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용 건축편집자
이 글을 쓰는 지금(2020년 11월 초), 필자는 폴 오스터의 소설 『선셋파크』를 읽기 시작했다.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2008년 미국을 배경으로 1980년생 남자와 1991년생 여자가 등장한다. 그들 사이에 싹튼 사랑이라는 감정을 세대론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미묘한 차이는 있다. 그들은 서로를 원한다. 그리고 둘 다 책임에 묶여버리는 삶 자체를 원치 않는다. 흥미로운 건, 그들 사이에 그어진 애정 표현의 한계선이 91 여자에 의해 제안된 것이라기보다는 80 남자가 합의된 선을 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본능이라는 것이 이성적인 합의를 따를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육체적 욕망도 실은 본능이 아니라 이성의 영역이었던 걸까? 베이비붐 초기 세대인 폴 오스터가 그들의 자식뻘인 밀레니얼 세대의 내면을 그린다는 게 어째 미덥지 않지만, 그들 사이의 X세대인 필자도 조금은 납득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제는 힘도 떨어지고, 번거로운 상황에 엮이는 건 질색이고, 어떤 경우든 사람 마음 상하게 하는 일은 극혐이니까. X세대는 항상 그랬다. 어려서는 앞 세대에게 배우면서 제대로 못 한다고 타박을 받고, 커서는 뒷 세대에게 자신들의 기준에 따르지 않으면 도태될 거라는 암묵적인 위협을 받아왔다. 자유로움과 개인주의 어쩌고 해도 결국은 “까라면 까”는 세대가 X세대다. 2021 트렌드 분석이 쏟아지고 있는 요즘, X세대가 따라야 할 기준을 제시하는 시장의 주역은 뭐니뭐니해도 MZ세대다. 만성적인 저성장이 뉴노멀로 자리잡으면서 조심스럽게 서행하던 시장은 세계적인 코로나19 감염 사태를 맞아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주춤거리고 있다. AI 경제의 현실화 가능성이 떠오르는 상황에서 산업은 더 이상 인간을 충원시킬 획기적인 방안을 찾지 못 하고 있고, 그나마 소비의 동력이라도 회복해야만 점점 낡아져가는 기존 산업들을 유지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당한 척하는 구세대의 방식은 부담스럽고, 공정한 척하는 신세대의 아이디어는 식상하다. 그럼에도 굳이 팔로잉을 해야 한다면, 오늘날과 같은 종류의 위기 상황에서 자산의 안정에 기대어 혁신 없이 버티는 쪽보다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며 조금씩 자신들의 문화를 형성해 가는 젊은 세대 쪽이 좋을 것 같다. 시대는 결국 움직이는 쪽이 헤게모니를 쥘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오늘날 주목받고 있는 그들인 MZ세대의 정서, 취향, 공간 그리고 건축의 문화적 특성에 대해 키워드를 뽑아서 간단히 요약해 보았다.
#연결 : MZ세대 정서의 기반
간단, 재미, 정직. 혹은 공유, 경험, 소신. 밀레니얼(M) 세대와 Z세대가 교차하기 시작하는 90년대 전후 출생자를 규정하는 키워드들이다. 고독한 사색보다는 스마트 기기 속 검색창과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키운 세대. 그리고 고착화된 저성장 시대를 일상으로 받아들여 실용적인 성향을 갖추면서도 소확행과 탕진잼 등 소비적 성향 또한 감추지 않는 세대. 각종 트렌드 리포트에서 올곧고 발랄하게 그려지는 그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명칭을 거론하기조차 고통스러운 각종 대형 사고·재해 및 국내외 금융위기에 이르기까지 지난 20세기의 고속 성장이 부실한 시스템과 불평등한 기회 위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번번이 재확인하며 각자도생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세대이기도 하다. 이전 세대가 정의롭지 못한 정치 구조를 물리적 광장으로 끌어내어 대결하며 사회적으로 성장했다면, 이들 MZ 세대는 민주화 이후에도 곳곳에 잔존하는 갑질과 꼰대 근성을 디지털 공론장으로 끄집어내어 대결하며 사회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네트워크다. MZ세대는 언제든 접속할 수 있고 원하면 이동할 수 있다. 모바일과 모빌리티 시스템으로 구축된 현대의 도시가 그들의 고향이다. 그리고 그들 역시 모든 것과 연결되고 모든 것을 연결시킨다. 과거 세대가 이념으로서 상정한 탈중심 논리는 오늘날 블록체인 같은 실질적인 기술을 통해 현실화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근대인간 데카르트가 차원 없는 점에서부터 시작했다면, 현대인간 MZ세대는 노드들 간의 2차원 링크로부터 시작한다. 연결이 미덕이며 흐르지 않는 것은 불미스러운 일이 된다. 만약 그들에게 제공되어야 할 서비스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끊김 현상만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존중 : MZ세대 취향의 뿌리
기존의 세계는 급속한 도시화에도 불구하고 계급화되기 쉬운 각종 공동체의 영향 속에서 개인과 개인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웠다. 기분이 태도가 되는 등 공과 사의 경계는 언제든 허물어질 수 있었고, 자기답게 생각하고 행동하기보다 눈치를 살피고 분위기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했다. 개인을 개인 그 자체로 두지 않고 우열과 승패로 낙인 찍는 일상 속에서 개인은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개인에게 사회는 사회가 되지 못하는 익명 그 자체였다. 반면에 MZ세대는 여전한 등급사회 속에서 취존(취향 존중)과 싫존(싫어도 존중)을 요구하고 수용하며 성장해 왔다. 그들은 소셜네트워크의 발전과 더불어 부정성이 제거된 긍정성인 ‘좋아요(Like, 👍)’를 다루는 일에 익숙해질 수 있었고, (배제된 부정성이 더욱 극심한 혐오로 되돌아오는 부작용도 있지만) 적대보다는 환대를 선택하려는 분위기 속에서 점차 대등하고 공정한 개인이자 새로운 경험에 적극적인 사회인으로서의 감각을 키워나가는 중이다. MZ세대의 세계에서도 약한 것이 단점이 될 수 있지만 그것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그들은 해시태그(#)로 문제를 알리고 연대를 통해 커뮤니티화한다. 일면 기계적 평등의 요구처럼 보이는 오늘날 존중의 문제는 인류 내 약자들에서부터 동물과 지구환경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끊임 없이 연결되고 공유되는 네트워크 속에서, 그들은 존중의 말이 아니라 존중의 실행을 요구한다.
#복합체 : MZ세대 공간의 특성
소유도 축적도 어려워진 현실과 증가하는 주거비 부담 속에서 자연스럽게 청년세대인 MZ세대의 독자적인 생활공간 확보도 쉬운 일이 아니게 됐다. 하지만 일찍부터 경제 관념을 몸에 익히고 상업경제의 수동적 고객에서 공유경제의 능동적 주체로의 전환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이들은 개인 영역은 물론 도시 영역 전반에서 공유 가능한 대안적인 공간문화를 발견하고 조직하고 참여하고 살아내려는 경향을 보인다. 숙박 공간의 공유, 중고거래의 적극적 활용을 통한 근거리 커뮤니티의 재구성, 프리마켓과 플리마켓의 조직과 참여, 도시재생의 기획 및 소비 주역으로서 쇠락한 지역의 핫플레이스 전환 등 MZ세대는 자신의 문제와 사회의 문제, 생활을 위한 일과 자아실현의 즐거운 경험을 통합시키기 위해 공간을 활용하는데 익숙하다. 과거 부르주아가 신흥 세력으로서 귀족과는 다른 자신들만의 문화 형성을 위해 새로이 부상하는 인상주의를 수용했던 것은 오늘날 MZ세대가 기성 명품보다 노브랜드와 독특함을 추구하는 성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들은 주도하는 20%(파레토 법칙)가 아니라 연대하는 80%(롱테일 법칙)일 수밖에 없는 한계로 인해 매사 가격 대비 만족도(가성비, 가심비)를 바탕에 깔아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가격표를 따져야 하는 문화는 결국 일상적인 것으로 최종 수용되지 못 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일정하고 안정된 경험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이다. 2~3달이면 한 지역에서의 붐업이 종료되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속옷대방출 가게와 시장표 스테이크처럼 일정한 주기로 변화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공급하는 일이 중요해진다. 공간의 콘셉트, 디자인, 서비스, 마케팅의 초기 설정값은 고정지표가 아니라 임시지표다. 시장과 문화 전반에서 일시적 반응과 홍보에 초점을 맞춘 팝업(Pop-up) 개념의 현상과 관심이 증가하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 맥락이다. 무엇보다 MZ 세대를 위한 공간은 케미(물리적 화학반응, chemistry)와 싱크(시간적 동기화, synchronization)를 수시로 재구성하는 복합체(compound)와도 같다. 특정 시간으로 접속하고(레트로 공간), 콘텐츠 플랫폼으로 작동하고(문화 공간), 가치를 공유하고(브랜드 공간), 주어진 현실에 대응하는(뉴노멀 공간) MZ세대의 공간은 서로가 서로를 차용하고 다양한 콜라보레이션을 활용하는 등 매번 신선한 것을 배달하는 구독경제처럼 부분과 전체에서 집합과 해체를 반복하며 부족한 일상을 비일상으로 보완한다.
#Respect is More : MZ세대 건축의 경향
공간과 취향은 계급적이기도 한 반면 역사적이기도 하다. 선을 넘지 않는 한에서 부정성마저도 수용하는 긍정성(존중)으로 요약 가능한 MZ세대의 감각과 라이프스타일 또한 현대 건축의 역사적 맥락과 연결지어 이해해 볼 수 있다. 20세기 초 건축은 세계대전의 결과로 폐허가 된 인간의 대지를 재건함과 동시에 새로운 시대의 비전을 표현해야 했다. 개별적이고 다양한 지역 전통을 뛰어넘어 통합하는 국제양식, 경제성과 다양한 기능을 수용하는 보편 공간을 지향했다. 건축가 미스 반 데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 1886-1969)를 통해 유명해진 ‘Less is More(적을수록 좋다)’라는 말처럼 표현이 적어지고 단순할수록 미덕인 시대였다. 그러나 20세기 중반의 냉전체제는 인간 해방의 이상을 억압으로 되돌려놓았다. 비전이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음을 인식한 건축가들은 무기력하게 익명의 상자들만 찍어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때 건축가 로버트 벤투리(Robert Venturi, 1925-2018)가 ‘Less is Bore’(적을수록 지루하다)라는 각성의 망치를 꺼내 들었다. 건축가의 단순한 이상과 다르게 복잡해져 가는 도시의 현실을 바라본 그는 건축이 풍부함과 모호함을 촉진시키는 복합성과 대립성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건축이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는 동안, 20세기 후반부터 세계화의 파도를 타기 시작한 신자유주의 분위기는 새로운 시대의 아이콘을 건설할 개성 있는 건축가들을 등장시켰다. 그 중에서도 특히 도시의 밀집문화를 주목했던 건축가 렘 콜하스(Rem Koolhaas, 1944-)는 ‘More is More’(많을수록 좋다)라는 말로 다양한 문화와 새로운 경험들을 건축 안에 결합시킬 필요가 있었던 시대를 대변했다. 2000년대로 접어든 건축은 연결된 인터넷으로 쏟아지는 정보들 사이에서 유독 돋보였던 유려한 이미지의 스토리텔링을 하나의 경향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Yes is More’(긍정할수록 좋다)를 강조하는 건축가 비야케 잉겔스(Bjarke Ingels, 1974-)가 있었다. 건축 작업이 건축가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행위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외부 요인과 의견을 수용함으로써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은 20세기를 통해 현대건축의 힘을 확인한 새로운 세대의 자신감이기도 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저성장을 새로운 기준으로 받아들인 세계에서 건축은 또 다시 좌표를 수정 중이다. 아크데일리 등 아카이브형 웹진의 등장과 득세는 거장 건축가들에 관한 정보도 원 오브 뎀(one of them)으로 만들었다. 종이 매체에서 보기 힘들었던 일반적인 주택과 상가 등의 프로젝트들이 다수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고, 그들이 새로운 리그의 선수들처럼 서로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불가능에 가까운 거장의 지위를 더 이상 목표로 하지 않으며, 그들을 건축가로 존중하는 클라이언트를 바라보는 쪽을 택했다. 작용에 대한 반작용처럼, 자연스럽게 건축가의 이상이 아니라 클라이언트의 일상, 도달해야 할 비전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행복이 중요해졌다. 이것은 건축가의 긍정이 무한히 확산되는 과정과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세대의 가치관이 융합되면서 빚어지는 현상이기도 하다. 간단, 재미, 정직. 혹은 공유, 경험, 소신. 오늘의 건축 이야기는 오늘의 MZ세대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더 이상 건축가가 시대를 규정할 말을 언급할 필요가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세계에서, 다른 이의 목소리를 통해 언급될 수밖에 없는 그들의 건축을 표현하기에 어울릴 말은 하나 뿐일 것이다. ‘Respect is More’(존중할수록 좋다).
- 출처 : 「MZ의 취향, MZ의 공간」, 이중용, 《서울메이드》 2020년 12월호 ISSUE No.11 “SP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