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두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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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티베르의풍경, 카스텔 산탄젤로, 산탄젤로 다리, 성 베드로 대성당〉, 헨드릭 프란스 반 린트, 1734, 캔버스에 유화, 47×72cm, 개인 소장. via Wikimedia Commons
〈브라치아노 풍경〉, 폴 브릴; 1620년대 초, 캔버스에 유화, 75×164cm,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아트 갤러리 소장. via Wikimedia Commons

베두타(‘view’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복수형: 베두테)는 도시 경관이나 기타 경치(전망)를 그린 매우 세밀한 대형 그림 또는 (더 자주) 판화를 말한다. 베두테를 그리는 화가는 베두티스티라고 불린다.


기원

이 풍경화 장르는 16세기 초 폴 브릴(1554-1626) 같은 예술가들이 베두테를 그렸던 플랑드르에서 시작되었다. 17세기에 네덜란드 화가들은 부유한 네덜란드 중산층의 지역적 자부심에 어필하기 위해 세밀하고 정확하게 알아볼 수 있는 도시와 경관을 전문적으로 그렸다. 대표적인 예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1632-1675)의 〈델프트 풍경〉이다. (벨기에) 겐트의 건축가이자 제도가, 조각가인 리빈 크륄(1634-1720)은 17세기 후반 로마에 거주하면서 베두테의 발전에 기여했다. 크륄의 그림은 도시 경관의 지형적 측면을 재현한다.


18세기

그랜드 투어의 일정이 어느 정도 표준화되면서, 로마 포럼이나 대운하 같은 익숙한 장면을 담은 베두테는 귀족 출신 영국인들에게 초기 대륙 모험을 떠올리게 했다. 18세기 중반에, 베니스는 베두티스티의 중심지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 장르의 선구자는 루카 카를레바리스(1663-1730)였으며, 가장 뛰어난 전문가들은 베니스의 카날 가문과 과르디 가문 출신이었다. 그들 중 일부는 런던에서 활동한 카날레토(지오반니 안토니오 카날; 1697-1768)와 드레스덴 및 바르샤바에서 작업했던 그의 조카 베르나르도 벨로토(1722-1780)처럼 유럽의 주요 수도에서 화가로 일했다.

〈런던 시장의 행렬이 있는 템즈강의 웨스트민스터 다리〉, 카날레토, 1747. via Wikimedia Commons

18세기 이탈리아의 다른 지역에서 이 장르의 독특한 변종이 발전했다. 조반니 파올로 판니니(1691-1765)는 유적(폐허) 그림에 집중한 최초의 베두타 아티스트였다. (로마에서 작업했으며 그곳에서 반비텔리로 알려졌던) 네덜란드 화가 가스파르 반 위텔(1653-1736)과 다른 화가들은 도시 경관이나 기념물을 지형적으로 정확하게 묘사하고 인간과 동불은 부차적인 역할을 하는 베두타 에사타, 즉 정확한 베두테를 그렸다. 그의 협력자로는 18세기 전반의 대표적인 베두테 화가 중 한 명이 된 헨드릭 프란스 반 린트(1684-1763)가 있다. 플랑드르 화가 얀 프란스 반 블로먼(1662-1749)은 17세기 말과 18세기 초에 그린 베두테에서 보다 사실적인 표현을 통해 가스파르 뒤게(1615-1675) 등 프랑스 화가들의 고전 지향적인 로마 경관에서 벗어나 18세기에 일어날 발전을 앞당겼다.

이후에 베두테의 발전 과정에서 판니니의 베두타는 부분적으로 또는 완전히 상상의 요소인 카프리치오베두테 이데아테 또는 베두테 디 판타지아로 알려진 장면으로 변모했다. 조반니 바티스타 피라네시(1720-1778)는 베두테 이데아테 에칭의 최고 거장이었다. 그의 지형 시리즈인 베두테 디 로마는 여러 차례 인쇄되었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를 바라보는 콰트로 폰타네〉, 리빈 크륄, 1665. via Wikimedia Commons

19세기

19세기 후반에는 도시 경관에 대한 보다 개인적인 “인상”이 지형적 정확성에 대한 욕구를 대체했고, 대신에 그림으로 그린 후 사진으로 찍은 파노라마로 욕구를 만족시켰다. 베니스에는 안토니에타 브랜다이스(1848-1926), 스페인 화가 마르틴 리코 이 오르테가(1833-1908), 마리아노 포르투니(1871-1949), 안토니오 마리아 레이나 마네스카우(1859-1937), 라파엘 세네트(1856-1926), 페루 화가 페데리코 델 캄포(1837-1923) 등 상당한 규모의 이민자 예술가 커뮤니티가 활동했다. 이 예술가들은 베니스의 도시 풍경을 그린 작품으로 국제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었으며, 이탈리아 풍경만을 그린 이 장르를 통해 큰 명성을 얻었다.

특히 페데리코 델 캄포가 그린 풍경에 대한 영국 관광객들의 수요가 너무 많아서 그는 여러 풍경을 여러 번 그렸고, 같은 도시 경관을 최소한의 변형으로 여러 번 반복해서 그렸던 레이나 마네스카우도 마찬가지였다.

〈베니스의 산타 마리아 델 로사리오〉, 페데리코 델 캄포, 1899. via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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