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퀴벌런츠〉


스티글리츠가 찍은 수많은 하늘 사진 중 하나. 〈이퀴벌런츠〉(1926), via Wikimedia Commons

이퀴벌런츠〉(등가물)는 알프레드 스티글리츠(1864-1946)가 1925년부터 1934년까지 촬영한 구름 사진 시리즈이다. 이 사진들은 피사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에서 자유롭도록 의도된 최초의 사진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으며, 따라서, 최초의 완전히 추상적인 사진 예술작품 중 하나로 간주된다.


설명

스티글리츠는 ‘이퀴벌런트’ 또는 ‘이퀴벌런츠’라는 이름으로 최소 220장의 사진을 촬영했으며, 모든 사진에는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담겨 있다. 대부분의 사진은 지평선, 건물, 기타 물체가 프레임에 포함되지 않고 오직 하늘만을 보여주지만, 일부 사진에는 언덕이나 나무가 포함되어 있다. 1927년에 촬영된 한 시리즈에는 전경에 포플러 나무가 눈에 띄게 등장한다.

거의 모든 사진은 매우 어둡게 인화되어 하늘이 검게 또는 거의 검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하늘과 훨씬 더 밝은 구름 사이의 대비가 대부분의 사진에서 강렬하게 드러난다. 일부 이미지에는 태양이 사진 속의 뚜렷한 요소로 포함되거나, 구름 뒤에서 빛을 비추는 힘으로 포함된다.


배경

스티글리츠가 〈이퀴벌런츠〉라고 부른 여러 시리즈는 그의 사진 작업에서 매우 중요한 두 가지 측면인 기술적 요소와 미학적 요소를 결합한 것이다. 그는 이 두 분야에서 모두 대가였지만, 〈이퀴벌런츠〉 작업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스티글리츠는 1887년 여름, 이탈리아의 코모 호수 위의 구름을 처음 촬영했던 이래로 구름을 촬영하는 데 따르는 특별한 문제들에 오래도록 매료되어 왔다. 1920년대 이전까지 대부분의 사진 유제는 정색성(오르토크로매틱)이었으며, 이는 주로 스펙트럼의 파란색 끝에 있는 빛에 민감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특수 필터를 사용하지 않는 한 하늘이 매우 밝게 나타나 구름이 배경과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구름을 촬영하는 것이 특히 어려웠다. 스티글리츠는 수년에 걸쳐 정색성 유제를 사용해 여러 번 구름 사진을 찍었지만,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구름의 네거티브를] 현상할 때마다, 나는 항상 내가 원하는 것을 거의 얻었다고 믿으며 흥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1922년에 스티글리츠는 자신의 사진에 대해 이미지의 강점이 자신이 촬영한 인물들의 힘에 있다고 주장한 월도 프랭크(1889-1967)의 평론을 읽었다. 스티글리츠는 프랭크가 건물과 거리 풍경을 찍은 자신의 수많은 사진을 무시하고, 더 나아가 자신을 눈앞에 보이는 것을 단순히 기록하는 사람으로 취급했다고 여겼기 때문에 격분했다. 스티글리츠는 즉시 새로운 구름 연구 시리즈를 시작하기로 결심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사진의 성공이 피사체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 특별한 나무나 얼굴, 실내 장면, 특별한 특권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 구름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니까…”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구름을 사진에 담으며 내가 40년 동안 사진에 대해 배운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싶었다. 구름을 통해 내 삶의 철학을 기록하고자 했다… 내 목표는 점점 더 내 사진이 사진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눈을 뜨고 보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을 것이며,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결코 그것을 잊지 않게 하고 싶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모든 색상의 범위를 포착할 수 있는 새로운 전색(팬크로매틱) 사진 유제가 개발되었다. 이 유제가 사용가능해지자마자, 스티글리츠는 8×10in(200×250mm) 뷰 카메라를 하늘에 겨누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듬해 그는 〈뮤직: 열 가지 상황의 구름 사진〉(다른 이름으로 〈열 가지 움직임의 구름〉)라는 제목의 열 장의 구름 사진 시리즈를 제작했다. 그는 아내 조지아 오키프(1887-1986)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에르네스트 블로흐(1880-1959, 위대한 작곡가)가 이것을 보고 ‘음악! 음악! 이봐, 이건 음악이잖아! 도대체 어떻게 이런 걸 해냈지?’라고 외치며 바이올린과 플루트, 오보에, 브라스를 가리키기를 바랐어.” 스티글리츠는 이 시리즈를 1923년 뉴욕의 앤더슨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처음 전시했고, 블로흐가 이를 보았을 때 스티글리츠가 원했던 것과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뮤직〉 시리즈의 성공에 고무된 스티글리츠는 1923년 여름, 더 작은 4×5in(100×130mm) 그라플렉스 카메라를 사용해 하늘의 사진 수십 장을 촬영했다. 그는 이 사진들 중 많은 작품을 정리해 〈하늘의 노래〉라는 개별 시리즈로 만들었다. 1924년 말, 그는 앤더슨 갤러리의 한 방에 구름 사진 61점을 전시했다. 전시회 카탈로그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하늘의 노래〉 – 내 카메라가 드러낸 하늘의 비밀은 작은 사진들이며, 이는 하늘에 존재하는 인간 세계의 직접적인 계시 – 영원한 관계의 기록 –이며, 어쩌면 하나의 철학일지도 모른다.” 전시를 본 당시 보스턴 미술관의 큐레이터였던 아난다 쿠마라스와미(1877-1947)는 스티글리츠에게 〈하늘의 노래〉 시리즈 중 5점을 포함한 몇몇 사진을 미술관에 기증하도록 설득했다. 이것은 미국의 주요 미술관이 사진을 영구 컬렉션으로 처음 소장한 사례였다.

스티글리츠는 그 후 10년 동안 대부분의 시간에 걸쳐 구름과 하늘을 촬영하는 작업을 이어갔다. 1925년부터 그는 이러한 사진들을 〈이퀴벌런츠〉라고 부르기 시작했으며, 이후 촬영된 모든 유사한 사진에 이 이름을 사용했다. 1929년에는 〈하늘의 노래〉 오리지널 작업 일부를 〈이퀴벌런츠〉로 이름을 변경했으며, 이 사진들은 오늘날에도 두 가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도로시 노먼(1905-1997)은 스티글리츠와 그의 〈이퀴벌런츠〉 사진 한 점을 보고 있는 한 남성 사이의 대화를 기록한 적이 있다:

(스티글리츠의 〈이퀴벌런츠〉를 바라보는) 남성:  이것은 물을 찍은 사진인가요?
스티글리츠: 그게 무엇을 찍은 사진인지가 무슨 상관인가요?
남성: 하지만, 그게 물을 찍은 사진인가요?
스티글리츠: 제가 말하잖아요.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요.
남성: 그러면, 그것은 하늘을 찍은 사진인가요?
스티글리츠: 하늘을 찍은 사진이 맞아요. 하지만 왜 그게 중요한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

스티글리츠는 자신이 이 사진들에서 무엇을 성취했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는 하트 크레인(1899-1932)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퀴벌런츠〉에 대해 이렇게 단언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찍었는지 정확히 알고 있네. 나는 내가 이전에 한 번도 시도되지 않은 무언가를 해냈다는 것을 알고 있어… 또한, 지금 유행하는 이른바 추상적인 것들의 대부분이 죽은 표현에 불과한 반면, 어떤 ‘재현’ 속에 진정으로 추상적인 것이 더 많이 담겨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네.”


예술적 중요성

〈이퀴벌런츠〉는 종종 의도적으로 추상성을 추구한 최초의 사진으로 인정되지만, 이는 앨빈 랭던 코번(1882-1966)이 거의 10년 전에 제작된 ‘보르토그래프’를 고려하면 유지하기 어려운 주장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 작품들을 보면서 당시 그것들이 끼친 영향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이 사진들이 처음 등장했을 당시만 해도, 사진은 독립된 예술 형식으로 일반적으로 인정된 지 15년이 채 되지 않았고, 스티글리츠가 그의 구름 사진을 선보이기 전까지는 형태와 내용 모두에서 인식 불가능한 무언가를 사진으로 찍는 전통은 존재하지 않았다. 미술 비평가 힐튼 크레이머(1928-2012)는 〈이퀴벌런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작품들은 의심할 여지 없이 스티글리츠가 당시 특히 가깝게 느꼈던 미국 모더니즘 회화(특히 아서 도브와 조지아 오키프의 작품)에 빚을 지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1940~50년대까지 미국 회화에 등장하지 않았던 서정적 추상을 향한 접근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 시기 아방가르드 회화를 지배했던 회화적 관습을 분명히 넘어선다. 앨버트 핑크햄 라이더(1847-1917)의 회화에서 클리포드 스틸(1904-1980)의 작품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우리는 회화 자체보다는 스티글리츠의 〈이퀴벌런츠〉에서 더 강력한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사진들 중 가장 강렬한 작품들이 매우 추상적으로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들이 어떤 기준도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스티글리츠는 많은 작품에서 특정한 방향성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으며, 그가 처음 사진을 고정한 방식과 다르게 옆으로 돌리거나 뒤집어서 전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사진사학자 사라 그리너는 스티글리츠가 이렇게 함으로써 “[관람객의] 자연과의 관계를 불안정하게 만들어, 자연에 대해 덜 생각하도록 유도하려 한 것이다. 그것이 구름 사진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구름 형상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라고 지적했다. 그녀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퀴벌런츠〉는 정체성을 포기한 형태들의 사진으로, 스티글리츠는 사진에서 일반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현실에 대한 모든 참조점을 지워버렸다. 이 작품들에는 시간이나 장소를 특정할 수 있는 내부적인 단서가 없다. 이 사진들은 어디서든 촬영될 수 있으며, 그것이 조지호(湖), 뉴욕시, 베니스, 혹은 알프스에서 촬영된 것인지 알 수 있는 아무런 표시가 없다. 그리고 젤라틴 실버 프린트의 현대적인 외형을 제외하면, 이 사진들은 사진술이 발명된 이후 어느 시점에서든 촬영되었을 수 있다. 또한, 이 사진들에는 수평선이 없기 때문에, 어느 방향이 ‘위’이고 어느 방향이 ‘아래’인지조차 분명하지 않다. 이러한 사진들에서 ‘위쪽’과 ‘아래쪽’을 구분하려는 우리의 혼란, 그리고 이 사진들을 시간이나 장소에 특정할 수 없는 우리의 무능함은, 우리가 구름의 사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 사진들을 추상화된 형태의 사진으로 읽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뉴욕타임스》의 미술 비평가 앤디 그런드버그(1947-)는 〈이퀴벌런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작품들은 현상의 세계에 의해 보여지는 것 너머에 존재하는 현실에 대한 믿음을 사진으로 보여준 가장 급진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 이 사진들은 음악처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작동하도록 의도되었으며, 물리적 세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을 표현하는데, 이는 사진의 프레임 안에 수평선과 크기에 대한 단서가 거의 없는 사실로 상징화된다. 감정은 시간과 장소의 구체성이 아니라, 오로지 형태 그 자체에만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사진가 앤설 애덤스(1902-1984)는 스티글리츠의 작품이 자신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다. 1948년 그는 자신의 첫 번째 “강렬한 사진 경험”이 〈이퀴벌런츠〉를 많이 본 것이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아마도 그들이 처음 만난 1933년에 처음으로 본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시리즈 및 세트

스티글리츠는 〈이퀴벌런츠〉라 부른 사진들을 전시하거나 출판할 때 여러 다른 그룹으로 나누어 정리했으며, 종종 마운트된 사진 뒷면에 하나 이상의 글자를 적어 자신이 “세트”라고 부른 것을 식별했다. 이러한 그룹화는 순차적이지 않으며, 스티글리츠는 어떤 단일한 시리즈나 세트를 독립적인 단위로 간주하지 않았다. 일부 개별 사진은 여러 시리즈나 세트에 포함되어 있으며, 동일한 사진의 일부 복사본은 서로 다른 식별 표시가 적혀 있다. 일반적으로, 그의 세트는 “실제 시간의 흐름을 반영하기보다 스티글리츠의 주관적인 상태의 변화와 흐름을 반영하는 완전히 인위적인 구성물”로 봐야 한다.

다음은 〈이퀴벌런츠〉 사진들의 연대순 목록이다. 많은 작품들이 개별적인 제목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수십 장의 사진이 동일한 일반 명칭인 〈이퀴벌런츠〉로 알려져 있다. 이 사진들에 대한 가장 포괄적인 목록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더 키 세트』에 수록되어 있으며, 이 목록의 번호는 해당 출판물에서 확인된 사진들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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