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러티브 포토그래피


내러티브 포토그래피는 사진을 사용하여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앨런 펠드먼은 “사건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서술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진은 단일한 별개의 순간을 포착하고, 제롬 브루너가 설명한 바와 같이 내러티브(서사)는 본질적으로 시간적이기 때문에, 사진이 실제로 내러티브 구조를 나타낼 수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수전 손택(1933-2004)은 그녀의 책 『사진에 관하여』(1977)에서 이러한 반론을 제기했다.

사진 이미지의 궁극적인 지혜는 ‘표면이 있다. 이제 생각하거나 오히려 느끼고, 직관적으로 파악하라.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만약 현실이 이렇게 보인다면 어떤 모습일지’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는 사진은 추론, 추측,  환상으로의 무궁무진한 초대이다. 엄밀히 말하면, 사진으로부터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메라가 현실을 묘사하는 방식은 항상 드러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숨겨야 한다. 브레히트(1898-1956)가 지적했듯이, “크루프 작업장[군수 공장]의 사진은 그 조직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는다.” 겉모습에 기반한 연애 관계와는 대조적으로, 이해는 그것이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기반한다. 그리고 기능은 시간 속에서 일어나며, 시간 속에서 설명되어야 한다. “오직 서사를 가진 것만이 우리를 이해하게 만들 수 있다.” (p.23)

똑같은 반론이 회화, 조각, 모자이크, 드로잉 또는 감상과 사색을 위해 단일 이미지를 제시하는 모든 매체에 적용될 수 있다. 그렇지만, 사진과 전통 예술은 모두 이야기를 전달하고 설명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회화에서, 화가는 그림에 의미를 부여한다.

사진에서, 사진가는 사진에서 의미를 찾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서 열리는 내러티브 포토그래피 공모전은 내러티브 포토그래피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내러티브, 또는 스토리텔링의 힘은 많은 사진의 기초를 이룬다. 사진가들은 복잡하고 설명적인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현대 사진가들은 시각적인 단편 소설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작업 분야는 인류학 연구, 특히 시각 인류학 분야에서 많은 학술 작업에도 적용된다.

내러티브 사진의 예로는 예일대학교 미술대학 사진학과 졸업생인 그레고리 크루드슨(1962-)과 스티브 조빈코(1961-)의 작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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