자기 안에 형성하는 과정을 거치고, 그렇게 형성된 관점으로 현상과 세계를 읽는 노력을 하여 새로운 몸(정신)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이 인스타그램을 얼마나 멋지게 꾸며주는지, 자신도 책 좀 읽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과시할 수 있는지, 같은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과 정서적 유대감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려줄 수 있는지 같은 눈에 보이는 문제가 중요해진다. 그리고 이러한 성향의 독자들이 훨씬 빠르고 집단적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단기 성과나마 아쉬운 시장에서는 중요하게 취급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혁신 환경과 그에 어울리는 새로운 몸(육신)으로 연동하기 시작한 인간 앞에서 과거만 답습하는 어떤 일들은 앞을 내다보는 전망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저 인간이 다음 몸으로 탈피하는 과정에서 벗겨질 순서만 기다리는 기능 정지의 껍질 같은 상태를 유지할 뿐이다. 전문가의 존재도 껍질이 된 자신의 분야와 함께 박피될 운명이다. 그리고 자신을 과거로, 지나간 것으로, 현재에는 불필요한 것으로 낙인찍어버리려 으르렁거리는 현실 앞에서 때가 되면 자신에게 내려질 사형선고를 묵묵히 이행하겠다는 가소로운 의기만을 뜨문뜨문 내비칠 뿐이다. 현재의 산업 혁신이 이전과 다른 점은 그것이 지향하는 미래 안에 노동자의 자리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모든 과정이 기계화되고 마지막 검수만 인간이 하는 공장의 영상은 최종적인 신용 문제를 제외하고 단순화 할 수 있는 모든 작업이 기계화 될 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더 나은 생각을 할 수 없는 분야는 기존의 것을 더 잘 활용할 방법을 찾는 쪽으로 생각이 쏠리게 되고, 하지만 결국 데이터로 남아 있는 과거는 인간보다 기계가 더 잘 다룰 수 있는 것으로 증명되고 만다. 정신을 차리고 사태를 파악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정보 생산자들의 상태 역시 문제다. 과거의 종이 매체는 진지하게 저널리즘을 고민하면서도 독자에게 직접 종이값을 받을 수 있었다. 오늘날의 온라인 매체는 독자와 직접적으로 거래할 물질이 없다. 드라마가 시청자를 확보해서 돈은 광고주에게 받듯 온라인 매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생존 형태 역시 광고다. 광고는 방문자수에 비례하고, 콘텐츠가 클릭을 유도하는 것이 매체 생존을 위한 미덕이 된다. ‘충격’과 ‘경악’ 같은 구호로 시작했던 온라인 매체의 흥행은 가짜뉴스로 절정에 이른다. 포스트-트루스Post-Truth! 포스트-트루스! 진실은 현실 안에 갇혀 버린다. 수익으로 연결되지 못 하는 진실은 너무나도 왜소해서 수익과 연결되는 비대한 사실 뒤로 쉽게 가려진다. 더 이상 따라잡을 수 없는 혁신의 속도에 망연자실한 절망은 당연히 승리해야 할 진실이 꺾이는 광경을 목도하면서 이중-절망의 상태에 빠진다. 어제의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어제를 살았듯 오늘의 사람들도 아무렇지 않게 오늘을 살고 있지만, 과거 절대적 믿음이 사라진 정신에 스며든 허무와는 성격이 다른, 한계를 넘어버린 기술과 극단적인 앎의 상대화 속에 작동회로가 망가지며 나타나는 무기력이 곰팡이처럼 빛이 닿지 않는 곳부터 번지고 있다. 결국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로 다음 세계에 이르게 되는 것일까? 탈피는 시작되었다. 건축도 예외는 아니다. 욕망을 필요로 해석하는 파라메트리시즘 정도의 이슈들이 응집된 자본의 뾰루지처럼 지구 위에 몇몇 흔적을 남길 수 있겠지만 현재의 건축업 전체를 혁신의 시대로 옮겨 줄 만큼 안전하고 큰 방주는 아니다. 새로운 몸을 만드는데 기여한 산업은 새로운 시간을 얻을 것이고, 그러지 못한 산업은 박물관 속 껍질로 남을 것이다.
- 출처 :
- 건축잡지 《와이드AR》, 69호(2019년 11월-12월), pp.46-47 게재
- 단행본 『탈피』, 픽셀하우스, 2020, pp.17-23 수록 [구매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