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콜하스


2013년의 렘 콜하스. via Wikimedia Commons

레먼트 루카스 콜하스(네덜란드 발음: 렘 콜하스; 1944.11.17.~)는 네덜란드 건축가, 건축 이론가, 도시 계획 전문가이자 하버드 대학교 디자인 대학원의 건축 및 도시 디자인 실무 교수다. 그는 해체주의 건축 양식의 대표자로 자주 거론되며 『딜리리어스 뉴욕: 맨해튼을 위한 소급 선언』의 저자다.

어떤 이들은 그를 세대의 중요한 건축 사상가이자 도시 계획 전문가 중 한 사람으로, 다른 어떤 이들은 자부심 강한 우상 파괴자(인습 타파주의자)로 여긴다. 2000년에, 렘 콜하스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2008년 《타임》지는 그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했다. 그는 2014년에 미국철학학회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초기 시절 및 경력

레먼트 콜하스는 1944년 11월 17일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안톤 콜하스(1912~1992)와 셀린데 피테르제 로센뷔르흐(1920~)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소설가, 비평가, 시나리오 작가였다. 그의 아버지가 시나리오를 쓴 베르트 한스트라(1916~1997) 감독의 두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는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 후보에 올랐는데, 하나는 단편 영화 부문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그의 외할아버지인 디르크 로센뷔르흐(1887~1962)는 모더니즘 건축가로서 헨드릭 페트뤼스 베를라허(1856~1934)에서 일하다가 자신의 사무실을 열었다. 렘 콜하스에게는 형제 토마스와 누이 아나벨이 있다. 그의 사촌인 퇸 콜하스(1940~2007)는 건축가이자 도시 기획자였다. 이 가족은 로테르담(~1946), 암스테르담(1946–1952), 자카르타(1952–1955), 그리고 암스테르담(~1955)에서 연속적으로 거주했다.

그의 아버지는 글을 통해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 식민지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대의명분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독립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그는 3년 동안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초청받았고, 가족은 1952년(8세)에 자카르타로 이사했다. “그것은 나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였고, 나는 정말로 아시아인으로 살았다”고 콜하스는 회상한다.

1969년(25세), 콜하스는 네덜란드 누아르 영화인 〈더 화이트 슬레이브〉를 공동 집필했으며, 이후 미국의 소프트-포르노(덜 노골적인 포르노물)의 제왕, 러스 메이어(1922~2004)를 위해 제작되지 않은 대본을 썼다.

그는 1963년 19세의 나이로 《헤이그 포스트》의 기자로 일하다가 1968년(24세) 런던에 있는 AA 스쿨에서 건축학 공부를 시작했으며, 뒤이어, 1972년(28세)에 뉴욕 이타카에 있는 코넬 대학교에서 오스발트 마티아스 웅어스(1926~2007)와 함께 연구한 후, 뉴욕시에 있는 건축도시연구소에서 공부를 이어갔다.

시애틀중앙도서관 모델을 검사하는 렘 콜하스, 2005. via Wikimedia Commons

콜하스는 1975년 건축가 엘리아 젱겔리스(1937~), 조이 젱겔리스(1937~), (콜하스의 와이프인) 마덜론 브리센도르프(1945~)와 함께 런던에 설립한 OMA를 통해 대중과 평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나중에 콜하스의 학생 중 한 명인 자하 하디드도 합류했는데, 그녀는 곧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게 된다. 1970년대 후반의 당시 지배적인 포스트모던 고전주의와 차별화되는 그들의 초기 작업은, 이탈리아 건축가 파올로 포르토게시가 “과거의 존재”라는 제목으로 큐레이팅한 1980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한 작업이었다. 각 건축가는 포템킨-타입의 내부 거리에 무대-같은 “전면”을 디자인해야 했다; 코스탄티노 다르디(1936~1991), 프랭크 게리(1929~), OMA의 파사드는 포스트-모던 건축 모티브나 역사적 참조를 이용하지 않은 유일한 것이었다.

유럽 연합 바코드 제안, 2002. via Wikimedia Commons

초기에 비평적으로 호평을 받았던 (아직 지어지지 않은) 다른 프로젝트에는 파리 라빌레트 공원(1982), 아일랜드 총리 관저(1979), 로테르담에 있는 쿤스트할(1992) 등이 있다. 이들 계획은 콜하스가 피터 아이젠만이 이끄는 뉴욕의 건축도시연구소에서 방문 연구원으로 있을 때 저술한 저서, 『딜리리어스 뉴욕』(1978)에서 발견한 많은 내용을 실천에 옮기려는 시도였다.


건축 이론

딜리리어스 뉴욕

콜하스의 책 『딜리리어스 뉴욕』은 그의 경력에 큰 획을 그었다. 콜하스는 도시 생활의 “우연성”을을 분석한다: “도시는 탈출구가 없는 중독성 있는 기계다.” “렘 콜하스는 … 도시를 ‘레드 핫 스팟’의 집합으로 규정했다.” (안나 클링만, 1965~) 콜하스 자신도 인정했듯이, 이러한 접근 방식은 1960년대와 1970년대 초 일본 메타볼리즘 운동에서 이미 분명하게 나타났다.

콜하스가 탐구하는 건축의 핵심은 “프로그램”이다: 20세기 모더니즘의 부상과 함께 “프로그램”은 건축 디자인의 핵심 주제가 되었다. 20세기 초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1856~1924)에 의해 처음 대중화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격언으로 대표되는 프로그램 개념은 건축 디자인의 구실로서 “기능 및 인간 활동을 편집하는 행위”를 수반한다. 이 개념은 맨해튼에 있는 고층 건축물에 대한 그의 분석, 『딜리리어스 뉴욕』에서 처음 의문시되었다. 이러한 생각에서 파생된 초기 디자인 방법론은, 마천루에 있는 러닝 트랙과 같이 공간 프로그램에 예기치 않은 기능을 도입하는, “교차-프로그래밍”이었다. 최근에, 콜하스는 시애틀 공공 도서관 프로젝트(2003) 안에 노숙자를 위한 병원 유닛을 포함시키자고 제안했지만 실패했다.

도시 프로젝트

콜하스의 다음 출판물은 하버드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디자인 스쿨의 “도시에 대한 프로젝트”에 참여한 부산물이었다; 720페이지 분량의 『돌연변이』(2001)를 시작으로, 『하버드 디자인 스쿨 쇼핑 가이드』(2002), 『대약진』(2002)이 뒤를 이었다.

세 권의 책 모두 서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 있는 라고스처럼 다른 사람들이 “비-도시”로 간주하는 곳, 즉 기반 시설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매우 기능적인 도시를 분석하는 학생 작업을 발표했다. 저자들은 또한 쇼핑 습관의 영향과 최근 중국 도시의 급속한 성장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이 책에 대한 비평가들은 “결국, 쇼핑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책에 담긴 개념을 강조하며 – 마치 서구 자본주의와 세계화가 모든 문화적 정체성을 파괴하는 것처럼 – 콜하스가 냉소적이라고 비판했다. 아마도 그러한 신랄한 냉소주의는 공항 그리고 심지어 박물관조차도 (재정 문제로 인해) 선물 가게 운영에 의존하는 문화 생활의 변화에 대한 “리얼리즘”으로 읽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비판을 모면하기 위해 작업을 완료한 후 클라이언트 또는 연구의 대상을 공격하는 건축가의 특징적인 방책 중 하나를 보여준다.

콜하스는 이러한 관찰을 실천으로 옮길 때, 어버니즘의 전능한 힘으로 간주되는 것을 현대 사회의 라인을 따라 조직된 독특한 디자인 형태와 연결로 동원한다. 콜하스는 현대 도시에 대한 자신의 관찰을 자신의 디자인 활동에 지속적으로 반영하여 이러한 상태를 ‘혼잡 문화’라고 부른다. 다시, 쇼핑은 “지적 편안함”을 기준으로, 중국 도시들의 규제되지 않은 취향과 고밀화는 밀도, 새로움, 모양 크기, 돈 등 논쟁의 여지가 있는 변수를 수반하는 기준인 “성능”에 따라 분석된다.

2003년, &&& 크리에이티브가 디자인하고 콜하스가 출판한 544 페이지 분량의 잡지-스타일 책, 『콘텐트』는 프라다 매장 디자인, 시애틀 공공 도서관, 찰스 강을 재설정하여 하버드로부터 케임브리지를 구하려는 계획, 지구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가 될 라고스의 미래, 뿐만 아니라 마사 스튜어트와 로버트 벤투리 및 데니스 스콧 브라운과의 인터뷰를 포함하여 OMA 프로젝트의 지난 10년에 대한 개관을 제공한다.

볼륨 매거진

2005년, 렘 콜하스는 마크 위글리(1956~), 올레 보우만(1960~)과 함께 《볼륨 매거진》을 공동 창간했다. Archis(암스테르담), AMO, C-랩(뉴욕 컬럼비아대학교)의 공동 프로젝트인 《볼륨 매거진》은 공간적 및 문화적 성찰의 과정에 전념하는 역동적이고 실험적인 싱크탱크다. 그것은 건축의 ‘건물 만들기’의 정의를 넘어 건축과 디자인에 대한 글로벌 관점, 사회 구조에 대한 더 넓은 태도, 살기 위한 환경 조성을 추구한다. 이 잡지는 감지하고 예측하며 능동적이고 선제적인 저널리즘, 즉 기정 사실을 다루기보다 가능성을 발견하는 저널리즘을 표방한다.


건물 및 프로젝트

90년대 후반에 그는 유니버설의 새로운 본사를 위한 디자인 작업을 했다.

실제로, 온라인 마케팅과 프로파간다는 금세기에 OMA가 부상한 품질보증 마크였다. 또한 2020년 구겐하임 전시 〈컨트리사이드, 더 퓨처〉의 평결을 내린 《뉴욕 매거진》 평론가 저스틴 데이비슨(1966~)의 비판 같은 날카로운 비평도 이어졌다. “관심의, 갤러리 공간의, 자원의, 재능의, 전문 지식의 끔찍한 낭비만 아니었다면 조금은 재미있었을 것이다. 건축가로서 무언가를 짓는 데 지루함을 느낀 콜하스는, 자신의 손가락을 중요한 주제, 진정한 통찰, 실제의 삶에 (풀을 뜯게 하듯) 방목시킨다. 그는 그것들 모두를 깨지기 쉬운 세상을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얻은 무의미한 기념품, 아이러니한 엉터리로 취급한다. 구겐하임 미술관이 이 소란스러운 유희에 좀 더 지적인 엄격함을 강요하지 못한 것이 얼마나 답답한지!”

건축, 패션, 극장

캘리포니아 베벌리힐스의 프라다 매장. via Wikimedia Commons

프라다 프로젝트를 통해, 콜하스는 덧없는 패션계를 위한 건축과 유명 인사들이 즐비한 캐세이를 제공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가르니에의 오페라 건물과 다르지 않게, 콜하스의 베벌리힐스 프라다 매장의 중심 공간은 거대한 중앙 계단이 차지하고 있으며, 표면적으로는 엄선된 상품을 진열하지만, 주로 쇼핑객들이 이용하는 공간이다.이전에 구겐하임이 소유했던 뉴욕 맨해튼에 있는 브로드웨이의 프라다 매장은 옷 마케팅보다는 브랜드 판매라는 개념이 더욱 강조되었는데, 문화 기관으로서의 건물을 강조하기 위해 새로운 매장을 꾸미는 과정에서 뮤지엄 간판을 제거하지 않았다. 2001년 12월에 개장한 브로드웨이 프라다 매장은 3,200만 유로를 들여 2,300㎡의 소매 공간을 갖추고 있다.

21세기 프로젝트

아마도 새로운 세기의 가장 비용이 많이 들고 유명한 OMA 프로젝트는 중국 베이징의 거대한 CCTV 본사 건물과 중국의 나스닥에 해당하는 선전 증권거래소의 새 건물일 것이다.

중국 베이징에 있는 CCTV 본사. via Wikimedia Commons

콜하스는 베이징에 있는 새로운 CCTV 본사(2009)를 디자인할 때, 정부 기업을 상징하고 랜드마크로 사용되는 고정관념적인 마천루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는 미국에서 “수평형 마천루”에 대한 특허를 획득했다. 베이징 주민들이 “큰 바지”라고 부르는 이 건물은 수많은 부서를 모호한 부지에 하나로 묶는 동시에 일반 대중이 부지를 통과할 수 있는 동선(다시 말해, 교차 프로그래밍 개념)을 도입하여 생산 과정에 어느 정도 접근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이러한 동선 계획의 어리석음(고층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효과적인 화재 대피로가 없음)이 강조된 불행한 사건은, 2009년 건물과 인근 호텔이 거의 전소될 뻔한 공사장 화재였다.

2020년 2월, 그의 전시 〈컨트리사이드, 더 퓨처〉가 뉴욕시 구겐하임에서 개최됐다. 이 전시는, 뉴욕시가 코로나19 팬데믹과 관련하여 모든 주요 예술 기관을 폐쇄한 후, (전시) 한 달 만에 끝났다.


사생활

콜하스는 이전에 그의 두 아들들 사진가 찰리와 영화감독 토마스의 어머니인 아티스트 마덜론 브리센도르프와 결혼했다. 콜하스는 2012년에 브리센도르프와 이혼했다. 현재 파트너인 인테리어와 랜드스케이프 디자이너 페트라 블레세(1955~)와는 1986년부터 알고 지냈다.


선별 프로젝트

  • 빌라 달라바 (생-클루, 1991)
  • 넥서스 월드 하우징 (후쿠오카, 1991)
  • 쿤스트할 (로테르담, 1992)
  • 유라릴 (릴, 1994)
  • 에두카토리움 (위트레흐트, 1995)
  • 보르도 주택 (보르도, 1998)
  • 네덜란드 대사관 (베를린, 2003)
  • 맥코믹 트리뷴 캠퍼스 센터 (시카고, 2003)
  • 서울대학교 미술관 (서울, 2005)
  • 시애틀 공공 도서관 (시애틀, 2005)
  • 카사 다 무지카 (포르토, 2005)
  • 디 & 찰스 와일리 극장 (댈러스, 2009)
  • CCTV 본사 (베이징, 2012)
  • 드 로테르담 (로테르담, 2013)
  • 개러지 현대미술관 (모스크바, 2014)
  • 카타르 국립 도서관 (도하, 2017)
  • 타이페이 공연 예술 센터 (타이페이, 2022)

서지

  • 『프로젝트 저팬. 메타볼리즘 토크…』 (2011)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공저)
  • 『딜리리어스 뉴욕: 맨해튼을 위한 소급 선언』 (1978)
  • 『S,M,L,XL』 (1995)
  • 『서펜타인 갤러리: 24시간 인터뷰 마라톤』 (2007)
  • 『리빙 비브르 레번』 (1998)
  • 『콘텐트』 (2004)
  •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 2006』 (2008)

갤러리

빌라 달라바, 프랑스 파리, OMA. via Wikimedia Commons
넥서스 월드 하우징, 일본 후쿠오카, OMA. via Wikimedia Commons
쿤스탈, 네덜란드 로테르담, OMA. via Wikimedia Commons
에듀카토리움,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OMA. via Wikimedia Commons
보르도 주택, 프랑스, OMA. via Wikimedia Commons
네덜란드 대사관, 독일 베를린, OMA. via Wikimedia Commons
맥코믹 트리뷴 캠퍼스 센터, 미국 시카고, OMA. via Wikimedia Commons
시애틀중앙도서관, 미국 시애틀, OMA. via Wikimedia Commons
카사 다 무지카, 포르투갈 포르투, OMA. via Wikimedia Commons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 영국 런던, OMA. via Wikimedia Commons
디 앤 찰스 와일리 씨어터, 미국 댈러스, OMA. via Wikimedia Commons
데 로테르담, 네덜란드 로테르담, OMA. via Wikimedia Commons
타이페이 퍼포밍아트센터, 대만 타이페이, OMA. via Wikimedia Commons


카테고리

작성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