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dic Classicism
북유럽 고전주의(노르딕 클래시시즘)는 1910년에서 1930년 사이에 북유럽 국가(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에서 잠시 꽃을 피웠던 건축 양식이다.
Nordic Classicism was a style of architecture that briefly blossomed in the Nordic countries (Sweden, Denmark, Norway and Finland) between 1910 and 1930.
1980년대에 (여러 학술 연구와 공개 전시회를 통해) 북유럽 고전주의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기 전까지, 북유럽 고전주의는 훨씬 더 잘 알려진 두 건축 운동인 민족낭만주의 또는 (종종 아르누보와 동등하거나 유사하다고 여겨지는) 유겐트스틸과 기능주의(일명 모더니즘) 사이의 단순한 막간극으로 간주되었다.
Until a resurgence of interest for the period during the 1980s (marked by several scholarly studies and public exhibitions), Nordic Classicism was regarded as a mere interlude between two much better-known architectural movements, National Romanticism, or Jugendstil (often seen as equivalent or parallel to Art Nouveau), and Functionalism (aka Modernism).
역사
History
북유럽 고전주의의 발전은 고립된 현상이 아니라 북유럽 국가에 이미 존재하는 고전주의 전통과 독일어권 문화에서 추구된 새로운 사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따라서 북유럽 고전주의는 토착 건축(북유럽, 이탈리아 및 독일)과 신고전주의의 직간접적인 영향뿐만 아니라, 독일공작연맹 ㅡ 특히 1914년 전시 ㅡ 으로부터 비롯된 모더니즘의 초기 발흥과 1920년대 중반 르코르뷔지에의 이론에서 등장한 에스프리 누보(새로운 정신)의 영향을 조합한 것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The development of Nordic Classicism was no isolated phenomenon, but took off from classical traditions already existing in the Nordic countries, and from new ideas being pursued in German-speaking cultures. Nordic Classicism can thus be characterised as a combination of direct and indirect influences from vernacular architecture (Nordic, Italian and German) and Neoclassicism, but also the early stirrings of Modernism from the Deutscher Werkbund – especially their exhibition of 1914 – and by the mid-1920s the Esprit Nouveau emerging from the theories of Le Corbusier.
모더니즘의 영향은 단순한 미학을 넘어섰다: 도시화는 현대적인 건설 기술 그리고 건물 및 도시 계획 모두에 대한 규제의 도입, 더 나아가 좌파로의 정치 이념 변화를 초래한 사회 세력의 부상으로 이어져 북유럽 복지 국가와 병원(예: 스톡홀름 서부에 있는 베콤베리아 병원[1927~35; 칼 베스트만]) 및 학교(예: 스톡홀름에 있는 프리드헴스플란 학교[1925~27; 게오르그 A. 닐손]) 같은 공공 건물을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북유럽 고전주의는 여러 중요한 공공 건물에 사용되었지만, 일반적으로 저비용 주택(예: 헬싱키에 있는 푸-캐퓔래 가든 타운[1920~25; 마르티 밸리칸가스])과 주택 건축(예: 벼락부자를 위한 감당가능한 감각의 양식)을 위한 모델로도 적용되었다.
The modernist influence went beyond mere aesthetics: urbanisation tied to modern building techniques and the introduction of regulations both in building and town planning, and moreover, to the rise of social forces that resulted in a change in political ideology toward the Left, resulting in the Nordic welfare state, and new programmes for public buildings such as hospitals (e.g. the Beckomberga Hospital in western Stockholm (1927–1935) by Carl Westman) and schools (e.g. the Fridhemsplan school, Stockholm, (1925–27) by Georg A. Nilsson). But while Nordic Classicism was employed for a number of important public buildings, it was also applied as a model for low-cost housing (e.g. the Puu-Käpylä Garden Town, Helsinki (1920–25) by Martti Välikangas) and domestic architecture in general (e.g. an affordable sense of style for the nouveau riche).
1930년은 군나르 아스플룬드(1885~1940)와 시구르드 레베렌츠(1885~1975)가 주로 디자인한 ‘스톡홀름 박람회’가 열렸던 해로, 현대 사회의 모델로 보다 순수한 모더니즘을 선보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북유럽 고전주의의 종착점으로 간주된다. 그렇지만, 그 후에도 스톡홀름에 있는 외스트베리 해양 박물관(1931~34)을 비롯한 주요 건물은 계속해서 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졌다.
The year 1930 is usually considered the end point of Nordic Classicism because that was the year of the Stockholm Exhibition, designed mostly by Gunnar Asplund and Sigurd Lewerentz, when a more purist Modernism was unveiled as a model for a modern society. However, key buildings continued to be built in the classical style after that, notably Östberg’s Maritime Museum in Stockholm (1931–34).
주목할 만한 건축가들
Notable architects
어떤 건축가들은 민족낭만주의 스타일이 등장했을 때 이미 그들 경력의 정점에 도달했지만, 그들의 후기 작업은 북유럽 고전주의 양식이었고(예: 카를 베스트만), 다른 건축가들의 경력은 북유럽 고전주의로 정점을 찍은(예: 이바르 텡봄, 라그나르 외스트베리) 반면 나중에 모더니즘 건축가로서 훨씬 더 큰 의의를 달성했다(예: 아르네 야콥센, 알바 알토, 스벤 마르셸리우스). 그렇지만, 두 시대 모두에서 가장 큰 업적을 달성한 두 인물은 스웨덴 건축가 군나르 아스플룬드와 시구르드 레베렌츠였다.
Certain architects had reached the culmination of their careers already when the National Romantic style came, but their latter works were in the Nordic Classicism style (e.g. Carl Westman), the career of others culminated with Nordic Classicism (e.g. Ivar Tengbom and Ragnar Östberg), while others later went on to achieve far greater significance as Modernist architects (e.g. Arne Jacobsen, Alvar Aalto, and Sven Markelius). The two figures who achieved greatest significance in both periods, however, were Swedish architects Gunnar Asplund and Sigurd Lewerentz.
덴마크: 케이 피스커, 해크 캠프만, 카이 고틀로프, 이바르 벤트센, 포울 바우만, 포울 홀소, 에드바르드 톰센, 토마스 하부닝, 홀게르 야콥센, 카레 클린트, 아르네 야콥센, 카를 페테르센, 오게 라픈, 스틴 아일러 라스무센, 스벤 리솜, 프리츠 슐레겔.
Denmark: Kay Fisker, Hack Kampmann, Kaj Gottlob, Ivar Bentsen, Povl Baumann, Poul Holsøe, Edvard Thomsen, Thomas Havning, Holger Jacobsen, Kaare Klint, Arne Jacobsen, Carl Petersen, Aage Rafn, Steen Eiler Rasmussen, Sven Risom, and Frits Schlegel.
핀란드: 군나르 타우헤르, 우노 울베르, 마르티 밸리칸가스, 요한 지그프리드 시렌, 알바 알토, 파울리 E. 블롬슈테트, 엘시 보그, 에리크 브릭만, 힐딩 에켈룬드, 헤이키 시이코넨, 오이바 칼리오.
Finland: Gunnar Taucher, Uno Ullberg, Martti Välikangas, J.S. Sirén, Alvar Aalto, Pauli E. Blomstedt, Elsi Borg, Erik Bryggman, Hilding Ekelund, Heikki Siikonen, and Oiva Kallio.
노르웨이: 라르스 베커, 로런츠 하보 리, 스베레 페데르센, 니콜라이 비어, 핀 버너, 하랄 할스, 헤르만 문데-카스, 구돌프 블랙스태드, 핀 브린, 옌스 둥케르, 요한 엘레프슨.
Norway: Lars Backer, Lorentz Ree, Sverre Pedersen, Nicolai Beer, Finn Berner, Harald Hals, Herman Munthe-Kaas, Gudolf Blakstad, Finn Bryn, Jens Dunker and Johan Ellefsen.
스웨덴: 라그나르 외스트베리, 군나르 아스플룬드, 칼 베스트만, 시그루드 레베렌츠, 칼 버그스텐, 시그프리드 에릭손, 토르벤 그루트, 라그나르 홀스, 시릴루스 요한손, 에리크 랄레스테트, 군나르 레헤, 스벤 마르셸리우스, 군나르 모르싱, 예오르지 닐손, 투레 뤼베리, 알빈 스타크, 에스실 순달, 라스 이스라엘 발만, 스벤 발란데르, 하콘 알베르, 이바르 텡봄.
Sweden: Ragnar Östberg, Gunnar Asplund, Carl Westman, Sigurd Lewerentz, Carl Bergsten, Sigfrid Ericson, Torben Grut, Ragnar Hjorth, Cyrillus Johansson, Erik Lallerstedt, Gunnar Leche, Sven Markelius, Gunnar Morssing, George Nilsson, Ture Ryberg, Albin Stark, Eskil Sundahl, Lars Israel Wahlman, Sven Wallander, Hakon Ahlberg and Ivar Tengbom.
이 건축가들이 국가별로 나열되어 있긴 하지만, 이 기간 동안 북유럽 국가들 사이에 활발한 문화 교류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많은 건축가들이 둘 이상의 국가에서 일했음), 컨설턴트에서 부르주아지, 기반시설, 주거지, 공공 서비스와 관련된 도시 계획 설계자에 이르기까지 건축가의 활동 영역도 크게 발전했다. 스웨덴 역사가 헨릭 O. 안데르손이 말한 것처럼, 이는 급진적 아방가르드가 아닌 민주주의의 건축이었다. 더욱이, 핀란드를 제외한 다른 북유럽 국가들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속적인 문화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Though these architects are listed by country, during this period there was an intense cultural exchange among the Nordic countries (many architects worked in more than one), but also considerable development in the architect’s sphere of activity, from consultant to the bourgeoisie to town planner concerned with infrastructure, dwelling and public services. As Swedish historian Henrik O. Anderson has put it, this was an architecture of democracy, not radical avant-gardism. Furthermore, with the exception of Finland, the other Nordic countries had avoided getting involved in the First World War, allowing for continued cultural development.
다른 운동과의 관계
Relationship to other movements
포스트모더니즘이 한창이던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에 비평가, 역사가, 건축학 교사들이 마이클 그레이브스, 레온 크리에, 로버트 스턴 같은 건축가들의 건축에 대한 역사적 선례를 찾던 시기에 북유럽 고전주의, 특히 그것의 가장 고전주의적 형태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북유럽 고전주의는 특히 스톡홀름에 있는 군나르 아스플룬드의 〈스칸디아 시네마〉(1924), 〈리스테르 지구 정부 청사〉(1917~21), 유르스홀름에 있는 〈빌라 스넬만〉(1917~18), 〈스톡홀름 공공 도서관〉(1920~28) 같은 중요한 건물과 아스플룬드와 시구르드 레베렌츠가 설계한 스톡홀름 〈스코그쉬르코고르덴 묘지〉(국립묘지공원)의 경관 및 건물(1917~40)에서 그 선례를 제공했다.
Interest in Nordic Classicism, especially in its most classical form, arose in the late 1970s and early 1980s at the height of postmodernism when critics, historians and architecture teachers were looking for historical precedents for the architecture of such architects as Michael Graves, Leon Krier and Robert Stern. Nordic classicism provided that precedent, especially with such seminal buildings as Gunnar Asplund’s Scandia Cinema in Stockholm (1924), Listers District Courthouse (1917–21), Villa Snellman in Djursholm (1917–18) and Stockholm Public Library (1920–28), as well as the landscape and buildings of the Skogskyrkogården Cemetery, Stockholm (1917–1940) by both Asplund and Sigurd Lewerentz.
건축 양식과 관련해서, 북유럽 고전주의의 부상을 설명하는 몇 가지 선례 또는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예를 들어 대칭, 디테일링, 비례에 대한 고려 등 절대주의 건축 ㅡ 즉, 스웨덴과 덴마크 군주제의 권력을 상징하는 고전주의적 건축 상징 ㅡ 에서 토착 건축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고전주의적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In regards to architectural style, there were several precedents or reasons which account for the rise of Nordic Classicism. First was the existing classical tradition, borne from the architecture of Absolutism – that is, the classical architectural symbols of power of the Swedish and Danish monarchies – down to the vernacular, for instance in terms of considerations for symmetry, detailing and proportion.
19세기 전반에 걸쳐 고전주의가 더욱 단순화되는 데 기여한 여러 요인이 있었다. 19세기 초 파리의 에콜 폴리테크니크에서 J.N.L. 뒤랑(1760~1834)의 가르침은 고전주의의 언어와 건설 기법을 합리화하면서 단순한 첨가 구성을 허용하는 시도를 했다. 뒤랑의 가르침은 확산되어, 프리드리히 길리(1772~1800)와 카를 프리드리히 싱켈(1781~1841)의 작업과 함께 낭만적 고전주의의 형태로 독일 문화에 들어왔다. 당시 학자들은 폼페이의 유적을 발굴하고 있었고, 로마 건축에서 밝은 색의 사용을 발견했다 – 이는 르네상스 시대에 다소 잊혀진 측면이었지만, 그리스와 이집트도 재발견되었다. 이러한 측면은 신고전주의에 통합되어 북유럽 고전주의로 이어졌다(예: M.G. 빈데스뵐에 의해 1839~48년에 코펜하겐에 지어진 〈투르발슨 박물관〉은 아스플룬드의 스톡홀름 공공 도서관과 마찬가지로 이집트 모티브를 통합시킨다).
Throughout the 19th century there were a number of factors contributing to a more simplified classicism. The teachings of J.N.L. Durand at the École Polytechnique of Paris at the beginning of the 19th century had attempted to rationalise the language and building techniques of classicism, while allowing for simple additive compositions. Durand’s teachings spread, entering German culture in the form of Romantic Classicism with the work of Friedrich Gilly and Karl Friedrich Schinkel. Scholars were at the time uncovering the remnants of Pompeii, and discovering the use of bright colour in Roman architecture – an aspect that had more or less been forgotten in the Renaissance, but also rediscovering Greece and Egypt. These aspects were incorporated into Neoclassicism and continued into Nordic Classicism (e.g. The Thorvaldsen Museum, Copenhagen, 1839–48, by M.G. Bindesbøll, incorporates Egyptian motifs as does Asplund’s Stockholm Public Library).
고려되어야 할 ‘반응-계’도 있다. 아르누보와 민족낭만주의는 덴마크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은 반면,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에서는 민족낭만주의의 반응도 강했다. 신고전주의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통해 핀란드에 보편적 언어로 도착했지만, 19세기 말에는 러시아라는 이질적인 존재를 대표하게 되었다. 또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훗날 스트립트 클래시시즘(헐벗은 고전주의)으로 불리는 스타일이 시작되었다. 따라서, 핀란드와 노르웨이에서 정치적 독립의 움직임이 나타나자 민족주의 신화를 바탕으로 한 (아르누보의 지역적 변형인) 견고하고 민족적인 낭만주의 건축이 유행했다. 따라서 북유럽 고전주의는 일반적으로 이러한 스타일과 절충주의 전반에 대한 반작용으로, 보편주의, 국제주의, 단순화를 향한 움직임이었다.
There are also ‘circles of reaction’ to consider. Art Nouveau and National Romanticism had little impact in Denmark, while in Sweden, Norway and Finland there were also strong National Romantic reactions. Neoclassicism had arrived in Finland via Saint Petersburg as a universal language but by the end of the 19th century came to represent an alien presence – that of Russia. Also in Saint Petersburg a style originated which was later called Stripped Classicism. Thus, when stirrings of political independence appeared in Finland and Norway, a rugged, national romantic architecture – a local variation of Art Nouveau – playing on the nationalistic myths, took hold. Nordic classicism was thus a counter-reaction to that style and eclecticism in general; a movement toward universalism, internationalism and simplification.
북유럽 고전주의 양식으로 활동한 많은 건축가들이 이탈리아 북부를 순례하며 이탈리아 토착 건축을 연구했다. 당시 북유럽 국가들과 독일은 문화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독일의 아르누보 비평가, 특히 (영국의 미술과 공예 운동의 발기인이었으며 1907년 독일공작연맹을 설립한) 헤르만 무테지우스(1861~1927)와 파울 슐체 나움부르크(1869~1949), 뿐만 아니라 나움부르크의 제자인 하인리히 테세노(1876~1950)와 페터 베렌스(1868~1940)도 중요한 출처가 되었다.
Many of the architects who practiced in the Nordic Classical style made pilgrimages to northern Italy to study Italian vernacular architecture. With close cultural links at that time between the Nordic countries and Germany, another important source came from German critics of Art Nouveau, in particular Hermann Muthesius – who had been a promoter of the English Arts and Crafts movement and founded the Deutscher Werkbund in 1907 – and Paul Schultze-Naumburg, as well as the latter’s student Heinrich Tessenow, and Peter Behrens.
결과적으로, 북유럽 고전주의의 사상은 북유럽 국가들에서 모더니즘 발전을 위한 기반 중 하나가 되었다. 토착(일반 주택 양식)과 모더니즘 사이에 연속성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고전주의의 다섯 가지 기본 원칙을 뒤집는 것으로 간주된 르코르뷔지에와 그의 건축을 위한 다섯 요점을 시작으로 모더니즘의 부상에 대한 기존의 역사적 의견에 반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북유럽 고전주의로부터 순수한 기능주의로의 이동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알바 알토의 〈비푸리 도서관〉(1927~35) 디자인은 1927년 (군나르 아스플룬드의 영향을 많이 받은) 최초의 건축 설계경기 제안에서 8년 후 르코르뷔지에의 영향을 받아 순수주의 모더니즘 스타일로 완성된 엄격한 기능주의 건물로 크게 변화한 모습을 볼 수 있다.
In turn, the thinking in Nordic Classicism became one of the basis for the development of Modernism in the Nordic Countries. The idea that there would have been a continuity between vernacular and modernism has been seen as counter to received historical opinion about the rise of Modernism, beginning with Le Corbusier and his 5 Points for Architecture, which are seen as overturning 5 basic principles of Classicism. A demonstration in real time of the move from Nordic Classicism to a pure Functionalism is offered by Alvar Aalto’s design for the Viipuri Library (1927–35), which went through a profound transformation from the original architectural competition proposal in 1927 (owing much to Gunnar Asplund) to the severely functionalist building, completed eight years later in a purist modernist style, influenced by Le Corbusier.
- 출처 : 「Nordic Classicism」, Wikipedia(en), 202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