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의 벽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체리 과수원(모스크바 예술 극장, 1904)에서는 입체적인 박스 세트가 실제 방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배우들은 프로시니엄 아치로 정의된 보이지 않는 “제4의 벽”으로 분리된 채 관객을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연기한다. via Wikimedia Commons
시카고 오디토리움 빌딩에 있는 극장의 프로시니엄 아치. 그것은 (주로 내려진 커튼 뒤의) 무대와 (좌석이 있는 영역인) 객석을 구분하는 수직의 직사각형을 형성하는 정사각형 타일로 장식된 틀이다. via Wikimedia Commons

제4의 벽은 배우와 관객을 분리하는 보이지 않는 가상의 벽을 뜻하는 공연 관습이다. 관객은 이 “벽”을 통해 볼 수 있는 반면 배우들은 마치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고 가정하는 관습이다. 16세기 이후 무대 연출에서 일루저니즘이 부상하면서 19세기 극장의 리얼리즘과 내추럴리즘이 절정을 이루었고, 제4의 벽  개념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이 메타포는 프로시니엄 아치(무대와 객석과의 경계에 있는 개구부) 뒤의 미장센(무대 장치)과의 관계를 암시한다. 한 장면이 실내를 배경으로 설정되고, 그 방의 벽 중 세 개가 무대에서 보여지는 박스 세트라 불리는 형태에서는, 제4의 벽은 방과 객석을 나누는 선(기술적으로 프로시니엄이라고 함)을 따라 설정된다. 하지만 제4의 벽은 세트 디자인이라기보다 연극적 관습이다. 배우들은 관객을 무시하고, 전적으로 극적 세계에만 주의를 집중하며, 연극인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1863-1938)가 “공적 고독”(실제로는 주의 깊게 지켜보는 시선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적인 공간에 있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는 능력, 또는 “공중 속 홀로”인 상태)이라고 불렀던 허구에 몰입한 상태를 유지한다. 이런 방식으로, 제4의 벽은 세트에 실제 벽의 존재 여부, 극장 건물이나 공연 공간의 물리적 배치,배우와 관객과의 거리 또는 근접성에 관계없이 존재한다. 실제로, 공연자들은 종종 청중의 에너지를 직접적으로 느끼면서 동시에 집단적 반응에 맞춰 공연을 조절하는데, 특히 웃음이 터져 나올 때 대사를 알아들을 수 없게 전달되지 않도록 연기를 조절한다.

제4의 벽 부수기는 이 공연 관습을 위반하는 것으로, 드라마에서 보다 일반적으로 채택되어 왔다. 이것은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언급하거나, 연극을 연극 자체로 언급하거나, 등장인물의 허구성을 언급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관습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면 나머지 공연에서 이 관습이 사용되는 것에 주목하게 된다. 연극의 공연 관습에 주의를 끄는 이러한 행위를 메타극이라고 한다.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에서 배우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카메라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피하는 연기 관습을 일시적으로 중단할 때도 비슷한 메타레퍼런스(메타픽션에서 등장인물이 극작품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기법)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미디어에서 그러한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제4의 벽 부수기”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비디오 게임과 책 같은 다른 매체에서도 제4의 벽 허물기가 가능하다.


역사

전형적인 무대에서, 제4의 벽은 관객석을 의미한다. via Wikimedia Commons

제4의 벽의 투명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허구의 작품과 관객 사이의 불신을 없애고 마치 실제 사건을 관찰하는 것처럼 허구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개념은 일반적으로 철학자, 비평가이자 극작가인 드니 디드로(1713-1784)가 1758년에 “배우와 작가는 무대 전면에 거대한 벽이 가로질러 관객과 자신을 분리하고 마치 막이 오르지 않은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쓴 데서 유래했다. 1987년, 미국의 영화 비평가 빈센트 캔비(1924-2000)는 그것을 “관객과 무대를 영원히 분리하는 보이지 않는 막”으로 묘사했다.

연극

제4의 벽이라는 개념은 극의 역사 대부분에서 존재하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부터 르네상스까지의 고전 연극에는 방백 및 독백 같은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거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제4의 벽의 존재는 현대의 리얼리즘 연극에서 확립된 관습으로, 일부 예술가들은 배우나 캐릭터가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 때 경계가 “무너지는” 극적 또는 코믹 효과를 내기 위해 이 벽에 직접적인 관심을 끌기도 한다. 제4의 벽 부수기는 팬터마임(무언극)과 아동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피터팬이 사라져가는 팅커벨을 되살리기 위해 관객에게 박수를 호소할 때(“요정을 믿는다면, 박수를 쳐주세요!”)처럼 등장인물이 아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영화

진지한 영화에서 제4의 벽을 부순 최초의 기록 중 하나는 1918년 메리 맥레인(1881-1929) (주연)의 무성 영화 〈Men Who Have Made Love to Me〉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수수께끼 작가인 그녀는 자신을 연기하며 화면 속의 비네트(단편적 이야기)를 중단하고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건넨다.

(미국 희극 배우) 올리버 하디(1892-1957)는 스탠 로럴(1890-1965)과 함께 만든 영화에서 카메라를 직접 응시하며 관객의 동정을 구하는 등 종종 제4의 벽을 깨뜨렸다. 그라우초 막스(1890-1977)는 〈애니멀 크래커〉(1930)와 〈풋볼 대소동〉(1932)에서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었는데, 후자의 영화에서는 치코 막스(1887-1961)의 피아노 연주 도중 관객들에게 “로비로 나가”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멜 브룩스, 몬티 파이튼, ZAZ(주커, 에이브러햄스, 주커)의 코미디 영화에서는 “제4의 벽은 너무 허술하고 자주 부서져서 차라리 존재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The A.V. Club에서 말할 정도로 제4의 벽을 자주 부쉈다.

우디 앨런(1935-)은 영화 〈애니 홀〉(1977)에서 수차에 걸쳐 제4의 벽을 부쉈다. 그는 이에 대해 “많은 관객이 같은 감정과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들에게 직접 이야기하고그들과 맞닥뜨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1985년 영화 〈카이로의 붉은 장미〉는 제4의 벽이 무너지는 것을 중심 플롯 포인트로 다루고 있다.

제4의 벽은 1966년 영화 〈알피〉에서 줄거리 구조의 중요한 요소로 사용되었으며, 마이클 케인이 연기한 주인공 캐릭터를 드러내는 데 기여했다. 이 영화에서 케인이ㅡ 캐릭터는 관객에게 자주 말을 걸며, 여성 편력을 일삼는 젊은 남자의 생각과 동기를 설명한다. 그는 카메라를 향해 직접 이야기하며 자신의 행동을 서술하고 정당화하는데, 그의 말은 종종 그의 행동과 대조를 이룬다.

제리 루이스(미국 배우, 1926-2017)는 자신의 1971년 저서 『토탈 필름메이커』에서 “일부 영화 제작자들은 배우가 카메라를 직접 쳐다보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것이 관객을 불안하게 만들고 영화 이야기를 방해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그것이 넌센스라고 생각하며, 나는 보통 영화에서 어떤 포인트를 전달해야 할 경우 배우가 카메라를 한 번 이상 직접 쳐다보게 한다.”라고 썼다. 마틴과 루이스는 〈유어 네버 투 영〉(1955)에서, 루이스와 공동 주연인 스텔라 스티븐스는 〈너티 프로세서〉(1963)에서 각각 카메라를 여러 번 직접적으로 바라보고, 루이스의 캐릭터는 〈사고뭉치 간호조무사〉(1964)에서 관객과 팬터마임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팻시〉(1964)의 마지막 장면은 관객에게 영화가 단순히 영화임을 드러내고, 제리 루이스가 배우/감독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1986년에 개봉한 청소년 영화 〈페리스의 해방〉에서는 작품명과 동일한 이름의 등장인물이 영화 내내 관객과 직접 대화를 나누며 제4의 벽을 허문다. 2017년에 개봉한 모큐멘터리 영화 〈아이, 토냐〉의 등장인물들은 영화 상영 시간 내내 관객에게 끊임 없이 말을 건넨다.

1991년에 개봉한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JFK〉의 마지막 장면에서 케빈 코스트너가 카메라를 응시하며 제4의 벽을 허문다.

1999년 영화 〈파이트 클럽〉에서 에드워드 노튼은 제4의 벽을 허문다.

마이크 마이어스는 영화 〈러브 구루〉(2008)에서 유명한 〈웨인즈 월드〉(1992)의 헤드뱅잉 장면에서 퀸의 노래가 흘러나올 때 잠시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제4의 벽을 허물었다. 에디 머피는 〈대역전〉(1983)에서 카메라를 말 없이 짧게 두 번 쳐다본다. 존 크라이어는 영화 〈핑크빛 연인〉(1986)의 마지막에 카메라를 응시하며 제4의 벽을 허물고, 〈스모키 밴디트〉(1977)의 버트 레이놀즈, 〈위 아 더 밀러스〉(2013)의 제이슨 수데키스, 〈데쓰 프루프〉(2007)의 (밴디트에서 레이놀즈에게 고개를 끄덕인) 커트 러셀도 마찬가지다. 헐크 호건은 〈그렘린 2 – 뉴욕 대소동〉(1991)에서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연설함으로써 벽을 부쉈다. 티파니 해디쉬는 〈동상이몽 시스터즈〉(2018)의 마지막에 영화가 끝나지 않았다고 선언한 후 결혼식을 망치는 장면을 통해 제4의 벽을 깨뜨린다.

〈철로변의 아이들〉(1970)에서는 출연진 전체가 제4의 벽을 허물고 관객을 향해 커튼콜을 하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카메라는 철로를 따라 깃발로 장식된 기차를 향해 천천히 움직이고, 그 앞에 모든 출연진이 모여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며 환호한다. 크레딧 시퀀스가 시작될 때, “감사합니다. 포브스 씨”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들리며 프로듀서인 브라이언 포브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마지막에는 바비 워터버리(제니 에구터)가 분필로 “The End”라고 적힌 작은 슬레이트를 들어 보인다.

〈미스터 빈의 홀리데이〉(2007)에서는 전체 출연진이 대규모 엑스트라들과 함께 (프랑스 샹송 가수) 샤를 트르네의 〈라 메르〉(1945)를 작곡가 본인의 녹음본과 함께 부르며 제4의 벽을 허문다.

영화 〈데드풀〉(2016), 〈데드풀 2〉(2018), 〈데드풀 & 울버린〉(2024)은 특히 라이언 레이놀즈가 연가힌 주인공 데드풀이 끊임없이 제4의 벽을 허무는 것으로 유명하다.

〈퍼니 게임〉(1997)에서는 폴과 피터가 뒤돌아 카메라를 향해 윙크를 하고, 관객이 가족을 응원하고 있을 거라며 말을 걸고, 영화가 장편이 아니라고 말하고, 영화 마지막에 카메라를 향해 웃는 등 반복적으로 제4의 벽을 깨뜨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2022년 영화 〈설득〉은 주인공 앤 엘리엇(다코타 존슨 분)이 관객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제4의 벽을 허물어 1817년 제인 오스틴의 고전 소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평을 받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022년 반-자전적 영화 〈파벨만스〉의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는 의도적으로 제4의 벽을 허물고 지평선을 재구성하는데, 이는 이 영화의 레퍼런스로 1960년대에 영화감독 존 포드가 스필버그에게 했던 조언을 참고한 것이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2024년 SF 대작 〈메갈로폴리스〉의 일부 극장 상영, 특히 업계 비공개 상영회와 2024년 칸 영화제 월드 프리미어에서는 한 사람이 상영 중 스크린 앞 무대로 걸어나와 주인공 세자르에게 말을 거는 연출이 있었다. 세자르가 이에 실시간으로 대답하며 제4의 벽을 허무는 듯한 장면을 연출했다.

텔레비전

텔레비전에서는 이 매체의 역사 전반에 걸쳐 제4의 벽이 허물어져 왔다.

제4의 벽 깨기는 코미디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벅스 버니와 다른 루니 툰 캐릭터들, 그리고 이후 여러 애니메이션 작품 뿐만 아니라 1960년대의 실사 스케치 코미디인 〈몬티 파이튼 비행 서커스〉에서도 자주 사용되었으며, 이 극단이 장편 영화에도 도입한 바 있다. 조지 번즈는 〈조지 번즈와 그레이시 앨런 쇼〉(1950)에서 정기적으로 제4의 벽을 부쉈다.

제4의 벽을 허무는 또 다른 관습은 〈더 오피스〉(시트콤, 2001-2003)를 비롯한 모큐멘터리 시트콤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제4의 벽을 허무는 모큐멘터리 쇼는 프로그램의 풍자적 톤을 높이기 위해 다큐멘터리 장르에 재미를 더한다. 〈더 오피스〉의 등장인물은 인터뷰 시퀀스에서 시청자와 직접 대화한다.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반성하기 위해 나머지 그룹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등장인물들이 카메라를 응시하고 똑바로 말할 때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 즉 인터뷰어도 언급된다. 그렇지만, 인터뷰어는 간접적으로만 언급되고 감춰져 있다. 이 기법은 복잡한 장르의 프로그램에서 사용될 때 프로그램의 코믹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동시에 카메라 자체가 수동적인 구경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역할을 한다.

제4의 벽을 허무는 또 다른 접근 방식은 쇼 이벤트의 일부지만 때로는 시청자에게 직접 말하는 중앙 내레이터 캐릭터를 이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국 TV 드라마 시리즈 〈하우스 오브 카드〉(1990), 〈왕 노릇하기〉(1993), 파이널 컷(1995)에서 프란시스 우르크하트는 매 에피소드마다 시청자에게 여러 번 연설하며 극 중 자신의 행동에 대해 시청자에게 의견을 제시한다. 주인공 프랭크 언더우드가 미국판 〈하우스 오브 카드〉(2013-2018)를 각색한 작품에서도 같은 기법이 사용되기는 하지만 덜 자주 사용된다.

다니엘 핸들러의 동명 소설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시리즈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2017-2018)은 레모니 스니켓이 내레이터 캐릭터(패트릭 우버튼 분)로 등장해 텔레비전 시청자에게 직접 말하면서 책의 내레이션과 유사한 방식으로 다양한 문학적 단어 놀이를 설명함으로써 책의 내러티브 요소를 일부 도입했다. 〈플리백〉의 주인공도 이 기법을 자주 사용하여 관객에게 설명, 내적 독백, 동시 해설을 제공한다.

시트콤 〈베이사이드 얄개들〉(1989-1993)의 모든 에피소드는 등장인물 잭 모리스가 도입부에서 제4의 벽을 허무는 장면이 등장한다. 대부분의 에피소드에는 여러 다른 제4의 벽을 깨는 장면이 있다. 이는 〈더 프레시 프린스 오브 벨 에어〉(1990-1996), 〈클라리사 익스플레인 잇 올〉(1991), 〈말콤네 좀 말려줘〉(2000-2006)에서 이야기를 설정하거나 등장인물이 상황에 대해 언급하는 데 제4의 벽을 사용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더 나아가, 제4의 벽을 허무는 것은 메타-참조로도 사용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특정 이야기 속 세계의 문제에 주목하거나 이에 대해 성찰하도록 초대할 수 있다. 〈진격의 거인〉 마지막 시즌의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새로 등장한 캐릭터인 팔코 그라이스가 지난 시즌 3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환각을 보기 시작하는 장면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문학적 장치는 자기-참조를 활용하여 수용자의 미디어 인식을 유발하는 것으로, 에르디아에서 마레 측으로의 급격한 시점 전환을 알리는 데 사용되며 모든 종류의 미디어에서 사용될 수 있다.

텔레비전에서 제4의 벽을 깨는 것은 때때로 의도치 않게 사용되기도 한다. 〈닥터 후〉 에피소드 “안드로자니의 동굴”에서 모거스 캐릭터는 생각을 소리내어 말할 때 카메라를 직접 바라본다. 이는 배우 존 노밍턴이 무대 연출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었지만, 이 에피소드의 감독인 그레이엄 하퍼는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여 해당 장면을 다시 촬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비디오 게임

비디오 게임의 인터렉티브한 특성을 고려할 때, 거의 모든 비디오 게임은 플레이어의 참여를 요청하고 화면의 사용자 인터페이스 요소(예: 게임 컨트롤 설명)가 캐릭터가 아닌 플레이어를 대상으로 하는 방식으로 제4의 벽을 허물고 있다. 내러티브 내에서 제4의 벽을 허무는 방법에는 캐릭터가 플레이어/화면의 방향을 바라보게 하거나, 플레이어가 비디오 게임 중임을 인식하는 자각적인 캐릭터를 등장시키거나, 게임 내러티브 바깥에 비밀 또는 보너스 콘텐츠를 설정하여 게임 세계를 확장하거나 (위서[거짓으로 꾸민 문서] 사용 등) “비하인드 스토리” 유형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포함된다. 이 같은 경우는 일반적으로 메타픽션 내러티브가 포함된 비디오 게임을 제작하는데, 일반적으로 게임 속 캐릭터가 비디오 게임 속 지식을 통합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두근두근 문예부!〉에서는 캐릭터 중 한 명(모니카)이 자신이 비디오 게임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마지막에 플레이어와 대화를 나눈다. 스토리를 더 진행하려면 플레이어는 “monika.chr” 파일(게임 외부에서 수행하는 작업)을 제거해야 한다. 게임 〈원샷〉의 줄거리는 플레이어의 컴퓨터에서 실행되는 시뮬레이션이라는 가상의 게임 세계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특정 캐릭터는 이 사실을 인지하고 때로는 플레이어와 직접 소통하기도 한다. 다른 메타픽션 비디오 게임의 경우, 게임은 플레이어가 게임이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대를 변경하며, 이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자신의 게임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의문을 갖게 하여 게임의 몰입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비디오 게임은 본질적으로 전통적인 영화나 문학보다 훨씬 더 인터렉티브하기 때문에 비디오 게임 매체에서 진정한 제4의 벽 깨기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은 어렵다. 게임 전문 매체 《가마수트라》에 글을 쓴 스티브 콘웨이는 비디오 게임에서 제4의 벽을 깬다고 알려진 많은 사례는 실제로는 제4의 벽의 재배치 또는 플레이어를 포괄하는 매직 서클(마법진; 가상의 게임 세계)의 확장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낫다고 제안한다. 이는 관객의 환상이나 불신을 직접적으로 인정함으로써 관객의 환상을 깨뜨리는 기존의 제4의 벽과는 대조적이다. 콘웨이는 비디오 게임에서 이러한 매직 서클의 확장은 기존의 제4의 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시청자를 허구의 세계 밖으로 끌어내기보다는 오히려 플레이어를 허구의 세계로 더 완전히 몰입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매직 서클의 확장의 예로는 플레이어가 실제 이메일 주소로 게임 내 이메일을 받고 게임 내 퍼즐을 풀기 위해 게임 외부 웹사이트를 방문해야 하는 게임 〈에비던스:라스트 리추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른 게임에서는 게임의 하드웨어를 포함하도록 매직 서클을 확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메가 드라이브/제네시스용 〈엑스맨〉에서는 특정 시점에 게임 콘솔을 초기화해야 〈엑스맨〉의 게임 내 위험실을 초기화할 수 있으며, 〈메탈 기어 솔리드〉에서는 게임 내 등 마사지를 시뮬레이션하기 위해 플레이어가 듀얼쇼크 컨트롤러를 목에 대도록 요청한다.

다른 예로는 〈수퍼 소닉〉의 게임에서 화면 속 캐릭터가 플레이어를 바라보며 잠시만 내버려두면 초조하게 발을 두드리는 애니메이션, 〈맥스 페인〉의 한 레벨에서 작품명과 동일한 이름의 등장인물이 자신과 다른 캐릭터가 비디오 게임 속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플레이어가 보는 것을 UI의 일부로 내레이션으로 설명하는 것 등이 있다. 〈이터널 다크니스〉에는 정신력 측정기가 포함되어 있어 정신력 측정기가 고갈되면 블루스크린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일반적인 컴퓨터 결함이 플레이어에게 시뮬레이션된다. 〈스탠리 패러블〉도 이러한 메타픽션의 잘 알려진 예로, 게임 내 내레이터가 끊임없이 플레이어와 대화를 시도하며, 심지어는 한때 플레이어에게 게임을 끄라고 애원하기까지 한다.

문학

플립, 네모, 임피가 그들이 등장하는 만화책 『리틀 네모』에서 패널의 윤곽선을 떼어내고 제목의 글자를 분리하여 제4의 벽을 허무는 모습. via Wikimedia Commons

문학에서 제4의 벽을 허무는 방법은 메타픽션에서 자주 사용되는 기법 중 하나인 메털렙시스(대체 용법; 서사적 단계의 침범)이다. 메타픽션 장르는 문학 작품 속 인물이 실제로는 가상의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발생한다. 문학에서 제4의 벽의 사용은 『캔터베리 이야기』(제프리 초서, 14C)와 『돈키호테』(세르반테스, 1605)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노생거 사원』(제인 오스틴, 1818)은 근대 후기 사례다.

그것은 20세기 초 포스트모던 문학 운동 시기에 대중화되었다. 『등대로』의 버지니아 울프와 『챔피언의 아침』의 커트 보니것 같은 예술가들은 이 장르를 통해 기존의 지식과 문화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문학에서 메타픽션을 사용하거나 제4의 벽을 허무는 기법의 사용은 그 경험이 공동체적이기보다 독자에게 개인적으로 다가오며 이를 통해 등장인물과 독자 사이에 자의식을 형성하여 신뢰를 쌓고 사고의 확장을 도모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에서 무대에서의 사용과 다르다. 여기에는 캐릭터의 허구성을 인정하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 문학에서 제4의 벽을 허무는 것이 항상 메타픽션인 것은 아니다.

제4의 벽을 깬 현대적 사례로는 에이다 파머(1981-)의 『테라 이그노타』, 윌리엄 골드먼(1931-2018)의 『프린세스 브라이드』 등이 있다. 소르주 샬랑동(1952-)은 내전이 한창인 베이루트에서 연극 〈안티고네〉를 공연한다는 설정의 “제4의 벽”이라는 소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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