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lanstère
팔랑스테르(또는 팔랑스테리)는 500~2000명의 사람들이 상호 이익을 위해 함께 일하는 자족적인 유토피아 공동체를 위해 디자인된 건물 유형으로, 19세기 초 샤를 푸리에(1772-1837)가 개발했다. 푸리에가 선택한 이름은 프랑스어 팔랑주(팔랑크스, 고대 그리스의 상징적인 군 부대)와 모나스테르(수도원)를 결합한 것이다.
A phalanstère (or phalanstery) was a type of building designed for a self-contained utopian community, ideally consisting of 500–2000 people working together for mutual benefit, and developed in the early 19th century by Charles Fourier. Fourier chose the name by combining the French word phalange (phalanx, an emblematic military unit in ancient Greece), with the word monastère (monastery).
구조
Structure
푸리에가 구상한 팔랑스테르는 도시와 시골의 특징을 통합하도록 디자인된 체계적인 건물이다.
Fourier conceived the phalanstère as an organized building designed to integrate urban and rural features.
팔랑스테르의 구조는 중앙 부분과 두 측면 부속 건물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중앙 부분은 조용한 활동을 위해 디자인되었다. 여기에는 식당, 회의실, 도서관, 서재가 포함되었다. 측면 부속 건물은 목수일, 해머질, 대장간일 같은 노동 및 시끄러운 활동을 위해 디자인되었다. 또한 노는 동안 시끄럽게 여겨졌던 아이들을 수용했다. (측면 부속 건물의) 다른 쪽 동에는 큰 여관이 있었고, 팔랑크스 공동체 사람들을 방문하고 만나기 위해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외부인과의 만남을 위한 연회장과 홀이 있었다. 이 수입으로 팔랑스테르의 자립 경제가 유지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팔랑스테르에는 또한 개인 아파트와 많은 사교장을 포함하고 있었다. 푸리에는 사교장을 세리스테르로 규정했다.
The structure of the phalanstère was composed of three parts: a central part and two lateral wings. The central part was designed for quiet activities. It included dining rooms, meeting rooms, libraries and studies. A lateral wing was designed for labour and noisy activities, such as carpentry, hammering and forging. It also hosted children because they were considered noisy while playing. The other wing contained a caravansary, with ballrooms and halls for meetings with outsiders who had to pay a fee to visit and meet the people of the Phalanx community. This income was thought to sustain the autonomous economy of the phalanstère. The phalanstère also included private apartments and many social halls. A social hall was defined by Fourier as a seristère.
프랑스와 미국에서
In France and the United States
푸리에는 파리에서 《르 팔랑스테르》를 비롯한 여러 저널을 발행했지만, 재정적 지원의 부족으로 인해 유럽에서는 팔랑스테르를 만들지 못했다. 앨버트 브리즈번(1809~1890)과 호레이스 그릴리(1811~1872)가 미국에서 소위 콜로니(집단; 거주지)라 불린 여러 곳을 설립했다.
Though Fourier published several journals in Paris, among them Le Phalanstère, he created no phalanstères in Europe due to a lack of financial support. Several so-called colonies were founded i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by Albert Brisbane and Horace Greeley.
사례
Examples
- 꽁데-슈흐-베스그흐의 라 콜로니 (1832)
- 왈라키아, 스카이안의 팔랑스테리 (1834)
- 댈러스의 레위니옹 (1855)
- 기즈의 파밀리스테르 (1859)
- 고댕의 파밀리스테르 (1887)
- 론고 마이 코-페하티브 (1973)
- 유러니언 팔랑스테르 (1974)
- La Colonie of Condé-sur-Vesgre (1832)
- Phalanstery of Scăieni, Wallachia (1834)
- La Réunion in Dallas (1855)
- Familistère of Guise (1859)
- Familistère of Godin (1887)
- Longo Maï Co-operatives (1973)
- Uranian Phalanstère (1974)
성(젠더) 역할
Gender roles
푸리에는 전통 가옥이 여성에 대한 유배와 억압의 장소라고 믿었다. 그는 성 역할이 성적 자유나 다른 시모니안(생시몽주의, 국가사회주의) 개념을 추구하기보다 공동체 내에서 성 역할을 형성함으로써 발전할 수 있다고 믿었다.
Fourier believed that the traditional house was a place of exile and oppression of women. He believed gender roles could progress by shaping them within community, more than by pursuits of sexual freedom or other Simonian concepts.
유산
Legacy
20세기에, 건축가 르코르뷔지에가 마르세유에 자족적인 코뮌인 유니테 다비타시옹을 디자인하면서 팔랑스테르의 개념을 도입했다.
In the 20th century, the architect Le Corbusier adapted the concept of the phalanstère when he designed the Unité d’Habitation, a self-contained commune, at Marseilles.
19세기 출판물에서
In 19th century publications
임레 마다흐(1823~1864)가 1861년에 처음 발표한 헝가리 희곡 『인간의 비극』에서, 후반부 장면들 중 하나는 인류 전체가 팔랑스테르에서 생활하는 유토피아적 미래인 팔랑스테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거기에는 국경도 없고, 국가도 없으며, 문명은 과학에 의해 지배된다. 반면에, 개성이나 창의성은 없으며, 감정은 불규칙한 것으로 간주되고 인간은 숫자로 낙인 찍혀 있다. 4000년 후, 태양은 죽었고 인류는 생존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태양과 함께 영적으로 죽었다.
In the Hungarian play The Tragedy of Man, first published in 1861 by Imre Madách, one of the later scenes takes place in a phalanstery, in a utopian future where the entirety of humanity lives in phalansteries. There are no borders, no nations, and civilization is dominated by science. On the other hand, there is no individuality or creativity, emotions are considered an irregularity and humans are branded with numbers. Four thousand years later, the Sun is dead and Mankind spiritually died along with it in its pursuit of survival.
자코모 푸치니(1858~1924)의 오페라 〈라 보엠〉을 비롯한 여러 뮤지컬 작품의 원작이 된 앙리 뮈르제(1822~1861)의 1851년 작품 〈보헤미안 생애의 장면들〉에서, 로돌프는 자신이 정부로 삼으려는 젊은 여성을 즐겁게 하기 위해 5프랑을 빌리기 위해 파리 거리를 샅샅이 뒤지던 중 팔랑스테르주의자로 묘사되는 한 청년을 만난다.
In Henri Murger’s 1851 work Scenes of Bohemian Life, the source of Giacomo Puccini’s opera La Bohème and other musical works, Rodolphe meets a young man described as a phalansterian as he is scouring the streets of Paris to borrow five francs in order to entertain a young woman he plans to make his mistress.
팔랑스테르는 귀스타브 플로베르(1821~1880)의 1869년 소설 『감정 교육』에서 여러 번 언급된다: 예를 들어, 예를 들어, 유토피아 프로젝트 목록 중 “팔랑스테리아 계획, 주(州) 바자 프로젝트, 공공 복지 시스템” 등이다.
The Phalanstères are mentioned several times in Gustave Flaubert’s 1869 novel Sentimental Education: for example, among a list of utopian projects: “plans of phalansteria, projects for cantonal bazaars, systems of public felicity.”
그것은 1890년에 처음 출간된, 윌리엄 모리스(1834~1896)의 『유토피아에서 온 소식』에서, “phalangsteries”라는 철자와 함께 언급되었다.
They are mentioned in William Morris’ News from Nowhere, first published in 1890, with the spelling “phalangsteries.”
- 출처 : 「Phalanstère」, Wikipedia(en), 2022.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